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집, 침대, 교회는 페미니즘 연극으로 집이나 직장에서 슈퍼우먼처럼 일해하는
여자의 상황과 성적 노예 상황을 코믹한 터치로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포는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 즉 여자. 창녀, 거지. 마약중독자, 깡패 등으로
관심을 넓혀가며 테러리스트, 교황, 재벌, 정부관료 등 권력을 남용하는 모든 사람에
웃음으로 비난의 칼날을 꽂는다.
극단 민예가 공연한 ‘모든 집,침대 그리고 교회’에서 가장 유명한 이는 작가 다리오 포이다.
이 공연 전 해에 노벨문학상을 타며 본격 소개됐지만 대학로에선 일찌기 사랑받아온
이탈리아 작가다. 국가권력 횡포에 맞서며 억압받는 대중을 대변해온 ‘연극운동가’인
포의 매력은 ‘투쟁성’만은 아니다. 중세 어릿광대를 이은 넘치는 익살로 전혀 이론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번에 사로잡아버리는 힘이 있다.

‘…교회’에서 포는 여성문제에 덤벼들었다. 작품은 별개 소품 3개로 이뤄져
각각 여성 1명이 일인극을 하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 무대에는 2개만 올랐다.
‘우리는 모두 똑같은 얘기를 가졌어요’에서 주인공은 아기 낳는 고통을 알게 된 한
남자 얘기를 들려준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면 임신에 대한 아내의 두려움은
아랑곳없이 관계를 강제해도 되는 줄 아는 ‘전기기술자’.
어느 날 아내의 헝겊인형이 그의 엉덩이 사이에 박혀 빠져나오지 않는 바람에
팔자에 없는 난산을 겪다 결국 "펑!"터져버렸다는 것이다.
‘외로운 여인’은 더 직설적이다. 여자를 도구로만 여겨 집에 가둬버린 남편, 그런 여인을
망원경으로 엿보는 앞집 남자, 온통 화상을 입고도 가정부 건드리는 시동생,
육체적 사랑밖에 모르는 애인에게 포위돼 여인은 미치기 일보 직전이다.
포의 기지는 여기서 나타난다. 여인은 영화 ‘델마와 루이스’ 주인공들처럼 어떤
사탕발림에도 끝내 타협하지 않는다. 아니 델마나 루이스는 자신을 부숴버리지만
여인은 자기를 괴롭히는 바깥에 총부리를 겨눈다는 점에서 더 선동적이다.
생경한 구호에 그치기 쉬운 ‘비타협’에 익살의 살을 붙이는 포의 입심은 짜릿하기까지 하다.

〈모든 집, 침대 그리고 교회는 1인 여성극이다.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다리오 포가 1974년 극본을 쓰고 연출을 맡아, 배우였던 부인 프랑카 라메를 내세워 선보인 작품이다. 포는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 같은 연극에서 알 수 있듯이 일생 동안 이탈리아 정칟사회의 거짓과 부패를 통절히 비판하는 풍자극을 썼다. 그의 연극은 전투적 사회운동의 성격을 띤 것이어서 포와 부인 프랑카는 극을 올릴 때마다 우익 집단의 테러와 공격에 시달렸다. 포는 이 작품에서도 여성문제를 그의 진보적 관점에 따라 날카롭게 분석해 형상화하고 있다.
<모든 집, 침대…>의 무대는 두 개의 독립된 얘기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극 ‘우리는 똑같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어요’는 여자가 남자(로 설정된 상상 속의 존재)와 성관계를 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여자는 남자의 무분별한 요구가 싫으면서도 사랑한다는 말을 믿고 매번 이에 응한다. 하지만 이걸 사랑이라고, 삶다운 삶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걸 여자는 예쁜 소녀와 욕 잘하는 인형의 우화를 빌려 설득한다. 남성 중심의 세상을 거부하지 못하고 얌전한 여자가 되려고만 하는 여성의 삶은 옳지 않다는 것이 설득의 내용이다.
두 번째 극 ‘외로운 여인’은 바람을 핀다는 이유로 집안에 갇힌 주부의 얘기다. 손버릇 나쁜 시동생, 울어대는 갓난아기, 언어폭력을 퍼부어대는 전화치한, 옆집의 관음증 남자 때문에 그의 생활은 한순간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를 사랑한다며 현관문을 두드리는 남자조차도 자신의 성욕을 채우려 할 뿐 여자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다. 여인은 마침내 히스테리에 빠져 남자들에게 엽총을 겨누는데, 그의 총구가 가리키는 것은 그대로 이 사회의 총체적 억압상황이다. 본래, 다섯 편으로 된 이야기다.

