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로이 왕자의 미망인인 앙드로마크는 아들 아스티아낙스와 함께 아킬레우스의 아들이자 에페이의 국왕인 피뤼스의 포로가 되었다. 피뤼스는 메넬라오스의 딸 에르미온느로부터 열렬한 사랑을 받아 약혼까지 한 몸이었지만, 앙드로마크를 연모하고 있다. 그때 에르미온느를 사모하던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트가 그리스에서 온 사자로 등장해 화근을 없애려는 목적으로 아스티아낙스의 죽음을 요구한다. 결국 여주인공 앙드로마크는 피뤼스의 일방적 사랑 앞에서 망부에 대한 정절을 지키고, 사랑하는 아들의 목숨을 구해야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극의 진행은 그녀가 결단을 내리기까지 생기는 마음의 갈등을 쫓아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의 가혹한 요구와 그에 대한 피뤼스의 관대하면서도 교만한 거부, 앙드로마크에 대한 그의 구애라는 식으로 이야기는 진행되는데, 처음에는 그녀의 마음도 흔들린다. 에르미온느는 오레스트에게 만일 피뤼스가 앙드로마크와 결혼하고 그녀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나선다면 자신도 오레스트와 함께 귀국하겠다고 약속해 오레스트를 기쁨에 들뜨게 한다. 그러나 피뤼스는 오히려 그리스의 명령에 복종하겠다고 선언한다. 이에 오레스트는 앙드로마크를 납치하려 하고, 피뤼스를 사랑하는 에르미온느는 오레스트의 결단을 반긴다. 앙드로마크는 에르미온느에게, 그다음으로는 피뤼스에게 아들의 목숨을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데, 피뤼스는 다시금 그녀에게 양자택일을 하라고 다그친다. 앙드로마크는 조언을 구하러 망부의 무덤을 찾아갔다가 결국 피뤼스에게 결혼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아들의 목숨을 확실히 구해주겠다는 서약을 받은 다음 자살할 결심을 한다. 한편 에르미온느는 질투에 휩싸여 오레스트에게 피뤼스를 죽이라고 요구하면서도 사랑과 복수심 사이에서 계속 방황하다가 결혼식장에서 피뤼스가 오레스트의 칼에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감사와 기쁨의 말을 기대하는 오레스트에게 그녀는 미친 듯이 원망을 퍼붓고 사랑하는 사람의 시신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망연자실한 오레스트도 미쳐서 어디론가 가 버리는 것으로 막이 내린다.

라신의 대표작으로 손꼽는 비극 '앙드로마크'가 파리의 부르고뉴 극장에서 초연된 것은 1667년 11월이었다. 왕비의 살롱에서 초연된 라신의 제3작 '앙드로마크'는 궁중에서 절찬을 받았고 일주일 후로 추정되는 부르고뉴 극장에서의 초연도 코르네유의 '르 시드' 초연과 맞먹는 열광적인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로써 젊은 라신은 일약 당대의 일류 비극 시인으로 인정받았다. 초판의 인쇄 허가는 1667년 12월 28일이고 다음 해인 1668년 1월에는 책이 간행된 것으로 추측된다. 물론 반대파의 비판, 공격도 컸으리라고 짐작된다. 라신이 제1의 서문' 에서 웨르기리우스룰 인용하고, 에우리피데스의 이름을 거론하며, 전거의 정당함을 밝힘과 동시에 고대의 시인들이 만들어 낸 영웅 상을 조금도 바꾸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이 간다. 고전 비극은 국가의 운명과 개인의 운명이 깊게 상관되는 국면에 있어서 인간의 행동을 포착하고. 그것을 전형적인 인간의 극으로 재현하려 했다. 그 규범을 고대 그리스 로마의 고전에서 구한 것은 거기에는 이런 '규범적'인 인간이 사는 방법이 그려져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대적인 표현을 빌린다면 '인간 조건의 극' 인데, 그것을 사는 인물이 왕후, 귀족이었던 것은 절대왕정하의 문화 현상으로, 그들이 그런 극을 지탱하는 '진실다움'과 '적합성, 필연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극을 쓰는 것은 부르주아적 계급 출신의 작가들이었으며 무대 위에 재현되는 왕후 귀족은, 그것이 현실을 미화하든 그 치부를 드러내든 간에 그들의 기대의 지평이 포착한 왕후 귀족이었기에 그와 같은 표상에 현실의 왕후 귀족도 자기들의 환상을 내맡겼던 것이다. 