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철 '산재일기'

clint 2024. 11. 9. 13:09

 

 

연극은 두 개의 숫자로부터 시작된다.
'2,080/122,713'
이 숫자는 2021년 산업재해 사망자 수와 재해자 수다. 
통계는 산업재해를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다루는 방식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저마다 사연을 지닌 이야기가 생략되어 있다. 
작가는 산업재해를 주제로 17명의 인물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한다. 
이들의 말이 쌓일수록 산업재해는 사회적 현상이라는 외피를 벗고, 
저마다 제 삶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하나하나가 겪어낸 사건으로 드러난다. 
연극은 우리의 삶과 노동이 어떻게 재해와 연결되어 있는지 질문하며, 
몸을 잃은 사건이 몸으로 겪어낸 사건임을 증명한다.



겹겹의 말, 겹겹의 만남 - 김소연 (연극평론)
극장에 들어서면 무대 후면을 꽉 채우고 있는 이름들이 보인다. 이 연극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만났던 인터뷰이들의 이름이다.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연대 단체활동가, 노동조합 간부와 그의 가족, 재판에 참여했던 변호사, 산업재해 노동자를 치료했던 의사, 사고를 당한 노동자의 친구들이다. 연극은 앞으로 무대 위에 등장할 인물들을 먼저 보여주고 시작된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 인물이 아니다. 이 이름들을 인물로 불러오는 것은 무대 위의 배우다. 배우들은 '화자'로서 산업재해에 대한 여러 자료를 소개하기도 하고, 17명의 인터뷰이 그리고 국회 청문회장의 인물들이 되어 그들의 말을 전한다. 
연극은 '2,080/122,713'이라는 숫자를 소개하면서 시작된다. 이 숫자는 2021년 산업재해 사망자 수와 재해자 수다. 굳이 셈을 하여 확인하지 않더라도 작업장에서의 재해로 많은 이들이 죽고 다치는 일이 매일매일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한눈에 알 수 있다.산업재해의 참혹함은 목숨까지 앗아가는 사고가 일상 처럼 벌어진다는 데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산업재해를 인지하게 되는 것은 이처럼 반복되는 일상의 참혹함이 아니다. 가깝게는 구의역 김군 사망사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있었던 김용균 사망사건, 그리고 SPC노동자 사망사건 등이다. 모두 젊은 청년들이었고 참혹한 죽음이었다.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그 청년들이 일하던 일터의 열악한 환경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러한 작업 환경이 그 동안 경영 합리화의 성과라고 포장되어왔던 인력감축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복잡한 고용체계를 통해 위험을 외 주화하고 작업장의 안전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또한 드러났다. 공기업이든 민간기업이든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이들의 사망사건이 일어난 곳은 우리가 매일 오가는 지하철 승강장, 한순간도 접속되지 않으면 생활이 불가능한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 거리 어디에서나 마주칠 수 있는 향긋한 빵을 만드는 제빵 공장이었다. 모두가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친숙한 공간이고 일상의 필요를 생산하는 곳이었다. 
사실 산업재해 현장은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지 않는 한 알기 쉽지 않다. 기업의 상품은 노동을 통해 생산되고 그 산물은 유통체계를 통해 우리 생활로 흘러들지만 그것이 만들어지는 현장은 늘 가려져 있다. 노동은 가려진 채 상품만이 흘러 다니는 세계다. 젊은이들이 노동자들이 죽고 난 이후에야 우리의 생활을 지탱해주는 지하철과 전기와 빵이 죽음을 옆에 두고서 갈아 넣어지는 노동에 의해 유지되고 생산된 것임을 알게 된다. 모든 산업재해 현장이 우리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산업재해의 참혹함은 어떤 사건의 성격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일상에 넓게 산개해 반복되고 있음에도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산재일기>는 이 은폐된 세계를 드러내기 위해 구체적인 순간들에 집중한다. 피해 당사자의 사고 상황에 대한 진술,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겪었던 사고 이후 사측의 대응 등 사건현장에 대한 생생한 증언도 있지만 친구의 죽음으로 처음 산업재해 문제를 접했던 청년들의 이야기도 있다. 그런가 하면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아버지를 지켜보아왔던 아이들의 이야기도 있고, 엄마가 현장에서 얻은 질병으로 아이 역시 피해자가 된 이야기도 있다.  
이러한 다양한 인터뷰이의 말들은 <산재일기>라는 제목 그리고 '바텀 연극'이라는 형식에서 미루어 짐작하게 되는 것, 그러니까 이 연극이 사건의 은폐된 진실을 밝힌다거나 사건에 얽혀 있는 사회적구조를 파헤친다거나 현장의 부조리함을 고발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연극은 다양한 인물들을 펼쳐 세움으로써 사건의 참혹함에만 집중되어 있던 우리의 시선을 돌려 '우리 삶과 우리의 노동이 어떻게 재해와 연결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향하게 한다. 



