
<행렬>은 프로시니엄 무대에서 상연되도록 쓰여진 것이 아니다.
이 작품은 야외공간이나 넓은 실내홀에서 관객들에게 둘러싸여 상연됨이 바람직하다.
실내에서 상연될 경우 객석 통로는 미로를 연상시키게끔 배치되어야 한다.
통로는 곧 연기구역이 되어 통로를 통해 지나가는 행렬을 관객들이
양쪽에서 관찰하게끔 배치한다. 야외공연의 경우 첫 번째 장면은 생략해도 무방하다.
이 경우 극은 코카(Khoka)가 연기구역 중앙에서 쓰러져 신음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곧 이어 연기구역 곳곳에 분산된 코러스가 “뭐야? 무슨 소리야?”라고 외친다.
이후에 배우들의 행동은 굴곡, 교차된 통로에 의해 제약됨으로써 복잡한 미로의 느낌을 전달해야 한다.

사회정치적 억압 아래 살아가는 현대인의 생존 상황을 ‘행렬’의 우화적 모티브를 통해 고발한 작품이다.
“누구 코카 본 사람 없어요? 쪽코에 왕발울 눈, 검은 머리! 아직 젊고, 세상도 모르고, 어리숙하고? 적당히 크고, 적당히 잘생기고, 적당히 마르고? 약간 순진하고, 약간 분별없고, 약간 미쳤고? 누구 코카 본 사람 없어요?” ‘코카(khoka)’는 인도에서 ‘어리고 작다’는 뜻의 아이 이름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코카였었고, 많은 부모들에겐 그들만의 코카가 있다.
이야기는 청년 ‘코카’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에서부터 시작된다. 도보행렬, 시위행렬, 장례행렬, 축제행렬, 군대행렬, 피난행렬, 순례여행 등 다양한 형태의 ‘행렬’을 이루는 대중들은 권력에 희생당한 코카의 죽음에 반응하지만 결국 무관심한 방관자에 불과하다. 군중을 억압하는 실체는 경관이나 교주(구루), 정치가와 같은 풍자적 이미지로 제시되는데, 결국 사회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무력한 개인의 몸부림을 통해 서로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인 부조리한 상황이 드러날 뿐이다. 코러스를 통해 부정부패, 종교적 차별, 경제적 불균형 등을 희극적인 일상으로 풍자하는 이 작품은 시르카르가 49세 때인 1974년에 발표한 작품이지만, 2004년 오늘의 상황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보편적인 현실감을 안겨준다. 또한 주제에 비해 극적 구도는 강렬한 상황적 이미지, 코러스의 개입, 프로시니엄을 벗어난 공간 활용을 통한 관객과의 긴밀한 교류 등으로 호소력 짙은 새로운 연극의 발견을 경험하게 해준다.

동양에서 서구 근대극을 제일 먼저 수용한 나라 인도, 인도의 현대극을 통해 아시아 연극의 양식과 방향을 살펴본다 서양 번역극에 크게 의존해 온 한국 현대연극사를 비춰 볼 때, 그 동안 동양의 창작극에 대한 관심은 극히 미비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인도 연극은 타고르의<우체국>을 비롯해 고작 몇 편만이 공연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동양에서 서구 근대극을 최초로 수용한 나라가 인도라는 사실을 볼 때, 인도 현대극을 살펴보는 것은 곧 아시아 현대극을 살펴보는 것과 다름 아닐 것이다.
대부분 서구열강의 식민통치를 겪은 아시아권 국가들의 비판적 세계인식과 사회의식은 우리 근현대사의 질곡과도 무관하지 않은 동질감을 느끼게 해 주며, 전통극과 서구 연극과의 충돌을 거치면서 현재의 아시아 현대연극으로 자리 잡게 된 과정 또한 비슷하다.
인도연극은 크게 각 지역에서 자생한 토착 민속극(제1의 연극)과, 영국에서 도입되어 도시에서 공연되는 서구 프로시니엄형 연극(제2의 연극)이 각자 따로따로의 전통을 가지며 발달해 왔다. 그러나 1970년대 이래 급진적이고 정치적, 혁명적 색채를 띤 ‘민중연극’이 큰 흐름을 이루면서 새롭게 부각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작가가 ‘우트팔 둣트’와 ‘바달 시르카르’이다.

갑작스런 정전과 함께 사람들의 수런대는 소리, 이 소리는 캘커타에서 매일 같이 벌어지는 사건들에 대한 입방아들이다. 온갖 추측 뒤에 누군가가 살해되었다는 입방아로 소리가 모아질 즈음, 경관이 나타나 이들을 해산시킨다. 이때 한 소년(코카)이 날카로운 신음소리를 내지만 아무도 쓰러져 있는 소년을 발견하지 못한다. “나는 살해되었어요. 나는 여기 있어요. 그들이 나를 죽였어요. 나는 지금 살해되었어요. 오늘 살해되었습니다. 어제 살해되었습니다. 3일전에, 4일 전에 살해되었습니다. 나는 매일 살해되어요. … 매일… 매주… 매달… 매년. 왜 당신은 나를 보려고 하지 않죠? 당신은 나를 들을 수 없나요?” 매일의 압박과 경찰의 위선, 캘커타에서 늘 발생하는 삶의 재앙 등에 의해 자신이 살해되어감을 계속 소리치는 소년. 이때 무대의 다른 출구에서 노인이 등장한다. 소년이 끊임없이 살해된다면, 노인은 극이 끝날 때까지 희망 없이 잃기만 하는 존재이다. 노인은 그가 잃어버린 어린시절의 특별했던 때만을 회상한다. 코러스들은 코카를 찾아 나서기도 하고 캘커타 거리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불협화음의 풍경들을 보여주기고 하고 경관의 명령에 따라 종교를 찬양하기도 하고 애국적 구호를 외치기도 한다. 관리도 등장하고, 구루도 등장하고 정치가도 등장한다. 자신들의 삶을 착취당하면서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민중들, 생존을 위해 지배계급에 의존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코러스들에 의해 재현된다. 미로 같은 거리를 헤매던 노인은 거리에서 다시 소년을 만난다. 노인은 자신이 살해되었다고 중얼대는 소년에게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하지만 소년과 노인은 둘 다 길을 찾지 못한다. 혼돈 속에서 소년은 경관에 의해 이끌려 포박 당한다. 코러스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소년을 살해하는 의식을 거행한다. 소년의 울부짖음이 들리는 가운데 노인은 소년과의 마지막으로 만나게 된다. 멀리서 사람들의 행렬 소리가 가까이 다가오고 노인과 소년은 일어나 행렬의 소리를 듣는다. 코카 : 무슨 행렬이죠? 노인 : 우리에게 길을 인도할 행렬… 참된 집으로 가는 길을…. 코카 : 난 많은 행렬을 보았죠. 하지만 어떤 행렬도 길을 알려주지 않았어요. 언제나 같은 길, 같은 길… 노인 : 쉿, 조용히 들어봐! 노인의 목소리가 흥분으로 설렌다. 노랫소리 점점 커진다. 노인 : 저-기 온다! 코카 : 정말인가요? 진짜 행렬이에요? 노인 : 그런 것 같아. 진짜 행렬 같아 코카 : 누가 오고 있죠? 노인 : 아마도… 사…람…들… 같아…. 노인, 코카의 손을 잡고 객석 통로를 관통해 천천히 나아간다. 코러스가 손을 잡고 행렬을 지어 등장하여 관객들을 유도하여 그 뒤를 따른다. 꿈의 분위기. 노래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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