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따 피자맨은 TV에서 방영하는 건달 영화를 보며
피자를 먹다가 목에 걸려 혼수상태에 빠진다.
찐따 피자맨이 보던 건달영화 속의 건달과 여인(꽃)이
찐따 피자맨의 방에 나타나고, 그들은 밖으로 나가는 통로 없이
화장실로 통하는 문만이 유일한 공간에 갇혔음을 깨닫는다.
쓰러져 있던 찐따 피자맨이 일어나 피자를 먹고 토하는 것을 반복하는
사이, 건달은 화장실에서 사자를 보았다고 꽃에게 이야기한다.
계속해서 사자 울음소리가 들리자 건달은 두려움 없이 사자와 맞서
싸우기 시작하고 점점 피투성이가 되어간다.
정신이 돌아온 찐따 피자맨은 다시 피자를 먹기 시작한다.
- ‘가장 예쁘고, 가장 폼 나고, 가장 맛있고, 가장 사나운 것‘ 부제가 붙은 작품이다.
작품은 히키코모리가 될 수밖에 없었던 한 남자가 혼수상태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고 있다. 작품은 남자의 무의식 속에서 벌어지는 꿈과 환상을 상징, 은유, 시적 언어 등을 통해서 보여준다. 밀폐된 공간에 갇혀서 피자먹기에 집착하는 피자맨이 건달영화를 보며 피자를 먹다가 건달영화 속 건달과 여인(꽃)이 나타나 현실은 환상이 되고, 환상은 현실로 여겨지면서 알 수 없는 결론을 향해서 달려 나간다. 작품은 불온하고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들을 통해서 인간의 욕망을 지배하는 구조에 대해서 조롱한다.
기존 한국적 정서로는 나올 수 없는 연극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이 작품은 기존의 연극이 가지고 있는 리얼리즘의 한계에서 벗어나 시적인 상상력으로 가득 찬, 무대로 꾸며지며 단막보다 더 불온하고 더 처절하고 더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연극을 관람하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또한 등장인물들의 의식과 무의식, 현재와 과거가 혼재하는 독특한 구조에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병폐에 대한 깊이 있는 문제의식까지 더해져 연극의 정수를 만나는 즐거움을 느끼는 작품이다.
무대는 방 가운데에 침대가 하나 있고, 방 오른편에 의자가 한 개 놓였다. 배경 오른편에 화장실과 출입문이 보인다. 방 네 귀퉁이에는 피자 상자 곽이 쌓여있다. 방바닥에도 피자가 들어있는 상자 곽과 비어있는 상자 곽이 여기저기 깔려있다. 무대중앙 객석 가까이에는 조그만 TV 수상기가 놓여있다. 화면은 객석을 등지고 있어 소리만 들린다. 방은 자폐아 같은 청년의 방이다. 방에는 화장실 출입문만 보이고, 화장실을 통해 밖으로 나가는 문이 있고, 그 문은 항상 잠겨있다는 설정이다. 자폐아는 음식을 토하거나 용변을 볼 때에만 화장실로만 들락거린다. 객석에서 보이지는 않지만, 화장실에는 창문이 있지만 어두컴컴하고, 욕조 옆에 공간이 있어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거기에 커다란 사자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다는 설정이다. 극에서는 사자의 으르렁대는 포효소리만 들릴 뿐 실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자폐아는 늘 상 피자를 먹으며 TV 수상기를 보는 게 일과다. 거의 잠시도 피자를 입에서 떼어내지를 않는다. 수상기에서 건달이나 깡패의 격투장면이 나오면 그 격렬한 장면에 맞추듯 피자를 한꺼번에 입에 쑤셔 넣고는 목이 막혀 기절을 하기도 한다. 그가 기절을 하면 방안에는 수상기 속의 건달과 여인이 등장한다. 건달은 보통사람 체격이만 권투선수처럼 주먹을 휘두르며 방안을 배회한다. 여인은 늘씬한 체격에 붉은 옷차림이고 자신을 꽃이라 호칭하며 의자에 앉는다. 건달은 깡패 세계에 적응을 잘 못하는지, 일시 도망을 친 것인지, 따돌림을 당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자신이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이듯 열심히 주먹을 휘두르며 여인에게 열정을 드러낸다. 건달과 여인은 열정적인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한다. 기절한 자폐아 청년이 일어선다. 그리고 건달에게 자신이 그를 동경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건달은 청년의 말을 건성으로 듣고 권투선수 흉내를 내며 방을 맴돈다. 청년은 여인에게도 같은 심정을 고백한다. 그러나 여인 역시 귓전으로만 듣고 흘려버린다. 청년은 어머니의 꿈도 꾼다. 어머니는 치렁치렁한 머리에 예쁜 얼굴인데다가 입가에 자상한 미소를 띠고, 역시 의자에 앉아 청년을 대한다. 청년은 어머니에게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자신의 마음을 어머니를 볼 때마다 전하지만, 그 소리가 어머니에게는 당나귀 귀에 코란을 읊기나 마찬가지인 것으로 느껴진다.
어머니가 등장하면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피자배달원의 외상값 갚으라는 소리가 들린다. 어머니는 그 소리에 대답을 않는다. 배달원은 집안에 사람이 있는 것을 안다며 문을 열라고 소리를 지른다. 아무리 두드리고 소리를 질러도 어머니는 들은 척도 않는다. 배달원은 꼭 외상값을 받아야 한다며, 대문을 부수고라도 집안으로 들어오겠다는 소리를 남기고는 되돌아간다. 어머니의 모습이 사라지면 건달과 여인이 등장하고, 건달은 일시 폭력세계에서 도망한 것으로 전해지고, 건달을 추적해 온 깡패 두목의 폭력에 저항 한번 못하는 것으로 설정된다. 화장실에서 사자의 포효소리가 들려나오고, 건달은 자신의 용기를 시험하듯 화장실로 들어간다. 곧이어 건달과 사자가 격투를 하는 듯 사자의 으르렁 소리가 드높아진다. 그러다가 사자의 소리가 잠잠해지면 화장실 문이 열리고, 건달이 피투성이의 모습으로 화장실을 나선다. 여인이 달려가 그를 부축한다. 건달은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방바닥에 주저앉는다. 어머니가 등장해 의자에 앉는다. 건달이 어머니에게로 기어가 어머니 무릎에 몸을 기댄다. 이러는 건달의 모습이 마치 자폐아 청년인 것처럼 보인다. 건달과 여인 그리고 어머니의 모습이 사라지면, 수상기를 들여다보는 청년과 여전히 입으로 피자를 가져가는 모습이 되풀이 되고, 돌연 문을 깨뜨리듯 부수는 소리와 함께 손에 망치를 든 피자배달원이 등장한다. 청년을 발견하고는 배달원은 놀라며 왜 집에 사람이 있었는데도 문을 열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청년은 자신에게 열망하던 출구를 마련해 준 배달원을 놀라움과 감동과 감사의 눈으로 바라보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꽃과 전달과 피자와 사자>는 가장 예쁘고, 가장 폼나고, 가장 맛있고, 가장 사나운 것을 조합하여 의식과 무의식, 현재와 과거가 혼재하는 독특한 구조의 작품으로 새로운 연극의 형식을 실험한다. <언니들>, <미친극>등 시적 언어를 통해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최치언 작가와 일상 언어로 우리 삶의 아픈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무대 언어를 선보여왔던 박근형 연출의 만남으로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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