작가소개
이탈리아의 극작가이며 배우인 다리오 포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은 조국 이탈리아에 반가움과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다리오 포는 이탈리아에서 검열, 구금, 논쟁, 소송등 끊임없이 탄압에 시달려야 했었다. 이는 그가 문화, 정치, 경제 권력체제에 끊임없이 도전해왔기 때문이다. 다리오 포를 두려워했던 것은 그가 피력한 논리가 특별히 훌륭해서가 아니라 주변에 대중적 차원의 막강한 연대를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포의 연극들은 중앙 무대에서 나와 대학, 서민주택가, 공장, 광장으로 파고 들었다. 그의 연극은 대중들에게 연극이 개인의 삶과 투쟁에 연결되 있다는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었고, 또한 단순 연극의 한계를 넘어 사회 정치적인 현상이 되었다. 다리오 포는 1926년 산지아노에서 철도원 아버지와 농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롬 바르디아 하층민 태생이기에, 마지오레 호수를 돌아다니며 광장이나 선술집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이야기꾼 전통에 익숙했다. 전쟁이 끝난 뒤 밀라노로 이주하여 브레라학교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건축학 공부는 나중에 무대장치나 의상디자인을 직접 연출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또한<건축을 공부하면서 로마 대성당들이 일류 예술가들의 표현물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과 무식하다고 치부되는 사람들 즉 공식문화의 하층민이었던 사람들의 창조적인 힘이었다는 것을 발견했다.>다리오 포는 우연한 기회에 연극을 시작하게 된다. 다른 학생들과 선거 풍자극을 준비했는데. 우연히 프란코 파렌티의 눈에 띄어 라디오 방송국에 소개받았다. 방송국에서 4달 동안 Poer Nano 의 모놀로그를 써서 연기했고 1952년에 오데온 극장에서 이 극본들을 공연했다. 한림원은 다리오 포의 노벨상 수상 이유를<배우이며 작가인 프란카 라메와 함께 중세 어릿광대 전통을 이어받아 권력을 실랄하게 비웃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위엄을 세워 주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말에 다이오 포 극세계의 특징이 모두 담겨있다. 포는 코메디아델라르테 전통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극이 새로운 것을 찾아 실험을 해나갈수록 더 더욱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거는 현재의 우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코메디아 델라르테의 영향은 이미 1958-59년에 무대에 올린 두 개의 어릿광대극에서 나타난다. 그의 부인 프란카 라메 가족이 소장했던 까노밧초에서 따온<웃기는 피날레 (Comica finale)>와 천민과 귀족 사이의 충돌을 아주 익살스럽고 패러독스하게 그린<도둑, 마네킹, 벌거벗은 여자들 (Ladri, manichini e donne nude)>이 그것이다. 1959년부터 어릿광대극에서 풍자극으로 진보하는 성숙기가 시작된다. 1962년만 빼고 매년 작품을 써서 무대에 올렸고 대중적인 성공 또한 거두었다. 이 때 그는 사회 정치적 풍자극을 세련되고 완벽하게 만들어낸다. 이 때의<희극들 Commedie>에서도 익살스런 전통극의 기법을 이용하지만 그것을 뛰어넘고 있다. 대중의 취향과 기대를 확실하게 포착해내는 감각,자유 분방한 몸짓, 변장, 마임과 곡예, 리듬감, 즉흥성 등은 코메디아 델라르테의 영향이다. 그러나 포는 단순히 웃기는 것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하나의 특별한 담화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충분히 계산된 언어를 사용하고. 패러독스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며. 특징적인 상황을 명확하게 나타내려고 노래를 키포인트로 집어넣는다. 비판의 표적 역시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정부 관료체제, 재벌, 부동산투기, 미제국주의 등 모든 경제 정치적 권력체제를 거부한다. 1968년 포는 중앙 무대를 버리고<누오바 쉐나(Nuova Scena)>극단을 만든다. ARCI조직망에 힘입어 이태리 전역을 돌아다니며 공장, 노동조합, 서민주택 등에서 공연한다. 1968-69년 사이에 굉장히 많은 공연들이 공장에서 올려졌고 운동과 투쟁을 불러일으켰다.<미스테로부포 (Mistero buffo)>는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 다리오 포의 가장 특징적이고 완벽한 연극이며, 문화 정치극에 대한 그의 시각을 집대성한 작품이다. 포는 무대에서 3시간 동안 극장치의 어떠한 도움도 없이 13-15세기 포강 유역의 사투리로 중세극을 소개하고 해석한다. 힘의 상징이었던 종교와 성당에 대한 풍자가 그 중심축이다. 시공간으로 먼 아득한 세계이지만 그 테마와 문제만은 현재도 변함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대중극의 개념에 충실했던 포는 자신의 작업이 계급운동에 도움이 되길 바랬다. 그래서 이 랬다저랬다하는 이태리 공산당과 ARCI와 결별하고 1970년<라 코무네(La Comune)>라는 극협회를 조직한다. 조합원에게만 입장을 허락하여 검열이나 경찰의 제재 같은 문제를 피하고자 했다. 그러나 직간접으로 탄압은 계속되어 1973년 11월 형사들의 공연장 출입을 막았다해서<공식 대중에 대한 저항>이라는 명목으로 체포되기도 했다.<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돈내지맙시다>는 이 시기의 작품들이다. 여러 도시에 퍼져있던 라 코무네 조직망을 통해 전개된 그의 극 운동은 전통 극장치 (무대장식, 의상, 조명) 를 거부하고, 그때 그때 적합한<열린>공연을 만들어냈다. 각 공연이 끝나고 당연히 논쟁이 벌어졌으며, 이것이 극본 수정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74년 새로운 국면의 운동이 시작되었다. 라 코무네는 많은 조합원과 관람객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활동 본거지가 없는 상태였다. 포는 한 국유재산 감정가의 초대로 밀라노 시의 재산인 리버티(Liberty) 건물을 방문하게 된다. 대중 운동과 창작활동의 문학 중심지를 만들겠다는 의지에서 그곳 주민들과 함께 쓰러져가는 그 건물을 다시 세운다. 이제 문화 공간을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새로운 시도가 시작된 것이다. 모든 집, 침대, 교회 역시 이 건물에서 초연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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