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마당] 극은 바다에서 숨진 잠녀(潛女)들을 위한 ‘요왕[龍王]맞이’로 시작된다.
요왕맞이는 바다를 차지한 요왕을 맞이하여 축원하고, 바다에서 익사한 넋을 건져내
위무하여 저승으로 보내는 굿이다. 짚으로 익사자의 메치메장(인형)을 만들어
심방이 그것을 업고 바다에 들어가 감상기(신을 강림시키는 기(旗)로 대나무 가지에
종이기를 묶어 만든 것)를 양손에 들고 혼을 불러 그 인형에 주입시킨다.
그리고 메치메장을 풀어 눕혀 염습한다. 수의를 입히고 동심결을 놓고 진짜 시체
다루듯 한다. 그 다음 상여를 메고 행상을 하는데 굿의 제차에 없는 삽입 부분이다.
행상이 끝나면 시왕맞이 때와 마찬가지로 저승으로 보내는 길을 치워 닦는
질치기(신이 오는 길을 치워 닦는 의식)를 하고 혼을 부르고 원미권참하며
상복차림의 가족들이 곡을 한 후 징을 들어 방광침(사령이 저승의 좋은 곳으로 가도록
비는 내용)한 후, 열두 문 열리는 신칼점을 하며 열두문을 걸어 나간다.
신칼점을 칠 때 신칼날이 한쪽을 향한 자부연다리가 되면 “열려맞자”하는
큰 소리와 함께 징을 울리며 그 문을 떼어 던져 다음 문으로 들어가고,
점괘가 나쁘면 몇 번이고 반복한다. 열두 문을 다 지나면 영혼상을 안방으로
모셔들이고 다음 제차로 넘어간다. 굿이 끝나면 <해녀 뱃노래>와 함께 거친 파도와
싸우며 노를 저어 가는 자연과의 힘겨운 투쟁을 민요와 노젓는 마임으로 보여 주고,
불법 어로 작업을 하는 왜놈 어선에 항의하다가 능욕을 당하고 목숨까지 빼앗기는
처절한 삶의 모습을 통해 응어리져 온 한을 아주 느린 가락으로 늦추어
민요를 부름으로써 한숨소리로 표출하게 한다.
[둘째 마당] 혁우동맹이 실시한 야학 운동의 과정을 학습놀이의 형태로 풍자한다.
시국담과 한글 교육을 통해 잠녀들의 사고방식은 보다 적극적이고 현실화된다.
제주도의 토착 양반이자 지식인임을 자처하는 유림과 혁우동맹과의 대립을 통해
당시 이 바닥 지식인들의 색다른 두 가지 입장을 파악한다.
[셋째 마당] 제주도 어촌 생활의 일면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남편은 아기구덕(요람)을
흔들며 아기를 잠재우고 잠녀들은 저승길 왕래에 비유되는 물질을 나간다.
기다림의 지루함과 만남. 굿중 놀이인 ‘오줌싸개 방법’을 통하여 성적이고 원초적인
활달함을 보여 준다. 물질 해서 수확한 어로 채취물은 당시 착취기관에 낮은 값으로
빼앗기다시피 넘겨지고 생계 유지가 힘들 정도로 핍박받게 되자 수차례에 걸쳐
합법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만 일방적으로 묵살되고 잠녀들은 분노한다.
[넷째 마당] 요란한 시장의 정경을 놀이화했다. 당시 도사(島司) 겸 조합장이 세화리를
지나간다는 정보를 입수한 천여 명의 잠녀들은 장판(그날은 세화리 장날이었음)에 모여
요구 조건을 다시 호소했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자 분노한다.
잠녀들은 조합장이 탄 차를 부수고 봉기한다. 이에 육지에서부터 일본경찰대가 파견되어
본도 일본경찰과 합세하여 봉기 가담자를 수색 체포한다.
[다섯째 마당] 재판을 통해 잠수, 혁우, 유림, 일본의 입장을 살펴본다.
침략자 일본의 악랄함과 혁우, 유림의 한계에 대한 분명한 인식은 잠녀들에게 새로운
삶이 모색됨을 보여준다. 그러한 과정은 뒷풀이의 굿 ‘석살림’으로 이어진다.
석살림은 궤궤잔잔한 신을 살려내는 신명굿이다.
조금씩 신명이 더해져 광란하는 난장벌림의 뒤풀이가 된다.
'잠녀풀이'는 놀이패 수눌음의 1982년 작품이다. 일제말기 제주 잠녀들이 조합을 결성하고 한글교육을 하며 일본에 저항하다 범법자로 몰려 재판 끝에 모두 처형당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극중극 형태로 그들의 넋을 기리는 굿까지 벌어지는 등 우리나라 마당극 사(史)의 한 획을 긋는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그려낸 것이다. 사상의 자유를 인정받지 못하던 시절 역사·사회적으로 가장 첨예한 문제들을 무대로 옮기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시대적 아픔을 우회적으로 돌려 표현하는 것으로 역사적 사실을 선택했다. 일제수탈정책과 탄압에 사회 가장 작은 구성원이었던 잠녀들이 어떻게 싸웠는지를 그려낸 작품은 소재나 대사의 투박함에도 불구하고 중앙 무대의 호평을 받았다. 여성들의 사회적 역할이 크지 않았던 때였지만 잠녀들은 달랐다. 지금은 잠녀항쟁을 직적 기억하는 이가 한 명도 남아있지 않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유일한 생존자였던 김계석 할머니의 기억에 "야학공부가 생애의 커다란 전환점이 됐으며, 잠녀항쟁을 주도하게 된 인연을 맺게 됐다"는 내용이 나온다. '잠녀풀이'의 의미가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극 중에는 야학에서 글을 깨우치고 외압에 대항하는 방법을 알아가는 과정이 나온다.
일제시대 제주도 해녀들의 시위라는 상황과 현재의 시공간은 결코 일치하지 않으며, 그래서 해녀들의 선창에 따라 구호를 외치는 장면에서 관중들은 극 안의 인물로 참여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일제시대 해녀들의 고통과 현재 관중들의 현실 사이의 간극을 역사적 상상력으로 뛰어넘을 수 있는 관중들이라면 극중 상황 속에서의 해녀집회에의 참여로 현재의 집회에 대한 욕구를 채우게 되는 것이다. 특히 자유로운 집회가 허락되지 않았던 1970년대와 1980년대 중반까지의 마당극은 이렇게 과거의 투쟁 사례나 허구적인 사건 설정을 통해서도 당시 관중들의 집회적 현장성을 만들어내게 되었고, 그래서 대리집회적 성격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정숙 '몽연' (1) | 2024.12.28 |
---|---|
김성동 원작 엄인희 각색 '만다라' (2) | 2024.12.28 |
김영무 '소나무집 여인아' (4) | 2024.12.27 |
김준현 '프로메테우스의 간' (4) | 2024.12.25 |
이상우 '돼지 사냥' (4) | 2024.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