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인직 원작 소설, 배삼식 각색 '은세계'

clint 2024. 6. 13. 22:11

 

신소설 <은세계>줄거리 
강릉 경금 동리에 사는 최병도라는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매우 근면하고 성실하였으며, 개화당의 중진 김옥균의 감화로 구국의 일념을 품고 그 밑천을 마련하기 위하여 재산 모으기에 힘써 상당한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 강원도 관찰사는 매관매직이 횡행하는 사국에서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일삼 아 돈을 모으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다. 때마침 최병도는 강원관찰사에게 죄가 없이 붙잡혀가 곤장을 맞고, 관찰사의 흉계에 정면으로 대항하다가 갖은 고초를 겪고 풀려나 귀가하다 죽고 부인은 정신이상이 된다. 이 과정에서 최병도의 체포에 항거하여 동네 젊은이들이 민요를 일으키려고 시도하기도 하나 최병도의 만류로 그만둔다. 그리하여 최병도의 재산관리는 최병도와 뜻을 같이 하던 개화인 김정수가 맡고, 다시 돈을 모아 최씨의 소생인 옥순, 옥남 두 남매제에게 새 학문을 배워주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보낸다. 최병도의 딸 옥순과 유복자인 옥남이는 아버지의 친구이자 그들의 재산 관리인인 김정수와 더불어 도미하였으나 다시 불운이 겹친다. 유학을 김정수가 늘려 놓은 최씨가의 재산은 관료에게 거의 빼앗기게 되고 이후 김정수는 매일 만취로 세월을 보내다가 술 때문에 죽게 된다. 한편, 옥순, 옥남이는 갖은 고생을 겪고 공부를 마치고 10여 년 만에 돌아와 어머니와 재회한다. 거의 폐인이 된 어머니는 잃었던 정신을 되찾게 되고, 이튿날 옥남 남매가 어머니와 함께 선친의 명복을 빌려고 절에 갔다가 뜻밖에도 정부의 개혁에 반대하여 일어난 의병들을 만난다. 옥남은 "학정을 고치기 위해서는 고종의 양위가 지당하며 의병 또한 불가한 것" 이라고 역설하나 의병에게 붙들려 간다. (이것을 각색한 배삼식 작가의 대본은 1부 최병도의 죽음까지를 다룬다)



각색의 글 - 배삼식
한국 신 100주년기념, '원각사 설립 100년기념, 제게 주어진 숙제의 주제는 아름다운 것이었지만 남아있는 기억의 조각들은 남루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전혀 동의할 수 없는 생을 살다간 아비의 행장을 써야 하는 아들의 심경이 이와 같다고나 할까요? 자료를 들여다보는 동안, 특히나 이인직이라는 인물에 이르러서는 분노를 넘어 혐오마저 이는 것을 누르기 힘들었습니다. 그 분노와 혐오는 이인직이라는 개인의 행적을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그가 가로질러간 우리의 일그러진 근대(近代), 그 남루함으로부터 나의 현재 또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뼈아픈 자각으로부터 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별 주저 없이 받아들이는 이인직의 신연극 <은세계>라는 명명은 말 그대로 이름일 뿐, 사실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러한 명명은 실상의 많은 부분을 지워버리는 동시에 이인직이라는 개인에게 지나친 책임을 묻게 합니다. 이 작품의 창작과정에 대한 연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은세계>는 이인직 혼자만의 것이 아니며, 그러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시대와 사람들, 그것을 실제로 무대에 올린 광대들, 그 공연을 보고 울고 웃었을 관객들 모두의 것입니다. 저는 그들 모두에게 그중에도 그 1908년 여름과 가을 내내 이 <은세계> 이야기를 붙들고 씨름했을 광대들에게 이 이야기를 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별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들이 건너간 시간이 우리가 마주 하고 있는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듯합니다. 경쟁과 새로움에 대한 강박, 자신들이 원하는 것과 대중이 원하는 것 사이에서의 줄타기 배웠다는 자들은 한 목소리로 자신들의 예술을 마땅히 사라져야할 퇴물로 매도하고 대중들은 밖에서 밀려들어온 새로운 볼거리들을 찾아 자신들의 놀이판을 떠나는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세계>를 공연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떠했든 그들로서는 자신들의 예술을 지키고 변화하는 시대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것입니다. 