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허규 '바다와 아침등불'

clint 2025. 3. 23. 20:50

 


거제도 배내포라는 낙후된 작은 포구에 도선감댁 어른으로 불리는 윤노인이 산다.

노인의 집안은 조상 때부터 이 곳에서 목선 조선업을 하면서 살아왔다.

근년에 와서 철선의 수요가 늘어감에 따라 목선 제조업은 폐업상태에 이르렀고,

게다가 그곳이 조선 공업단지로 지정되면서 원주민들은 땅을 팔고 타지방으로

전출하거나 근처 조선소에서 일을 하며 살아간다.

노인의 목선 공작소도 대기업인 고려조선소 확장계획에 따라 타의에 의해

팔아야 할 처지에 있을 때 노인 방 벽장 속에 있는 오래된 가전품인 고서 뭉치를

정리하다가 이조 중기 임진난 후에 작성된 통영장사 판옥선 조선도본을 발견하고

그의 생의 마지막 사업으로 그것을 복원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자금, 인원, 기술 등의 어려움이 있고 가내의 반발과 외부의 압력으로

쉽게 추진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때 마침 5년전 노인집 목선을 타고 고기잡이 나갔다가 실종됐던

해원이라는 청년이 돌아와 적극 협력하게 된다.

해원은 고아 출신으로 윤노인이 키워 가르친 청년이다.
어느 날 선복 장인 변서방이 기계톱에 치명상을 입고 숨지게 되고 게다가

조선 도면을 도난당하여 노인은 심한 충격으로 공사를 중단키로 결심한다.

그러나 해원의 투지와 가족들 - 특히 딸의 협력으로 배를 완성하게 되고

윤노인은 화려한 진수식이 거행되는 가운데 밝은 아침 햇살을 받는 등불처럼 죽어간다.

 

 

 

 

전통의 계승과 복원의 중요성을 조선 과정의 여러 가지 난관과 최종적 완성을 통해 제시하였지만, 원작이 지닌 주제의 진부성과, 긴박감이 부족한 구성을 극복하지 못하였다. 시련 끝에 모든 것이 뜻대로 이루어졌는데 주인공이 자살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 후반의 갑작스런 해결은 딸의 급작스런 태도변화 때문이었는데, 딸을 사랑하는 젊은이와의 관계가 치밀하지 못해 감상으로 흘렀다. 그리고 현대조선소의 방해는 사족같다.  희극적인 인물 황주사는 성격을 잘 살리기는 했으나 극전개에서 어떤 지렛대 구실을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작가의 글 - 허규    

이 작품은 조상 대대로 이어온 목선건조업에 해오던 한 노인이 조선공업단지의 현대적이고 거대한 조선공업에 밀려날 위기에 이조중기의 전선인 장수판옥선조선도를 발견하고 그의 마지막 사업으로 그것을 복원하는 과정을 그려보았다. 현재 우리나라 해운계에서는 목선은 실용성이 없다. 더구나 전함으로서의 판옥선은 더욱 군사적 가치가 없다. 전기불이 들어오는 곳에 등잔불 만큼이나 쓸모가 없다. 그런데도 주인공 윤노인은 온갖 정열을 바쳐 복원하려 한다. 그것을 실천하기엔 가정, 사회, 재정의 부담이 큰 것은 물론이다. 급기야 인명사고까지 발생, 감당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통영장수 판옥선은 완성하게 된다. 운노인을 아버지처럼 스승처럼 생각하고 이해하고 존경하는 해원이라는 뱃사내와 가장 반발이 심했던 대형조선소설계사인 윤노인의 딸이 협력했기에 달성된 것이다. 윤노인이 전통 고수의 대변자라면 그의 딸은 전통과 유전마저도 거부하는 현대화의 기수라 할 수 있는데 그들이 처해있는 가정의 갖가지 현실문제 즉, 유전성실명, 농장운영난, 조선단지 확장계획 때문에 조선장 땅을 팔아야 하는 등의 문제를 놓고 대립하는 상항에 김해원을 뛰어 들게하여 그 갈등을 심화하였다. 서로의 이해와 관용으로 뭉쳐 배를 완성하게 하므로서 현대물질문명과 한국적 전통정신의 바람직한 조화를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이 작품의 중요인물들은 거세고 투박한 경상남도 해안지방의 사투리를 구사하도록 되어 있는데 그것은 향토적 정취나 희극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언어의 아름다움, 거제지방 사람들의 활달하고, 날카롭고, 직선적인 기질을 연극 언어로서 차용해본 것임을 밝혀 둔다. 
끝으로, 민예극단은 전년도 제1회 대한민국연극제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단체라는 책임과 의무 때문에 전단원들이 전년에 비해 부담감을 가지고 임했음을 숨길 수 없다. 그러나 연출자 이홍종과 전 제작진, 출연진의 열과성과 기량에 힘입어 졸작 「바다와 아침등불」이 빛을 보게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