이런 까닭에 고대의 텍스트를 전거로 인용하는 것은 단순히 현학적인 취미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가 주장하는 설의 정당함을 밝히기 위해서 인 것이다. '앙드로마크'에서 전거로 인용되는 것은 웨르기리우스의 '아이네이스' 제3권에 있는 '죽은 남편의 무덤에 비는 앙드로마크' 와, 제2권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트로이 낙성의 '사나운 피뤼스'의 모습이다. 또 에르미온느의 질투에 대해서는 에우리피데스의 '앙드로마케'를 들고, 헥토르의 살아남은 어린아이에 대한 앙드로마크의 애정에 관해서는 세네카의 '트로이의 여인들'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 전거들을 라신이 조작하는 방법은 매우 자유로워서 그는 동시대인이 이들 고대의 신화적 인물에 대해서 품고 있는 이미지 표상에 살을 붙여 살아 있는 인물로 만드는 방법으로 꾸며낸다. 예를 들면 에우리피데스의 '앙드로마케'에서는 정실부인이면서 아들이 없는 헤르미오네가 첩으로 있으면서 피뤼스의 아들을 낳은 앙드로마케를 저주하고 있는데. 이런 요소들은 신중하게 모두 제거하고 있다. 이렇게 작가 자신이 열거하는 전거 외에도 많은 선행 작품이 있다는 것이 라신 연구가들에 의해 지적되고 있다. 웨르기리우스의 '아이네이스' 제4권에 있는 '디도 질투의 광란'이 에르미온느의 원형이라고 하며 오레스트의 광란도 고대비극 이래의 비극적 광기의 전형이다. 그러나 라신의 '앙드로마크'가 고대의 비극이나 서사시에서 직접 태어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오레스트의 광란' 장면 같은 것은 근대 작품 속에서 그 선행 형태를 찾아볼 수 있으며 코르네유의 희극 '메리트'(1633년)의 에라스트의 환각 체험이나 지옥의 사자의 환기가 그것이다. 특히 무장 피뤼스가 자기 포로로 있는 왕비를 짝사랑하며 1년이 넘도록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는 상황설정은 전적으로 근대적인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짝사랑' 과 거기에서 야기되는 사랑의 갈등은 17세기 소설이 즐겨 다룬 주제였으며. 이런 '근대의 짝사랑' 이 라신이 참작한 텍스트였다는 것은 거의 틀림이 없으며. 비극 '앙드로마크'의 성공을 보장해 준 것도 바로 이와 같은 '근대'의 감성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트로이 전쟁에서 그리스 쪽의 영웅 아킬레우스에게 쓰러진 트로이의 무장 헥토르. 그 뒤에 살아남은 처 앙드로마크는 트로이 낙성 때 다름 아닌 남편의 적 아킬레우스의 아들 피뤼스의 노예가 된다. 그러나 피뤼스는 죽은 헥토르의 처 앙드로마크에게 사랑을 불태우며 자기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으면 헥토르의 아들 아스티아낙스를 살해하겠다고 위협한다. 죽은 자에 충실하려고 피뤼스의 사랑을 거부하는 앙드로마크를 한 쪽에 두고 피뤼스와 피뤼스를 사랑하는 약혼녀 에르미온느 사이에서 다른 한쪽에는 그 에르미온느에게 숙명적인 사랑을 바치고 있는 오레스트를 배치한 '짝사랑의 연쇄물' '앙드로마크'에서 앙드로마크는 양자택일을 강요당한다. 헥토르에의 정절을 지키느냐, 아스티아낙스의 목숨을 구하느냐가 그것이다. 전자를 택하면 피뤼스는 즉각 자기를 죽 이고. 트로이 왕족의 혈통의 씨를 말살할 것이 뻔하다. 후자를 택하면 피뤼스와의 결혼을 수락하게 되고 남편 헥토르를 배신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혹시 헥토르가 무덤 속에서 처의 배신을 내심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다. 아스티아낙스가 헥토르의 아들인 이상, 아들의 구제란 곧 헥토르 자신의 구제와 같다. 그런데 앙드로마크가 남편 헥토르를 배신하는 것은 죽은 남편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앙드로마크의 비극은 정절의 분열에 있다. 앙드로마크는 마침내 결심한다. 즉 아스티아낙스의 구제를 위해 피뤼스와 결혼서약을 하고. 