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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정 '옷장에 구더기'

더기는 처음 본 남자를 집에 데려온다. 술에 취해 잠든 그를 보며 사랑을 기대한다. 아빠는 어림없는 소리라 하지만 더기는 기어이 그와 하루를 보낸다. 남자는 제 아이를 죽이고 사라졌다는 여자를 찾고 있었다. 악몽을 견디다 못해 더기를 찾았던 남자는 꽉 끌어안아 위로하는 더기의 품이 더 숨 막혀 달아나 버리고. 외로움에 미친 더기는 그를 망치고 싶은데, 이미 존재할 수 없는 아빠가 소용없는 일이라며 말린다. 사랑에 서툰 인간들의 모습을 은유적 세계 안에 담아낸 작품이다. 좁은 방에 옷장 하나만으로 간결하고도 묘한 세계를 만들었다. 부모와 자식, 남자와 여자의 원형적 관계가 은유적이며 절제된 텍스트와 한정된 공간을 활용하는 희곡의 연극성이 돋보였고, 의도된 여백들 역시도 인상 깊다. “너무 사랑해서, 너무 ..

한국희곡 2024.02.01

박주리 '먼지아기'

수많은 옷들과 낡은 재봉틀, 뿌연 먼지로 ‘가득 찬 방이 무대의 공간이다. 이 공간 안에서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지만 끊임없이 재봉틀을 돌리는 딸과 낡은 현실을 꿈으로 치장한 엄마가 살고 있다. 그 긴 시간이 '먼지'처럼 쌓여 딸은 임신을 하게 된다. 어느 날 이 공간에 '아프로디테 메이커'를 가장하는 턱시도우가 등장한다. 그는 엄마의 꿈(모델)에 대한 욕망에 주문을 걸어 섹스를 함께 동시에 딸에게 깊은 욕망적 충동을 느낀다. 잠시 후 딸은 출산의 고통이 다가오고 그 공간을 엿보던 턱시도가 등장하게 되고 낡은 현실에서 당황하는 엄마와 함께 이 불가사의한 '먼지아기'의 출산이 이루어진다. 그 후 그들은 '먼지아기'를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시킬 매체로 생각하고 '먼지아기'를 데리고 가게 된다. 비명 지르는 딸...

한국희곡 2024.02.01

이경헌 '서재 결혼시키기'

성주의 아내 해원이 자살한 지 일 년이 지났다. 성주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은 해원이 죽었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않는다고 말한다. 차라리 해원이 혼자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는 느낌에 가까울 것이라고 설명한다. 심리상담을 전공한 수영은 성주에게 감정을 외면하려고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성주는 자신은 부정하는 것보다 실감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반박한다. 성주는 괜찮다고 말하지만 흔들리는 중이다. 어떤 밤에는 과거에 두 사람이 합친 서재 안으로 죽은 해원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나는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느낀다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야." 자살 사별자들이 겪는 애도의 과정들을 여러 시차 속에서 섣부르지 않은 방식으로 그려낸다. 극 전반을 풀어나가는 작가의 언어적 감각이 돋..

한국희곡 2024.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