그 마음만큼은 '근대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대어 폄하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렇게 제 마음 속에서 광대들이 목소리를 얻고 노래하고 뛰어놀게 되자 비로소 이인직의 모습이 다시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느 순간 쪼그라들어버린 아비처럼 길 잃은 고아처럼 작고 초라한 모 습으로 그가 서 있었습니다. 이인직은 마흔 줄에 일본에 유학을 가서 거기서 만난 일본여인과 결혼합니다. 돌아와서는 조혼했던 조강지처와 이혼하지요. 저는 이 버림받은 텅 빈 여인 앞에 이인직을 데려다 놓았습니다. 이 여인의 형상은 이인직이 스스로 단절해야만 했던 당시 조선의 현실 그것에 대한 이인직의 대응이 가질 수밖에 없었던 모순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작품의 말미에 이인직을 다독이는 여인의 형상은 아마도 이 작품에서 제가 지어낸 가장 독한 거짓말일 것입니다. 아무리 서둘러도 항상 한발 늦을 수밖에 없다는 이인직의 울음은 사실 저의 것일 테지요. 앞으로만 내달릴 필요는 없다고, 그저 잠시 여기 있어도 좋다고 누군가 다독여주었으면 하는 마음이겠지요. 그것은 그 텅 빈 여인을 통해서라도 이인직을 이해해 보려는 마음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가 걸어간 길을 인정할 수 없다 해도 그것도 길은 길일 것이라고 그에게는 유일한 길이었는 지도 모른다고 그가 결국 자신이 원하던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그에 대한 분노와 혐오는 어느덧 연민 비슷한 것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나의 연민을 비웃을 것입니다. 그 또한 그럴 법하다고 생각합니다. 내 안에도 그가 있다는 것을 그도 나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그는 여전히 불편하지만 아주 미워할 수는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신연극 <은세계>는 1908년 11월 15일 원각사에서 처음 막을 올렸고 당시 주연은 명창 임방울의 외삼촌이자 당대 인기를 끌던 명창 김창환(1854~1927)이 맡았다. 원각사가 설립되기 전인 1907년에 연극개량론이 대두되기 시작했는데 연극장 개량을 주장하는 기사들 가운데 연희개량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이 등장한 것은 1907년 11월 29일자에서이다. 이 논설에서 당시 연극장의 연희를 비판하면서 연회의 부정적인 측면을 1) 사회의 풍기를 문란케 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 2) 어린 학생과 노동자들의 돈을 갈취하는 것, 3) 청년 학생이나 명문가 자제들을 현혹하는 것 등으로 지적하고 연희가 '애국정신을 고취하고 지식을 얻게 하는 유익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진행된 연극개량 논의는 연극이 창출하는 미적 효과를 담아낼 수 있는 연희를 기획하고 공연하는 결과로 이어지는데, 1908년 원각사에서 공연된 <은세계>는 이와 같은 연극개량론이 수렴된 새로운 연극 즉 '신연극'이었다. 1908년 7월 28일 황성기사는 "대한신보 사장 이인직이 우리나라의 연극을 개량하기 위해 신연극을 아주현 전 협률사에 창설하고 26일부터 개장하였는데 은세계라는 소설로 만든 신연극을 2개월 후에 실행할 계획으로 창부들을 교육하고 있고, 그 교육비 마련을 위해 우선 26일부터 우리나라의 고유한 각종 연예를 실행한다'고 전하고 있다. <은세계>의 공연이 시작되기 전 1908년 신문들은 이인직의 연극 신소설과 그가 구상하고 있다는 '신연극' 에 대한 기사로 채워지고, 공연 전과 이후 몇 차례 이인직은 일본의 연화를 시찰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한다. <은세계>는 이인직이 자신의 신소설 '은세계'를 바탕으로 기획한 작품이라는 점과, 이인직 자신이 <은세계> 공연을 위해 창부 들을 연습시켰고, 공연을 연습하는 중 재차 일본을 시찰한 기록을 바탕으로 볼 때, <은세계> 공연이 진행되는 중에는 이인직이 직접적으로 공연에 깊이 관여할 수 없었음을 짐작할 수 있고, 결국 이인직의 역할은 대본 제작과정에 그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을 통해 본다면 연극의 재료인 각본의 유무가 기존의 연극과 변별점을 지니는 새로운 요소로 인식됨을 알 수 있다. 