결혼 후 순결을 지킨 채 곧바로 자살을 하는 것이다. 그녀는 피뤼스의 양자택일의 요구에 이와 같은 타산으로 답한다. 비록 그녀가 자살을 선택한다 해도 그녀의 결단은 사후, 세계 속에 아스티아낙스라는 생생한 흔적을 남긴다. 아무리 순결을 지킨다 하더라도 그녀의 의식이 결혼을 통하여 부정의 상념에 침범 당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녀의 결단에는 피뤼스의 관용을 전제로 한 논리가 있다. 그녀가 자살한 다음 피뤼스가 아스티아낙스의 양육을 책임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낙천적인 사고이다. 이런 그녀의 낙천성은 피뤼스에 대한 어떤 종류의 사랑의 표현이고 아첨이다. 그리고 사후에 이런 사랑의 흔적을 남긴다는 것은 그녀의 비극의 핵심인 정절에 대한 배신행위가 되는 것이다. 뤼시앙 골드만은 이 타산적인 그녀의 결단 속에 '앙드로마크'라는 작품이 '비극'으로부터 '드라마' 로의 질적 전환을 가져왔다고 간주한다.

이번에는 피뤼스에게 조명을 맞추어 보자. 에르미온느의 배후에는 그리스 군이 진을 치고 있다. 피뤼스와 에르미온느의 혼약을 주선한 것은 그리스 군의 대장 메네라스이다. 가장 사랑하는 딸 에르미온느를 버리고, 피뤼스가 트로이아의 왕비였던 앙드로마크에게 접근한다는 것은 메네라스에게 있어서 최대의 모욕이 아닐 수 없다. 피뤼스가 앙드로마크를 사랑하는 것은 조국에 대한 배은행위이며, 과거에 대한 망각이고 그리스 군에 대한 반역이다. 에르미온느의 질투는 이 반역행위를 견제하는 정당한 감정이다. 그리고 피뤼스가 오레스트에 의해서 살해되는 것은 배신행위에 대한 그리스 군의 정통적인 제재라고 할 수 있다. 피뤼스에게는 자유라는 것이 배신을 뜻한다. 그의 삶의 철학은 미래에 있지, 과거에는 없다. 소유하는 것보다는 존재하는 것, 왕으로 군림 하는 것보다는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것보다는 사랑을 받는 것, 피뤼스의 몽상은 앙드로마크의 사랑을 받으며 새로운 시간과 질서를 창조하는 데에 있다. 이미 그에게는 그리스 군도, 에르미온느도, 자기가 왕이라는 것도 별 의미가 없다. 그의 안중에는 오직 '자아'의 자유와 해방만이 있을 뿐이다.
한편 오레스트는 피뤼스 살해 행동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그의 의식 속에서 정념을 억제하기 어려운 숙명이라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 그는 어떤 부당한 힘이 죄 있는 자에게는 관대하고, 자기처럼 죄 없는 사람에게는 가혹하다고 한탄한다. 죄 없는 인간에 대해 신은 왜 분노를 갖고 대하는가. 쓰라린 고통 속에서 오늘날까지 견디어 왔는데, 은총이 내려지는 날은 언제인가. 그 날은 과연 나에게도 찾아올 것인가. '죄 있는 자'를 묵인하고 '죄 없는 자'를 학대하는 신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그러나 신은 이런 물음에 대해서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다. 신은 숨어 있으며 인간의 근원적인 상황에서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 따라서 신의 부정을 아무리 비난한다 해도 인간의 분노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은 전능한 존재이기 때문에 신을 부분적으로라도 악으로 규정해버리면 신을 모든 악의 창조자로 인정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신의 피조물인 인간도 악을 원죄로 젊어지고 있는 것이다. 악인 인간이 악의 원흉인 신에 대하여 악을 호소하고 악에 대하여 분노할 필요가 없어진다. 따라서 인간이 인간의 숙명을 저주하기 위해서는, 즉 비극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신은 적어도 숨어 있던가, 아니면 선의 일부라도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결국 신은 인간을 깨끗한 피조물로 창조했지만 인간은 그 자유의지에 의해서 더러운 존재로 전락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영웅들의 고뇌와 거기에서 나오는 한탄은 신에 대한 일종의 기도와 같은 것이 된다.