싸움은 계속된다 - 이철 작가의 말 
<산재일기>는 산업재해를 다룬 버바텀 연극이다. 버바텀 verbatim은 '말 그대로'란 뜻을 지니고 있는데, 이 연극 형식은 실제인물의 인터뷰 내용을 장면구성의 핵심 재료로 삼는다. 그 밖에 논문이나 통계 등 여러 자료에서 필요한 내용을 선별해 활용기도 한다.
<산재일기>는 산업재해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17명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다. 2021년 2월부터 9월까지 인터뷰 작업을 진행했고 2022년 4월까지 대본작업을 거쳐 그해 7월 전태일기념관에서 초연을 올렸다. 이 과정은 노회찬재단의 기획으로부터 시작됐고, 노동건강연대 공동대표 전수경 활동가가 인터뷰 작업을 이끌어주었다. 아주 예전에 인천에 갔다가 한 조합원이 해준 얘기였는데, 저녁에 식사자리에서요. 그분이 오래전에 있었던 일을 말씀해주신 거예요. 그때만 해도 이런 일이 있었다. 하면서, 공단에 있는 작은 공장에서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서 죽은 거예요. 그런데 끼여 죽은 노동자의 어머니가 급히 시골에서 올라와서 사장한테 미안하다고 했다는 거예요. 우리 아들 때문에 이렇게 물의를 일으키고 여기 생산시설이 멈추게 돼가지고 미안하다고. '옛날엔 그랬다. 노동자가 죽으면 가족들이.....' 그래도 지금은 많이 달라진 거라고, 지금은 많이 좋아진 거라고 했던 게 가끔씩 생각나요.
전수경 선생에게 들었던 이야기다. 작품을 쓰고 무대에 올리면서 그처럼 나도 이 이야기를 자주 떠올렸다. 이야기의 배경이 30~40년 전이라고 했으니 1980년대 혹은 1990년 대의 일일 것이다. 문득문득 저 어머니가 생각났다. 불행 또는 불운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던 사람. 자식이 일하다 겪은 사고마저 자기 탓으로 여기던 사람. 이 이야기는 그 시절의 내 어머니를 말하는 것만 같았다. 산업재해의 원인을 사고 피해자의 부주의로 돌리던 세 상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초반이다. 2002년 노동건강연대가 산업재해를 기업 범죄로 다루면서부터다. 노동건강연대는 이듬해 외국의 '기업살인 The 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 사례를 소개하면서 "산재사망은 기업의 살인이다."라는 구호 아래 캠페인을 펼쳤다. '기업살인'. 나는 이 말을 전수경 선생을 인터뷰하며 처음 들었다. 이 말은 산업재해에 대한 내 이해를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그전까지 나 또한 산재를 개인의 불행 또는 불운쯤으로 여겼던 것이다.  대기업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크고 작은 사고가 집중되는 일. 이런 현상에 한국 사회가 눈을 뜬 건 2010년 대부터의 일이다. 오래전부터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일은 끊이지 않았지만 원청-하청이라는 구조 속에서 사고의 원인을 살피기 시작한 건 이 시기부터다. 2013년에는 '산업 안전보건 범죄의 단속 및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 '기업살인처벌법률안' 등이 발의되기도 했다. 2017년 고 노회찬 의원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후 '중대재해처벌법'으로 명칭이 바뀌었다.)을 대표 발의했다. 이때의 일을 기억하는 한 분에게서 나는 기자 한 명 없던 기자회견장 풍경의 쓸쓸함을 들었다. 