또한 창극 성립과정 중 광무대(1898년부터 1930년까지 서울에 있던 구극 전문극장 광무대는 당시 쇠퇴해 가던 판소리, 창극, 민속무용 등 구극을 발전시키는 역할을 했으며, 연흥와 더불어 원각사 이후 동양극장이 설 때까지의 주요한 공연장이었다)의 무대에 김창환, 송만갑 등이 관여하고 있으며, 1908년 5월 연흥사에서 이미 창부 30명을 모집하고 있었던 점을 미루어 보아 판소리 광대들은 원각사 설립 이전부터 집단으로 활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원각사의 설립에 따라 자연스럽게 아들 광대들이 이동하게 되어 이들을 중심으로 한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그 대표적 공연 형식이 <은세계> 이전의 비판받는 <춘향가>, <심청가> 등의 판소리 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각본을 새로운 연극의 재료로 인식하게 되면서 신소설을 각색하여 공연하는 것이 성행하였는데, 신문사는 자신들의 신문에 연재 중인 신소설을 신연극으로 무대 위에 올리고 그것을 적극 후원하기 위해 회원표 발행한다. 서사 장르와 연극이 만나는 과정에서 탄생한 글쓰기 각본은 '극담', '소설 연 극, 연극 신소설이라는 명칭을 지니며 신소설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1912년 최초의 창작희곡이라 할 수 있는 조중환의 병자3인이 번안과 각색의 귀재이며 신소설 작가이기도 한 조중환에 의해 쓰여졌다는 점은 이런 의미에서 음미할 만하다. 신연극을 가능하게 한 각본의 존재는 서사장르와의 밀접한 연관을 통해 등장하였고, 각본의 창작과 수용에서 보이는 서사장르와의 관련성은 이후 희곡 문학의 전개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연극 <은세계>는 애국계몽기의 연극개량론에 입각한 '신연극'의 산물이라는 것 창작 대본에 의거하여 전통연희 담당자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공연된 작품이라는 것 그리고 이 공연 이후 에 연극의 내용과 형식의 새로운 발전이 전개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연극사적 의의를 지닌다. <은세계> 공연이 갖는 의의는 무엇보다 '새로운 연극개념' 에 대한 대중과 시대의 요구를 전통극의 광대들이 수용하여 자생적으로 새로운 형식의 연극을 만들어낸 데 있다. 이미 개화기 시대정신에 발 맞추어 판소리의 분창, 혹은 소박한 형태의 창극을 시도하고 있었던 광대들은 이인직의 실화소재 신소설 <은세계>를 각색한 각본으로 당대 현실을 담아낸 창극을 공연했던 것이다. 창극 <은세계>가 '신연극'임을 선포할 수 있었던 것은 창극 <춘향가>나 <수궁가>와는 달리, 사실적인 인물과 동시대 현실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안타깝게도 대본이 남아있지 않아 실질적인 공연 내용이나 형식은 명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인직이 동명의 신소설을 지면에 먼저 발표했고, 이를 각색한 대본으로 공연이 이루어졌으며, 공연기간 중에 신소설이 출판(1908.11.20)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논란이 되는 문제들이 많다. 이인직의 신소설은 광대들에 의해 만들어진 실화소재 판소리 '최병두타령'을 개작한 것인가? 이인직의 신소설은 1부 최병두 이야기와 2부 옥남 옥순 남매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공연은 1부만 한 것인가, 아니면 2부까지 다 다룬 것인가? 이인직은 당시 연극개량을 한다는 명목으로 일본에 가서 공연이 끝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신연극 <은세계>의 각색과 공연제작을 담당한 사람은 누구인가? 당시 '연극개량'을 외치고 다녔던 이인직의 실질적인 역할은 무엇인가? 원각사를 개장하는데 관여했고 최초의 신연극 작자인 이인직이 대표적인 친일파이자, 이완용의 비서라는 점은 이런 질문들을 더욱 복잡하고 미묘한 맥락에 배치한다. 친일파 이인직의 신소설을 토대로 광대들이 신연극을 만들어낸 <은세계>의 배경이 암시하듯, 근대 연극은 일본을 창구로, 혹은 모델로 형성된 동시에 연극인들의 시대의 어둠과의 투쟁을 의미했던 것이다.  
신연극 <은세계>의 공연은 새로운 형식과 사실성에 대한 시대적 요구와 대중의 욕망을 구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 동시대 삶의 사실적 재현에 대한 욕망은 전통극과 단절된 새로운 형식의 연극들이 출현하게 했다. 일본 신파극을 수입 모방한 신파극이 1910년대를 휩쓸었고, 1920년대 초에는 서구 근대극과 동시대 현실을 그린 창작극 공연을 통해 근대극을 수립하려는 근대운동이 일어났다. 1930년대에는 극예술연구회가 리얼리즘극운동을 펼쳤고, 유랑하던 신파극은 동양극장에 집결하여 세련된 대중극으로 뿌리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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