'앙드로마크'가 라신의 극작에서, 또 프랑스 연극의 역사 위에서 기념할 만한 작품인 것은 단순히 연애 비극의 걸작으로서가 아니다. 그 비극의 원인이 되는 연애를 기사도적인 갈랑트리의 전통선상에서가 아니라 인간의 실존의 총체를 잡고 끝내 놓아주지 않는 강렬한 정념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파괴적인 정념일 뿐 아니라 파멸의 정념으로 변모하는 힘이기도 하고, 고대의 운명이라고 하는 신들을 능가하며 존재했던 힘을 인간 존재의 내부에 자리 잡게 만들었던 것이다. 라신 비극의 주인공들은 단순히 운명에 조작되는 인형들이 아니다. 그들은 숙명적인 정념에 대해서 아무 일도 할 수 없지만 그 정념으로 아직도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숙명의 사랑은 역시 하나의 자유성의 체험이기도 했던 것이며, 바르트의 라신론도 이 국면을 강조하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인간 실존의 총체를 붙들고 늘어지는 정념이라 했는데. 이런 정념이 발현하는 장은 말이며 신체이다. 라신의 비극에서 언어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지만 이런 말을 발산하는 연기자의 신체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극도로 압축된 언어적 선택의 내부에서 라신의 시구는 정념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이 보여주는 온갖 변모의 신체적인 위상을 적절하게 표현한다. 바르트는 이와 같은 '착란'을 철학적으로 '자기가 다른 것에 빨려 들어간다.'는 뜻에서 'alienation'이라고 불렀는데, 그런 '착란=자기소외'의 신체적 증세가 '말'로 성립된 비극에 엄밀하게 쓰여 있다. 라신 시구의 마력은 이런 의미에서도 신체적인 데가 있다.

장 바티스트 라신(Jean Baptiste Racine)
장 바티스트 라신(1639~1699)은 프랑스의 극작가로서, 1639년 라페르테밀롱의 관리 집안에서 태어나 부모를 일찍 여의고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이후 할머니와 함께 포르루아얄 수도원으로 이사해 그곳에서 그리스어와 문학 교육을 받았고, 아울러 수도원의 교리가 지닌 엄격한 숙명관을 마음 깊이 간직하게 되었다. 나중에 파리의 대학에서 논리학을 배웠고, 한때 성직자가 되기 위해 남프랑스의 위제스 성당으로 갔으나 실패하고 파리로 돌아가 문학을 계속했다. 1664년에 처녀작인 『테바이드 : 적의 형제들』이 아는 사람의 주선으로 몰리에르 극단에서 상연되었으나 실패했고, 1665년의 『알렉상드르』도 성공을 거두지 못하자 야심 때문에 친구를 배반하고, 몰리에르와 대립하던 부르고뉴 극단으로 주연 여배우까지 송두리째 옮겨서 몰리에르와의 우정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 뒤로도 연극의 윤리성을 둘러싸고 포르루아얄 수도원의 스승에게 맞서 공개적인 편지로 격렬한 논쟁을 펼쳤다. 그러다가 『앙드로마크』(1667)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 이후로 희극 『소송광들』(1668)을 쓴 다음 『브리타니퀴스』(1669), 『베레니스』(1670), 『바자제』(1672), 『미트리다트』(1673), 『이피제니』(1674) 등 뛰어난 비극을 거의 매년 한 편씩 발표했다. 그의 최고작이자 프랑스 고전극의 최고 걸작이라 할 수 있는 『페드르』(1677)의 발표 이후 성경에 관한 두 편의 비극을 제외하고는 창작에서 손을 떼었다. 1699년에 병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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