2021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다. 언론은 추락, 끼임 등 산업재해 사례를 소개하는 데 바빴다. 기업은 사고로 인한 책임의 정도를 판단하느라 분주했다. 중대재해처벌법 때문에 로펌에 일이 늘었다는 풍문이 돌았다. 민변(민주사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원인 손익찬 변호사로부터 제도의 법이 산업재해를 다루는 방식을 들었다. 그는 김용균재단의 김미숙 어머니를 만나볼 것을 권했다. 산재사망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가 기업의 책임을 묻는 싸움에 나서는 건 극히 드문 일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이기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싸움에 나선 사람을 여럿 만났다. 녹취를 정리하며 그들 각자의 싸움과 그것이 쌓인 역사를 가늠해보곤 했다. 자식 잃은 일을 자기 탓으로 돌리는 어머니의 마음은 가슴 아프다. 책임을 묻는 싸움에 나선 어머니의 마음도 가슴 아프다. 산업재해라는 사건에 대응하는 여러 개인의 싸움은 보 상과 처벌이라는 영역에서의 싸움으로 끝나지 않았다. 사 고라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을 평생 견디고 버텨내는 일로도 싸움은 계속된다. 사고 이후를 겪어내는 삶 말이다. 
 "송면이가 무슨 일을 했어요?" 1988년 15살 문송면 군의 일이다. 처음엔 몸살처럼 아팠다. 증상은 급격히 나빠졌다. 병원 몇 군데를 거쳤으나 원인을 찾지 못했다. 통증이 심해졌고 아이는 자신의 치아를 스스로 뽑아버릴 만큼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때까지 아무도 아이에게 '무슨 일을 했는지 묻지 않았다. 낮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엔 학교에서 수업 듣던 아이들이 많던 시절이었다. 김은혜 원진직업병관리재단 이사는 이 질문을 아이에게 처음으로 던진 의사의 이름을 또박또박 발음했다. "박희준 선생님만 그 질문을 했어요 그리고 특수건강진단을 한 거죠. 거기서 수은, 유기용제 중독이 나온 거예요. 아이는 온도계 압력기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다. 나는 한의사가 던진 이 질문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잘 알지 못했다. 김은혜 선생이 박희준 선생의 이름을 강조해서 말할 땐 좀 의아하기도 했다. 노동건강권 운동의 역사를 힘주어 말하는 것이리라 짐작했다. 
이 질문의 의미를 고민하게 된 건 2023년 아르코예술극 장 소극장에서 <산재일기>의 재연을 올린 뒤 한 관객이 자신의 SNS 계정에 올린 감상을 통해서였다. 그는 "무슨 일을 했어요?"라는 연극 속의 질문을 인상 깊게 기억했다. 무대 위에서 문송면 군의 일은 다른 장면에 비해 무척이나 건조하고 간략하게 다뤄진다. 그럼에도 그가 이 질문을 콕 집어 기록한 것은 이 질문이 그에게 나름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 또한 몸이 아픈 건 아닐까, 일터가 그의 몸을 병들게 한 게 아닐까. 그제야 이 질문이 지닌 무게를 조금 알 것 같았다. 사람이 아픈 건 그 사람의 불행과 불운 탓이 아닌 것이다. 최근에야 우리는 사람이 아픈 이유를 그가 하는 일과 관련해 살필 줄 알게 됐다. 무대를 접한 많은 관객이 자신의 감상을 여러 형태로 남겨주었다. 관객들은 17명 인물의 일을 그 인물들 각각이 겪은 고유한 이야기로 들어주었다. 사회적으로 가려진 이야기를 섬세하게 귀 기울여 듣는 많은 관객이 있음에 놀랐다. 무대를 찾아준 관객에게 감사드린다. 짧지 않은 시간을 들여 자신이 겪은 일을 들려준 여러 인터뷰이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크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인 걸 알기에 더더욱 그렇다. 비록 인터뷰라는 형식이었지만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매번 내 삶을 돌아볼 수 있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깊게 고민할 힘까지 얻기도 했다. 내가 경험한 이런 시간을 연극적으로 재현하는 것. 이것이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연출 방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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