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 후 6년이 된 젊은 스님 법운은
아직도 연인 영주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구도의 길을 찾는다.
그 즈음 우연히 알게 된 승적도 없는 땡추승 지산을 통해
큰 갈등과 번뇌를 받고 주체하지 못한다.
소주병이 떨어질 날이 없이 심지어 자살용 약까지 지니고 있으면서도
항상 허허대고 살아가는 지산. 어쩌면 그는 달관된 부처 같기도 하고
또 어쩌면 세속의 병든 잡놈 같기도 했다.
이런 둘의 영혼의 싸움이 아프게 벌어진 얼마 후
지산은 역시 그런 엉망의 모습으로 눈 속에서 숨을 거두고 있었다.
지산의 시신을 화장하고 법운은 영주와 어머니를 찾아본다.
그리고 지산이 못 잊어한 옥순을 만난 뒤,
세속의 모든 인연이 덧없음을 확인한 법운은
다시 고행의 길을 떠난다.
원작은 1979년 발표해 베스트셀러에 오른 김성동의 중편소설인데
1981년 영화로 성공하고 1982년에 엄인희 각색, 심재찬 연출로 연극으로 공연됨.
법운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중 처형된 좌익인사다. 법운의 어머니는 남편의 처형에 충격을 받아 가출한다. 어머니의 가출 이후, 종조모댁에 잠시 머물던 법운은 종조모댁 산장에 머물고 있던 지암 스님을 만난다. 지암 스님의 설법을 듣게 된 법운은 진정한 구도를 성취할 목적으로 출가한다.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방황하던 법운은 우연히 들르게 된 벽운사에서 파계승 지산을 만난다. 지산은 불교의 계율은 아랑곳하지 않고 술과 여자를 가까이 하는 파계승이다. 지산은 가난하고 힘없는 자를 위해 법관이 되고 싶어 했지만 인간이 인간을 재판한다는 것에 회의를 느껴 입산한 인물이다. 수행 중 석간수를 마시러 나왔던 지산은 딱 한번 눈길이 마주친 여인으로 인하여 파계의 길을 걷게 된 인물이다. 이러한 지산에 법운은 이끌리지만, 법운은 지산처럼 과감한 파계에 이르지는 못한다. 법운과 지산은 오대산 암자에 거처를 정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지산은 법운과 함께 암자 아래 술집에서 술이 취해 돌아오다가 산중에서 얼어 죽는다. 법운은 자살을 생각하지만 자신의 수행이 피안으로의 도피를 꿈꾼 것이라고 반성한다. 그리고 진정한 구도는 피안이 아니라 불쌍한 중생을 구제하는 것에 있다고 깨닫는다. 그래서 법운은 여자와 동침하며 다음날 아침, 환속한다. 진정한 구원과 성불의 문제를 종교적 배경으로 그려낸 자전적 소설이다. 한국문단에서 불교소설이라는 보기 드문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여기서 진정한 구도는 계율과 피안에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세속에 있다는 것을 제시함으로써 구도의 의미를 갱신한다.
<만다라>는 불교적인 색채의 작품이다. 평소에 불교에 대한 관심도 많았었기에 이런 각색 작품은 내놓은 것이다. 불교적인 작품을 각색한 것에는 국립극장에서 공연된 <진감국사 행장기>라는 것도 있음을 볼 때 엄인희 작가의 불교에 대한 관심도를 알 수 있다. 소설을 각색하는 것은 다른 작가의 창작 의도를 잘 짚어내야 하는 작업이기에 그만큼의 심리적 부담이 따르고 또 새롭게 창조한다는 의식을 갖고 덤벼들어야 하는 부분이라 망설이게 되는 일이었을 터였지만, 늘 자신의 창작품만을 고집해서 쓰다가 무슨 생각이 들어 각색을 시도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각색에도 열성을 다한 흔적이 있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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