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박주리 '먼지아기'

clint 2024. 2. 1. 11:47

 

수많은 옷들과 낡은 재봉틀, 뿌연 먼지로

가득 찬 방이 무대의 공간이다.

이 공간 안에서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지만

끊임없이 재봉틀을 돌리는 딸과

낡은 현실을 꿈으로 치장한 엄마가 살고 있다.

그 긴 시간이 '먼지'처럼 쌓여 딸은 임신을 하게 된다.

어느 날 이 공간에 '아프로디테 메이커'

가장하는 턱시도우가 등장한다.

그는 엄마의 꿈(모델)에 대한 욕망에 주문을 걸어

섹스를 함께 동시에 딸에게 깊은 욕망적 충동을 느낀다.

잠시 후 딸은 출산의 고통이 다가오고

그 공간을 엿보던 턱시도가 등장하게 되고

낡은 현실에서 당황하는 엄마와 함께

이 불가사의한 '먼지아기'의 출산이 이루어진다.

그 후 그들은 '먼지아기'를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시킬

매체로 생각하고 '먼지아기'를 데리고 가게 된다.  

비명 지르는 딸. 그러나, 그들은 결국….

 

 

 

「먼지 아기」는 인간의 비정상적 욕망과 광대적 속성들이 빚어내는 그로테스크한 우화이다. '먼지'라는 재료가 갖는 아이러니를 '아기'와 결부시키는 독특한 발상이 이 작품의 최대의 미덕일 것이다. 물신사회의 불안과 허무는 수많은 욕망에의 탐닉들로 극복을 시도한다. 그 탐닉의 생산은 기계적이고 연결도 기계적이다. 「먼지 아기」는 그 욕망들의 총화다. 공연에서는 욕망의 현상과 이미지가 '쇼캐릭터'를 통해 표현되고, 엄마와 딸, 턱시도라는 인물들이 드라마를 구성한다. '쇼캐릭터' ''을 통해서 욕망의 흐름을 보여주는 존재들이며 기능적으로 극 구성의 코러스 역할을 수행한다. 극의 구성은 시간적으로는 회상의 구조를 갖지만, 서정성이 제거된 엄마의 이야기, 욕구이다. '모델'이 되겠다는 ''의 시간에 갇힌 40대의 엄마에게, 20대의 성숙한 딸은 아가로만 존재한다. 딸은 낡은 재봉틀을 돌리며 엄마의 꿈을 연장해준다. 그 긴 시간이 흘러가며 딸은 섹스 없는 불가사의한 임신을 하게 된다. 어느 날 이 공간에 '아프로디테 메이커'를 가장한 의류상 '턱시도'가 등장하여, 새로운 욕망관계가 형성되며, '아기', 즉 딸의 출산까지 사건이 진행된다. 딸이 출산한 '아기'가 먼지로 된 아기였고 이때부터 극은 비현실적 시간과 공간성을 갖게 된다. 그것은 신기루 같은 시간과 공간대이다. 「먼지 아기」는 실제 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극의 모티브는 그것에 대한 인식의 문제일 것이다. 극은 이미지 배우들이 개입하면서 적 상상력을 부여 받고 공간의 설정에 탄력을 얻는다. 이제 보이지 않은 먼지가 보여 지기를 기대해 본다.

 

 

작가의 글 - 박주리

내가 작가의 말을 말해야 될지 말아야 될지 몹시 갈등하고 있을 때 종업원과 배달원은 가벼운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한테 진 빚을 갚아야지" 종업원과 배달원은 오래된 내 늙은 친구들로서 젊을 적 그들은 어릴 적 나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가 특별히 이야기 듣길 좋아한 것은 아니었지만 난 그들의 얘길 좋아했고 그들 또한 자신에 대해 말하길 무척이 나 좋아했다. 그들의 젊은 시절 때와 같이 커버린 나는 이제 그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종업원과 배달원은 입을 닫아버렸다. 더 이상 자신들의 얘길 하지 않는다. 더욱이 늙은 자신들에 대해서는 분명한 내 떠듦의 당위성은 지난날 그들에게 진 이야기빚에 있다.

내가 4년전 처음 아기를 낳았을 때 모든 사람들이 야기 아버지에 대해 물었다. 종업원과 배달원 그리고 그만 빼고 말이다. 어차피 이 얘기는 종업원과 배달원을 위해 하는 지껄임이므로 그 둘이 나에게 했던 말은 생략하기로 한다. 그는 내 대문 앞 남자들 중에 하나였다. 그는 참으로 외로운 사람이었고 그 외로움만큼이나 나에게 많은 타액을 주었다. 그가 준 타액은 거미줄 쳐진 내 영혼을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내가 4년전 처음 아기를 낳았을 때 그는 남들과 달리 아기 아버지에 대해 묻질 않았다. 내 웃음소리가 작다고만 말했다. 그로부터 2년 뒤 내가 그 아기를 또 낳았을 때 그는 내 웃음소리가 크다고 말했다. 내가 4년전 그 아기를 낳고 나서 4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그 얘기를 낳으니 그가 말했다. “울고 있구나그가 옳았다. 나의 첫 아기는 처음이 주는 즐거운 기대감과 약간의 불안함이 있어서 웃음이 조심스러웠다. 두 번째 그 아기는 벅찬 기쁨 그 자체였다. 이번에 낳은 그 아기는 무한한 사랑과 무한한 책임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세번째 출산이 되어서야 세상에 내보낸 자의 사랑과 책임을 깨닫다니. 내 울음은 힘겨움과 즐거움의 복합체이다. 내 울음은 그 아기, 먼지아기에게 깊고 넓은 사랑을 줄 것이다. 주어야 한다. 내 아버지와 내 어머니가 내게 사랑을 주신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