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날, 느닷없이 피어버린 마을 뒷산의 목련과 함께
손녀 연서의 혼이 분옥을 찾아온다.
연서는 곧 분옥의 집으로 손님이 찾아올 것이라며,
그 손님을 잘 맞이해 달라는 부탁을 남긴다.
연서의 부탁과 오래전 어머님의 가르침에 기대어,
분옥은 곧 찾아올 손님들을 위해 자기 집 대문을 활짝 열어둔다.
연서의 말대로 정말로 손님들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인근 화학공장 운영사 직원인 둘째 딸 현성과 그의 가족들,
한동안 행방을 알 수 없었던 첫째 딸 현정과 그의 딸 아라.
그리고 연서의 연인 영서까지.
하지만 분옥의 환대 아래에서 손님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서로 반목하기 시작한다.
애도하지 못한 이들의 마음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배해률 작가와, 시적 감각으로 은유적 세계를 만들어내는 윤혜진 연출이 만나 연극 <목련풍선>을 공연했다. 연극<목련풍선>은 외진 마을의 가장 외딴 집을 배경으로, 다수가 외면해온 주변부의 세계를 조명한다. 등장인물들은 ‘목련풍선’을 부는 행위를 통해 환대의 경험을 공유하고 망자가 된 이들을 되살려낸다. 땅에 떨어져 납작해진 목련 꽃잎 사이에 미약한 숨을 불어넣는 이 애도의 행위는 세대에서 세대로 전승되며 살아남는다. 목련풍선은 잊힌 이들을 기억하고, 이 끈질긴 애도의 의지를 무대 위에서 다시금 되살려 놓는다.
환대가 품어주는 애도와 위로 - 박미란
「목련풍선」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의 감정과 환대와 기억 속에서 이루어지는 애도를 다룬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다양한 죽음이 등장한다. 뺑소니 사고로 죽은 연서, 암으로 세상을 떠난 영진 등 가족의 죽음뿐 아니라 전쟁 때 죽어 묻힌 연고 없는 사람들과 화학공장의 오염물질로 건강을 위협받으며 상여시위에 나선 사람들의 존재를 통해 삶과 죽음의 무게를 묵직히 그려낸다.
이 작품의 미덕은 삶과 죽음, 환경과 삶의 관계에 단순하게 접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죽은 연서가 분옥을 찾아오듯, 떨어진 목련 잎에 숨을 불어 넣어 부풀리듯 삶과 죽음은 이어져 있다. 마을의 흙은 공장 때문에 오염된 것이지만 전쟁 때 죽은 사람들의 살과 몸이 남긴 흔적이기도 하다. 극 중 등장하는 상여행렬과 만가는 죽음을 애도하는 의식이면서 훼손되어서는 안 될 자신들의 삶을 역설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이처럼 이 작품은 다양한 의미를 겹쳐 놓으며 삶과 죽음의 복잡성과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또한 이 작품은 세대를 이어 환대를 실천하는 인물을 통해 버려지고 소외된 이들, 상처받은 이들을 포용하며, '목련 풍선' 부는 법을 기억하고 전달하는 행동을 통해 죽은 이들을 기억하고 애도하고자 한다. 이와 함께 불편한 것을 말하지 않거나 '정화'라는 명목으로 퍼내 버리는 등 지워버리려는 행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음을 일깨우고 있다.
환대와 기억 속에서 인물들은 떠나고 돌아오며, 변화하고 회복한다. 이 작품은 사건의 전개보다 인물 간의 관계와 내면에 집중하는데, 인물들 사이의 묵은 갈등과 각 인물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서정적인 이미지 속에서 절제되고 섬세한 언어로 그려내는 점도 돋보인다. 추천작을 읽어보며 환대와 기억의 의미를 되새기고 깊은 여 운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배해률 작가의 글
22년 봄 즈음, 누군가로부터 목련으로 풍선 부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해 가을, 봄이 아닌데도 피어나버린 목련에 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 두 순간을 엮어가며 <목련풍선>의 세계를 상상했습니다. 이 희곡은 외진 마을의 가장 외진 집을 배경으로 합니다. 그 주변부의 세계에서 인물들은 땅에 떨어져 납작해져버린 목련 꽃잎에 숨을 불어넣습니다. 그렇게 색을 일밖에 남지 않았던 꽃잎은 타인의 숨을 통해 다시 한번 부풀어 오릅니다. 그 작은 놀이가 우리에게 어쩌면 큰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떠난 이들을 떠올리는 것과 낯선 이를 들이는 일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으로 이야기를 지었습니다. 기어코 전승되고야 마는 <목련풍선>속 이 마음들이 무탈히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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