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손이 세조에 관한 역모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순간에서 시작한다.
세조가 왕권을 소유하면서 벌어진 여러 가지 사건에 대해 과거의 대의와 함께
그들의 명예를 되 찾기 위한 성삼문을 위시한 집현전의 학자들은
세조에게 맞설 것을 다짐하고 이를 안 세조는 그들을 어쩔 수 없이 처형시킨다.
이때 같은 집현전의 학자였던 신숙주는 그들과 절친했던 동료들을 구하는 것과
나라의 개혁이라는 두 갈래에서 고민한다.
하지만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의 동료들을 설득시키는 방법 외엔 없었다.
하지만 이미 그의 동료들은 그를 배신자라 불렀고 숙주의 설득은 실패하고 만다.
세조 역시 집현전의 문사들을 처형할 뜻을 없음을 표시하며 성삼문을 설득하지만
삼문은 단호히 세조의 요구를 거절하고 죽음을 택한다.
이에 숙주는 세조에게 그들을 관대히 처리해줄 것을 청하지만 세조는 청을 거절한다.
끝내 신숙주의 동료들인 집현전 학자들은 역모죄로 무참히 처형을 당하고
신숙주는 그것을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숙주에게 돌아온 것은 대중들의 질타와 함께 배신자라는 무거운 짐이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 결국 그의 아내 윤씨가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숙주의 아들 정은 아버지를 버린다. 심지어는 숙주의 집에서 일하는 하인들마저
역적이라며 숙주를 외면한다.
모두에게 외면을 당한 숙주를 세조는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들과 함께 죽을 수 있는 기회이다.
그것은 숙주의 배신자란 굴레를 벗어나게 해주려는 세조의 호의라고 말한다.
그러나 숙주는 자신을 속이는 일이라며 이를 거절하고
세조를 도와 나라의 개혁을 돕겠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1455년에 일어난 어린 단종을 살해하고 왕위를 이어받았은 세조의 역사적인 사건을 세조를 보위하며 그들이 추구했던 이념을 실현하고자 한 신숙주의 입장으로서 현대적인 관점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역사를 우리가 잘못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서 출발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들은 얼마나 진실되고 그 의미는 과연 어디까지가 참된 의지일까..... 세조의 역사적인 판단은 폭군과 개혁자의 양갈래로 나눠여진다. 그 안에 있던 인물 바로 숙주, 그의 고민과 갈등 그리고 그 선택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고 또 역사는 그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그 안에 묻어있는 한 인간으로서의 진실, 그것을 관객들에게 던져준 듯하다.
연극명 <숙주 14552002>는 1455년에 살았던 그들과 2002년 동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를 비교하게 한다. 두 개의 시간대가 공존한다. 1455년에 살았던 숙주와 세조의 유령을 불러내는 것이 아니라 숙주와 세조라는 두 인물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그들만의 혼란스러운 단상(短想)들을 나열한 것이다. 사랑과 배신, 충의와 반역, 대의명분과 그에 따른 죽음... 인간의 삶을 결정 지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모습 속에서, 세조찬위라는 큰 사건에 가려져 깊이 다루지 못했던 인간이기에 지극히 인간이었기에 행해졌던 서로의 관계와 내적인 갈등을 되짚어, 우리의 현재의 삶을 바라보게 한다. 그래서 현재의 부조리한 단상들을 느끼게 한다.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진실이 왜곡되고, 왜곡된 진실마저 무의미해지는 이런 아이러니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은 현대사회의 부조리한 모습처럼 보이지만, 숙주의 의식세계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풀리게 되는 여러 가지 오브제들이 무대에서 펼쳐져 관객들에게 상상력의 즐거움과 한 시대를 버겁게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모습들을 돌아보게 한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상열 '달빛처녀' (5) | 2024.11.12 |
---|---|
성재현 '우주를 여행하는 라이카가 남긴 마지막 메세지' (5) | 2024.11.12 |
김성구 '우리들의 초상' (5) | 2024.11.09 |
이철 '산재일기' (9) | 2024.11.09 |
장진 '택시 드리벌' (2) | 2024.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