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청준 '이어도, 이어도, 이어도'

clint 2024. 6. 24. 10:00

 

 

 

제주 사람들은 옛부터 이어도라는 섬에 대한 환상을 안고 현실의 어려움을 견뎌왔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본 사람은 없었다. 그것을 본 사람은 모두 그 섬으로 가 버리고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해군 함정까지 동원하여 파랑도 수색 작전을 벌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두 주일 동안 계속된 치밀한 수색전에도 불구하고 끝내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파랑도 수색 작전을 취재하기 위해 함게 승선했던 제주 출신의 남양일보사

천남석 기자의 실종 사고가 난다. 천남석과 마지막 밤을 보낸 정훈 장교 선우현은

그 소식을 양주호 편집국장에게 전하고, 그가 자살했을 거라는 편집국장의 말에

호기심을 갖고 그의 죽음을 탐색하게 된다.

천남석에게 제주섬은 떠나고 싶고 거부하고 싶은 과거요, 현실이다. 뱃사람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늘 바다에서 며칠씩 보냈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나타날 때까지

이어도 노래를 부르다 죽는다. 어린 그가 겪은 아픈 상처는

이어도의 부재를 간절히 원하게 만든다. 섬사람들은 이어도라는 섬을 믿기에

이어도 노래를 부르면서 그리움과 고통을 삭여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수색 작전에서 그 섬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자 그는 자신의 섬을 보며

부재를 거부한다. 그도 결코 뿌리를 떠날 수 없는 섬사람이었다.

결국 섬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살했다는 것이다.

 

 

 


‘이어도’는 제주도 뱃사람들의 구전으로 전해져 오는 피안(彼岸)의 섬 이름이다.
대개의 문학작품들에 나타나는 피안의 이상향이란 현세의 모든 고난과 갈등에서 해방된 지극히 아름답고 행복스런 복락(福樂)의 땅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어도 역시 제주도 뱃사람들의 그런 복락과 구원의 이상향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어도는 다만 그러한 구원과 복락의 이상향일 뿐만 아니라 제주도 뱃사람들의 죽음의 섬을 의미하기도 한다. 뱃사람들이 바다를 나갔다 돌아올 수 없게 되면, 그들은 마침내 이어도로 갔노라고 믿는다 한다. 이어도로 가서 이어도의 복락을 누리게 된 거라고 믿는다 한다. 그리고 그것을 믿고 싶어하는 뱃사람들은 그들의 위험스런 뱃길을 이어도로 위로받으며 두려움 없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어도는 또한 제주도 뱃사람들의 죽음의 섬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복락의 이상향에 대한 꿈과 죽음의 공포로써 이어도는 다만 피안의 섬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제주도 뱃사람들의 차안(此岸)의 삶 속에서 그 주술적인 힘이 현실화한다. 제주도 뱃사람들의 차안의 삶을 간섭하고, 그 현실적인 삶의 모습을 결정지으며, 그 의미를 해명한다. 나는 소설 〈이어도〉에서 이어도의 전설을 소개하고 그 섬의 정체를 밝히려는 것이 아니라 그 섬이 어떻게 우리들의 삶을 거꾸로 간섭해 왔고, 또 모습지어 왔는가를 보려고 노력했다. 이어도를 빌어서 피안의 그것이 아닌 현실의 삶의 한 참 모습을 해명해보고 싶어한 것이다. 바라건대 우리에게 더 많은 이어도가 있어줬으면 좋겠다. 그것은 이어도가 실재 아닌 허구에 불과한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때로 가시적인 사실에서보다는 그 허구 쪽에서 오히려 더 깊은 진실을 만나게 될 때가 있으며, 자유로운 정신의 모험을 꿈꾸는 한 개인의 내면사와 그가 실존하고 있는 현실과의 갈등 속에 우리는 가장 절실한 우리 삶의 참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작자의 말

 

 

 

소설 '이어도'는 실제로 섬이 있느냐 없느냐를 알기 위해 그 섬을 찾아 나섰다가 실종한 한 사람을 가운데 두고 구성된다. 그 섬의 실재를 처음부터 믿지 않고 있었던 그가 막상 섬이 실재하지 않음을 확인했을 무렵에는 '이어도'가 자기 심중에 이미 들어와 있음을 알고 자살한 것으로 추측된다는 설정. 이야기 속에 이야기를 끌어들여 주인공의 심리의 흐름, 행동의 양태 등을 제 3자들의 이야기와 추측을 통해서 펼치는 이른바 '격자소설수법'을 쓴 작품이다.

 

 

 

1976년 극단 신협에서 초연한 작품이다. 하유상 각색으로 원작소설을 연극형상화에

성공했고 흥행도 좋았던 작품으로 나중에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작품 '이어도'의 소재는 제주 사람에게서 구전으로 전해 내려온 전설들에서 취재했다.

제주도 사람들에게 '죽음의 섬' '복악의 섬'으로 상징되는 이어도에 관한 전설에 따라

이 섬의 실재를 확인키 위해 실제로 해군이 수색에 나섰었고

이어도로 불리는 섬은 실재하지 않음을 밝힌 일이 있었다.




연극평
이청준(李淸俊)의 동명소설을 각색(하유상)한 <이어도>의 주제는 그 한국적인 원초의식 때문에 우리의 심금에 깊이 와 닿는 대신, 원활하지 못한 열아홉 번의 장면 이동에 곁들인 수련되지 않은 연기 때문에 무대 형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전설의 이어도는 우리의 본향이며 근원이다. 그것을 확인하는 길에 실종된 천기자와 그의 사고사를 확신하는 선우 선장이 자살설에 차츰 동조해 가는 그 과정은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 죽은 자는 근원으로 돌아간 것이고, 그 죽음의 원인을 찾는 프로세스에서 우리는 우리가 잊고 있던 본향을 차츰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잊어버렸던 세계의 회복이야말로 무대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감명이다. 그 감명을 더욱 확실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연극적 요소로서의 연기들이 그 감명을 반감시킨다면 그것은 너무나 시니컬한 역설인 셈이다. 우리는 동작과 연기를 구분하지 못하는 연기자, 그리고 자연스러움에 인공적 자연이 있고, 그것이 예술을 만드는 연기라면 사실을 모르는 연기자 때문에 우리 연극예술이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신협의 <이어도>는 우리 연극계의 이어도이다. 섬의 확인과정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아는 알레고리와 상징이 특히 연기하는 연극예술가들의 가슴에 자리해 주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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