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닐 사이먼의 초기 작품들은 평단으로부터 ‘너무 가볍지 않느냐’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그가 가족들의 모습, 유태계 미국인으로서 겪은 자전적인 내용을 작품에 담기 시작하자, 한층 깊이감이 생긴 그의 유머에 평단의 호평이 쏟아졌다. 특히 『브라이튼 해변의 기억(Brighten Beach Memoirs)』(1983), 『빌록시 블루스(Biloxi Blues)』, 『브로드웨이 바운드(Broadway Bound)』(1986)로 구성된 ‘유진 삼부작(Eugene Trilogy)’으로 작품으로 사이먼은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토니상, 드라마데스크상, 퓰리처상을 동시에 받게 만든 『용커스에서 길을 잃다』도 ‘유진 삼부작’의 후속작이다.) 사이먼의 작품들에서 인물들이 괴상한 관계에 휘말리며 서로 언쟁을 벌이는 모습은 익숙한 광경이다. 그런데 보통 작품이 시작할 때는 정상적인 상태에서 복잡한 상황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곤 하는데, ‘유진 삼부작’에서는 전사를 지닌 인물들이 처음부터 그로테스크한 상황 속에서 정서적인 장애를 표출한다. 사이먼은 인물들에 자신과 가족의 모습을 반영했는데, 때문에 이 작품이 진정성을 지니고 한층 더 깊은 감동을 줄 수 있게 되었다.

언젠간 최고의 코미디 작가가 될 것이라며 다짐하는 스탠리와 동생 유진, 그리고 그들의 이모 블랑쉬, 아버지 잭, 할아버지 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머니 케이트. 이들의 미국 브룩클린, 브라이튼 해변을 배경으로 한 진솔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여타의 가족의 이야기와는 다른 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절대 화목을 그리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동시에 이 이야기는 가족을 그리고 있다. 단지 그뿐이다.
닐 사이먼의 자전적 희곡 3부작의 마지막 이야기인 브로드웨이 바운드는 평범한 소시민의 풍경에서 시작한다.
현재의 일에 만족하지 못하는 유진과 스탠리는 오래전부터 최고의 코미디 작가가 되기를 꿈꾼다. 하지만, 가족들의 시선은 그리 낙관적이지만 않다. 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쓴 작품을 가족들 중 아무도 웃기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이들 역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뉴욕 CBS방송에서 그들에게 일거리를 주게 되고, 그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형제와 바람난 것을 들킨 아버지, 사회주의자이지만 최고의 유머리스트인 할아버지, 부자인 이모 그리고 그들의 곁에서 한결같은 어머니가 풀어나가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희곡 대본이기 때문에 단순히 배역의 대사와 행동만이 묘사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절대 단순하지 않고, 미국 소시민의 한 부분을 절묘하게 포착하고 있다. 그들의 대사 하나하나의 재치와 위트는 정말로 상당한 수준이다. 그들이 유머의 소재를 찾는 과정이라던가, 한방씩 던지는 할아버지의 재치(하지만 자신은 절대로 그것을 유머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버지의 편력과 어머니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인간적인 면모는 이들이 정말로 미화되지 않게 그려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이야기의 진정한 주인공은 어머니인 케이트가 될 것이다. 언제나 가족들에 봉사와 집안일에 몰두하고, 자신이 가본 곳 외에는 길도 찾지 못하는 전형적인 과거의 어머니를 그리고 있지만, 그녀역시 과거 죠지 래프트(누군진 모르지만 미국의 유명한 배우인가 보다.)와 춤을 한번 춰 봤다는 것을 행운이라 생각하며 이제는 그때의 열정을 더 이상 끄집어내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버지는 바람이 나고, 어머니는 역시나 언제나의 그 모습 그대로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 가서, 아들인 유진과의 짧은 춤에서 여전히 그 열정은 그 안에 존재 하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그 뿐이다. 그녀의 현실은 오랜 과거에 비해 너무도 바뀌어 버렸고, 이제는 그녀 자신이 가족을 위해 존재하는 것 외에는 더 이상의 가치조차 확인하기 힘들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성공을 해 집을 떠나기 위해 택시를 기다리며 하는 유진의 마지막 대사는 무척이나 인상 깊다. 지금 현재의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닌, 앞으로 일어날 가족들의 사건,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 미래를 읊어 주는 것인데 마지막으로 어머니에 대한 짧은 말은 정말로 무엇을 위해 가족이 존재하는지 충분히 느낄 수가 있다. 어째서 우린 가족인가? 라고 묻는다면 누군가가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끈질기게, 그 끈을 유지하기 때문에 가족이라 불리는 것은 아닐까?

이 작품은 가족 이야기다. 수상한 가족도 무서운 가족도 아닌 우리네 평범한 가족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자칫 고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소재임에도 극은 시종 웃음 띄게 만든다. 그렇다고 극이 가벼운 것은 아니다. 흥미로운 소재가 아닌 것으로 연극을 만들고자 할 때 그 연극이 많은 문제를 드러내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너무 개그 코드를 앞세우거나 진부해서 따분해지는 경우 혹은 진부해 지지 않기 위해 상징과 생략의 남발로 난해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상적 소재의 어려움 속에서 브로드웨이 바운드는 균형을 잘 잡아서 관객들에게 가볍지 않으면서도 즐겁게 연극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극은 닐 사이먼의 작품을 그대로 가져와 쓰고 있지만, 중년의 부부가 가질 수 있는 감정들과 사건들로 이질감보다는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이질감이 느껴지는 부분은 사회주의자인 할아버지, 코미디 작가를 꿈꾸는 형제, 따뜻한 지방으로의 이사 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의 모습에서는 숙연해지고 미안함을 가지게 되는 것이 모든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모든 사람은 어머니의 자식이니까. 그런데 참 이기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선택은 자신을 위한 것이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존재의 의미를 만드는 행위라고 생각했기에 그 무엇보다 그것을 앞세워 살아온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나는 이만큼 행동했는데 너희들은 왜 이렇게 하지 않느냐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모든 이타적 행위는 이기적 생각에서 나온다. 물론 이기적인 행위는 더욱 더 이기적이 생각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사랑을 찾아 나서는 아버지에 대한 생각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내가 그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큰아들 스탠리처럼 화가 날 것이다. 케이트는 잭에게 어떻게 그 여자에게 그런 감정을 가질 수 있냐고 소리친다. 행위에 대한 분노였다면 동조할 수 있겠지만 감정에 대한 것은 쉽지 않다. 감정은 추위와 더위를 느끼는 것처럼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불륜이라는 단어는 도덕적이지 못함을 의미한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살면서 사랑하는 척하는 것이 도덕적인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사랑하는 것이 도덕적인가. 이건 도덕의 문제가 아니다. 감정과 관습의 대립처럼 보인다. 잭이 평생 케이트를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들이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되고 결혼한 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이야기가 끝났다면 좋았겠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다. 케이트는 매일 식탁을 닦고 잭을 매일 회사에서 일하며 아이들은 계속 자란다. 끝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끝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반복 되어지는 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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