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나수민 '쾅!'

clint 2025. 5. 12. 06:18

 

 

중학교 2학년 교실. 현호가 교실 뒷문을 세게 닫는다. 
뒤따라 들어오던 박수광이 문에 머리를 맞고 쓰러진다. 
교실에 있던 최현승, 이지경, 주연희, 김산이 그 장면을 목격하고, 
쾅 소리와 함께 교실의 시간이 잠시 멈춘다. 
이 짧은 순간이 여섯 명의 인물 사이에서 되풀이되고, 
현재와 미래가 뒤섞이기 시작한다.

무대는 계속 시간이 바뀌고 바뀐다. 과거에서 8년 후 다시 과거 

그리고 13년 후, 79년 후까지 과거와 미래를 왔다 갔다 한다.
스크린에서는 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 지를 추상적으로 보여준다.

 

 



어떤 순간은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다.

나이 들어가는 나와 함께 그 순간도 내 삶을 함께한다.

결국 ‘나’라는 사람은 그런 순간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건 아닐까?

뒤죽박죽 섞인 토네이도 아이스크림처럼,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순간들이 모여 ‘나’를 만드는 게 아닐까?” 
‘쾅!’의 6명의 청소년들은 15살부터 41살까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한다. 그 속에서 서로를 마주하고 

오해하고 이해하며 나아간다. 

이들이 그리는 궤적을 쫓으며 삶이라는 이상한 일에 대해 살펴본다.

 

 


'쾅'소리에 응축되어있는 어떤 것이 파편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진다. 파편은 정해진 좌표도 없고, 자신의 행로를 예상할 수도 없다. 그저 자신이 가닿을 곳에 안착할 때까지 알 수 없는 힘에 기대어 몸을 맡길 뿐이다. 나수민 작가의 <쾅!>은 그 파편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의 삶은 논리적이지도 않고, 뚜렷한 개연성을 발견할 수도 없다. 예상치 못한, 아주 사소한 어떤 순간에 의해 우리의 삶은 어딘가로 떠밀리고 지금의 존재 역시 어딘가로 흩어지는 중이다. 곧 삶이란 것은 어딘가로 흩어진다는 것이다. 이 흩어짐은 동일한 물리적 시간 속에서도 아주 개인적인 속도로 진행된다. 그런 까닭에 누군가에게는 과거의 순간이 나에게는 현재의 것으로, 또는 누군가는 이미 미래의 어떤 순간에 닿아있다. 이것이 삶에 속해있는 시간의 속성이기에 우리의 기억이 엇갈리고 때로는 혼재되어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어느 중학교 한 교실에서 들린 '쾅'소리에 그곳에 있었던 여러 개의 삶이 파편이 되어 어딘가로 흩어진다. 시간이 혼재되고, 기억이 뒤섞이고 연결이 교차되는 이 모든 광경은 우리 삶 그 자체이다.  

 

 

 

작가의 글 - 나수민 
"이상하게 잊히지 않는, 자꾸만 되돌아가게 되는 어떤 순간이 누구한테나 있을 텐데요. 그 순간을 온전히 마주하고, 잘 소화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쾅!>을 쓴 나수민이라고 합니다. 작년 9월 공연했던 <쾅!>을 올해 6월에 다시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1년 동안 잘 지내셨나요? 저는 그간 안경이 하나 더 생겼고, 싫어하던 계절을 조금 좋아하게 되었고, 약속에 자주 지각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절대 이해하기 싫었던 사람을 이해하기도 하고, 잘 지내던 사람과 영영 멀어지기도 했고요. 이상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쾅!>을 쓰면서, 한 사람에게 일어난 일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는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10살 때 생긴 일이 64살이 되어서야 끝날 수도 있는 것처럼요. 심지어 그 끝이 수학 공식처럼 딱 떨어진다는 보장도 없죠. 그냥 어떤 일은 그런 식으로 끝납니다. 아주 이상한 방식으로, 서툴게 묶인 매듭처럼. 그게 예전엔 마냥 슬프고 힘들었는데, 지금은 아주 조금 재미있습니다. 관객 여러분과 그 재미를 나눌 수 있다면 무척 기쁠 것 같습니다. 무대에서 일어나는 일을 여러분의 방식대로 즐겨주세요. 감사합니다. 

 

나수민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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