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윤조병 '술집과 한강'

clint 2024. 6. 14. 20:06

1978 4월 여기에 처음 발표함

 

 

 

시인의 하루가 시작된다.

아침 식전에 신문을 들고 화장실로 간다.

장시간 시 창작 구상을 하나?

그 사이 아내는 초등학교 다니는 두 아이를 준비해 보낸다.

남편이 시인인지라 그리고 집에서 시를 쓰는 게 전부라 

둘만 남는다. 시인 남편은 등단해서 상도 받았고 시집도 한권 냈다.

남편의 시도 읽어보며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그나마 아무것도 없이 결혼해서 22번인가 이사를 다니며

애도 낳고 집안 살림도 늘어갔다.

큰 애 낳을 땐 남편이 조산원을 했단다.

백과사전을 보고 조치사항대로.

지금 사는 집은 아파트 전세. 남편 친구 집이라

조금 나을 줄 알았는데 그 친구 부인이 까탈스럽기만 하다.

애들 학교 보내고 남편과 옛날 고생하던 얘기도 하며

좋은 시를 계속 쓰라고 부축인다.

둘이 뽀뽀라도 할라치면 계속 울리는 초인종

책장수, 화장품, 각종 고지서,,,,

남편의 수입이 거의 없자 전세 집의 방 한칸을 한 여자에

월세를 주었다. 그러자 화장실부터 문제다.

그래서 남편에게 그런 얘기를 한다.

 

남편은 고민이 많다. 시가 안 써진다.

거창하게 시작한 시가 중간에서 턱에 걸려 몇달째 스톱이다.

시를 써야 문학지에 기고하고 원고료 몇푼이라도 받을 텐데

매일 친구와 바둑만 두다가 시는 계속 머물러 있다,

근사한 시를 써서 인정 받고 돈도 벌고 해야 하는데....

생활이 안 되다 보니 아내 말대로 따를 수 밖에.

방 하나를 세준 여자와의 동거도 감내하고

화장실 습관도 바꿔야 하고....

그런데 요즘에는 아내의 태도가 예전 같지 않다.

부동산에 증권에 외출이 잦아졌다.

그리고 시인인 나의 입지도 줄어들었다.

아내가 없는 거실에 세든 여인과 말다툼하고

불현듯 떠오른 시상에 급히 시 한수를 쓴다.

답답하다. 그래서 외출한다.

 

집에 돌아온 아내는 세든 여인과 얘기한다.

그러다 문득 테이블에 써논 남편의 시를 읽는다.

! 큰일이다. 아내는 뛰어서 한강 쪽으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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