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병주 원작 차범석 각색 '낙엽'

clint 2024. 6. 20. 22:10

 

 

서울 변두리 산동네인 옹덕동 18번지 18호에는 각기 특이한 직업을 지닌 
5가구가 함께 살고 있다. 전직교사이며 현재는 동사무소 임시직인 안인상부부, 
전직 시체미용사인 모두철씨, 양공주 상대의 영문편지 대서사 신거운씨부부, 
그리고 전직 지방신문 편집국장 시대에 필화사건으로 파면당한 박열기씨에 
이 집의 주인이며 구멍가게 주인인 양호기 노인과 젊은 아내 청주댁.
이렇게 각각 특이한 직업을 지니고 있지만 한마디로 말해서 이들은 
현실에서 밀려나온 낙엽 같은 인생들이며 좌절 속에서도 막연하게나마 
미래를 내다보고 사는 선의의 인간들이다. 
그런데 어느 날, 집주인 양호기 노인이 시장에 가는 길에 철둑길 
굴다리에서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은 젊고 아름다운 아내 
청주댁에게 어떤 관련이 있는 치정살인으로 보고  수사를 시작한다. 
그런데 청주댁이 다른 남자와 밀회한 현장을 목격한  안인상은 
청주댁으로부터 제발 그 사실을 발설하지 말아주기를 부탁 받는다. 
그리고 같은 날 밤 이 집에 세든 박열기와 신거운의 아내 윤여사와 함께 
가출하게 되자 하루밤 사이에 옹덕동에는 폭풍이 불어가는 격이 된다.
며칠 후 윤여사는 일수놀이 하는 메리엄마를 통하여 신거운과의 합의이혼을 
제의해온다. 위자료는 여자측에서 백만원 내겠다는 조건이다. 뜻하지 않은 
조건이라 신거운은 이혼에 동의하고 백만원을 받고 그 돈을 메리엄마가 
권하는 대로 일수로 깔게 된다. 한편 경찰은 안인상에게 끈질기게 추적해온다. 
인정에 못이겨 사실의 진술을 거부해오던 안인상은 마침내 경찰이 제시한 
범인의 사진을 보고서야 증언하게 된다. 
어느 날 의정부에서 외국인 상대로 장사를 하고 있다는 모두철의 아내 노여사가 
흑인병사 <스미스>를 데리고 온다. 그리고는 자기와 남편 관계를 

남매라고 속여왔다니, 모두철로서는 기가 막힐 일이다...

 


작가의 글- 이병주
人生에 지친 사람, 좌절한 사람이 우리 주변엔 너무나 흔하다. 小說, 演劇, 映画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은 이런 등속의 사람들이다. 나의 小說 「落葉」은 내 나름대로의 愛着을 좌절된 群像에게 쏟아본 作品이다. 어느 정도로 成功했는지는 모른다. 그런데 뜻밖에 이 作品이 韓国文学賞 수상에 나는 저윽이 당황했다. 일이 그렇게 될줄 알았더라면 좀더 정성을 드려서 쓸 것이었다는 뉘우침이 쓰기도 했다. 아닌게 아니라 나는 이 작품을 너무나 쉽게 쓴것이다. 그런데다 崔銀姫씨로부터 이것을 연극으로 해보겠다고 들었으니 놀라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농담이라도 좀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그래 「이 소설이 연극이 될 수는 없을 텐데요」했던 것인데 그건 막상 겸손을 꾸며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崔銀姬氏는 앞으로 연극에 전념할 것이란 의향을 비추며 꼭 무대화 해보겠다는 것이다. 나는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응락하고 말았다. 脚色을 車凡錫 씨가 맡는다는 것이어서 은근한 期待도 겹쳤다. 車凡錫씨가 아무리 날고 기는 사람이기로서니 小説 「낙엽」을 연극으로 만들 수는 없을 것이란 놀부的인 생각도 없지 않았다. 小説 「낙엽」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죽은 것처럼 사는 사람, 사는 것처럼 죽어있는 사람들을 둘러싼 서글픈 이야기다. 그리고 이렇게 살거나, 저렇게 살거나 살고 있노라면 悲哀에 물든 기쁨도, 汚辱에 무친 호사로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너절한 사건이 반복되어야 하고 씨알머리 없는 소리가 뒤범벅이 되어야 하고 줄거리는 권태를 닮아 드라마는 求心点도 없이 확산되기 마련인 것이다. 이를 테면 反演劇的인 要素만으로 엮여진 소설이다. 그런데 車凡錫씨의 脚色은 정말 놀랄만 했다. 연극 「낙엽」은 비애도 모욕도 호사도, 그리고 俗怠마저도 간추려 하나의 求心点을 찾아선 小說과는 역으로 가는 作業을 통해서 희곡으로 集約해 놓았다. 이렇게 되고보니 小說 「落葉」이 戯曲「落葉」으로 완전히 탈바꿈을 한 셈이다. 말하자면 李某의 作品은 온데간데가 없고 車凡錫氏의 작품이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불가불 새로운 興味가 돋아나게 되었다. 이미 小説을 읽은 사람은 연극을 봄으로서 거의 같은 素材로서 世界가 어떻게 이렇게 다를수 있을까 하는데 놀랄 것이고, 연극을 먼저 보고 小說로 돌아감으로써 드라마와 小說과의 相関関係, 그리고 그 각기의 限界와 의미를 보다 선명하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그러니 演劇의 마당인 原作者라고 해서 小説家가 등장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만일 原作者가 필요하다면 이 연극이 실패했을 경우다. 車凡錫, 崔銀姬氏를 비롯해서 여기 참여한 演劇人諸位가 연극에 실패할 까닭이 없으니 만일 실패한다면 오로지 그건 원작이 지닌 本質的인 欠陥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車凡錫氏의 勞苦에 경의를 표한다. 아울러 崔銀姫씨와 俳優劇場 단원의 精進에 보람 있길 비는 마음 간절하다.. 내 개인의 소망을 말해본다면 이 기회를 인연으로 戱曲을 써서 崔銀姬氏의 모처럼의 好意에 보답하는 날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