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강용흘 '궁정에서의 살인'

clint 2024. 6. 16. 19:41

 

 

때는 고려 공민왕 시절, 대를 이을 후사가 없어 고민이 많던 공민왕은

이런저런 대책을 세워 실행했으나 모두 실패하여 고민 끝에 후임자를

폭 넓게 수소문하고 예언자나 점술가를 통해 검증을 하여 김재상의 아들

만송을 후임으로 정한다. 그러나 점술가인 왕서군의 반대하는데,

그 이유는 만송이 19살 생일날 사망한다는 점술 때문이었다.

이 사실은 먼저 전해들은 김재상은 반역죄로 왕서군을 잡아 처형한다.

그리하여 왕서군의 외동딸인 헤라녀는 복수의 일념으로 칼을 간다.

여기에 호시탐탐 왕권에 욕심을 내는 편조대사(후에 신돈으로 드러남)

악마와 같은 역할로 정적들을 견제하고 제거한다.

만송은 공부는 많이 했으나 자유분방한  시인, 예술가스타일로

정치가 싫고, 부친의 강제적인 지시도 부당하면 따르지 않는 성격이다.

부친 김재상은 곧 차기 임금으로 내정됐다는 얘기를 아들에게 전한다.

그러자 자신은 전혀 그럴 마음이 없다고 집을 나간다.

그의 뒤통수에 대고 넌 19살 생일에 죽을 운명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부자의 연을 끊는다.

 

 

 

산천을 돌며 유랑하던 만송은 어느 산골에서 헤라녀를 만난다.

산속에서 나무꾼으로 홀로 생활하며 복수의 칼을 가는 헤라녀.

그녀는 부지런히 칼춤을 연마한다, 

둘은 만나면서부터 호감을 갖게 되고, 여기까지 쫓아온 편조를

혼내 준다. 내심 이들의 관계를 알고 과거의 일들도 아는 편조는

이들의 결혼을 방해하는데번번히 실패한다.

만송과 헤라녀는 마을 사람들의 축복속에 결혼을 한다.

그리고 전국적인 방이 내려지는데 공민왕이 후계자로 만송을 지정하여

후계선포식을 하고 왕권을 이양한다고 전해진다.

부부인 만송과 헤라녀는 그들의 관계가 원수 사이임을 알게 되고

헤라녀는 고민하고 만송은 설득하려 하나 여의치 않다.

해라녀의 칼에 만송이 죽을 운명인 것이다.

바로 왕서군의 예언과 백두산 도사의 말처럼....

드디어 후임자 선포 및 왕권 이양의 날이 된다.

이들은 어떻게 될까?

궁정에서의 살인은 일어날까?

 

출연자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볼수 있다. 저 위의 정영숙과 김홍기 그리고 박규채, 최불암씨 등

 

 

이 작품은 재미 작가 강용흘이 1935년 영문으로 쓴 4막희곡으로

이근삼 선생이 번역한 작품이다.

1974년 극단 민예에서 공연하였다. (허규 연출)

이 작품이 대단한 것은 고려 공민왕시절 공민왕이 후사가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거의 픽션으로 4막의 작품을 썼다는 것인데

1930년대 우리의 연극 수준으로 보았을 때 엄청 수준 높은 작품으로

살인이라는 제목의 뉘앙스가 주는 추리나 심각한 대립보다는

사연이 복잡한 청춘 남녀의 사랑이야기에 편조라는 메피스토 적인

인물을 등장시켜 극적 재미를 더해가는 기법으로 시종일관 몰입하게

만드는 극작술이 뛰어나다는 점이다무대 변경을 최소화 하기 위한

내레이터 등장도 무척 효율적이다. 

 

이근삼 교수

 

執念의 대작 - 이근삼 (西江大教授. 번역)
선생으로부터 이 작품을 받은 것은 내가 1967년 봄 뉴욕에서 생활을 하고 있을 때이다. 오래 전부터 劇을 해야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실제 고생의 흔적이 역연한 원고를 받고서는 그 집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본래 이 <궁정에서의 殺人>은 단막극 形式으로 써서 롱아일랜드의 어떤 소인극장에서 現代복을 입은 채 간단히 공연을 하였지만 그 후 욕심을 내서 長幕으로 확대하였다는 것이다. 그의 원고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몇 년에 걸쳐 수정에 수정을 가한 퍽 공을 들인 작품이다. 그로서 최초의 희곡이기도 한 것이다. 대사 하나를 지우고 또 記入하여, 번역을 하는 입장에 서는 어떤 대사가 그의 원하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복잡했다. <宮廷에서의 殺人>은 일대 서사극이다. 배경을 高麗 恭愍王 시대로 잡고 왕권 계승을 초점으로 펼쳐지는 작품인데 그때는 고려로서는 가장 힘들었던 시대이다. 몽고족의 부단한 압박, 왜적들의 海岸침입, 달탄族의 越境 등을 비롯 내부에서는 종교계의 정치간섭 등, 서예를 즐기는 恭愍王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때였다. 강先生이 그러한 때를 背景으로 잡은 이유도 짐작이 간다. 그는 늘 한국을 걱정하였으며 언제나 한국 젊은이들에게 호감을 보였었다. 극중의 主人公, 만송과 헤라녀는 어느 면으로 오늘날의 한국의 젊은이와 흡사하다. 이러한 점에서 이 극은 조국을 그리는 선생의 애국심에서 우러나왔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이 희곡은 우선 재미가 있다. 그는 사실주의적인 현대극보다는 古典的 희곡으로 가다듬으려고 했다. 獨白이 자주 나오며 우연도 돌발한다. 宮廷을 중심으로 한 인물들, '편조'을 중심한 惡의 상징, 그리고 젊은 주인공들의 맑은 世界를 교차 시키면서 우선 재미있게 끌고 나간다. 나로서는 극중의 많은 事件이 사실인지는 몰라도 번역을 하는 동안 지루함을 느끼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公演을 해도 일단은 안심하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극은 詩와 산문이 뒤섞이는데 번역을 마치고 보니 詩정은 간 곳이 없다. 셰익스피어의 극을 번역하였을 때와 마찬가지다. 우리말의 한계를 운운하기에 앞서 우선 나의 力不足임을 말하고 싶다. 이 劇에는 노래가 나오고 춤이 나온다. 잘 가다 듬으면 뮤지컬的 要素도 충분히 살릴 수 있을 것 같다.

 

 

강용흘

(姜龍訖, 1903년 6월 5일 ~ 1972년 12월 2일)은 한국계 미국인 작가다. 1931년에 쓴 첫 한국계 미국인 소설 초당 (The Grass Roof) 등이 유명하며 한국계 미국인 문학의 아버지라 불린다. 한국에서 유학과 기독교식 교육을 받았다. 함흥 영생중학교를 졸업하고 1921년 독립 운동을 위해 한국을 떠났다. 처음에 캐나다로 갔다가 후에 미국으로 가서 보스턴 대학교에서 수학하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학위 수여를 받았다. 그 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뉴욕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 후 행복한 숲(The Happy Grove), 동양인이 본 서양(East Goes West) 등을 썼다. 한국 문학을 영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미국 발표시 반응

▲펄벅/ 강용흘의 작품은 현대의 고전으로 남을 것이다.
▲토마스 울프/ 강용흘은 어떤 경우에도 自由롭고 박력에 넘치는 作家이다 그는 独創的이며 詩的인 영혼을 가지고 있다. 
▲뉴욕 헤랄드 트리뷴/ 그의 作品에는 活力과 生動感을 불어넣은 유려한 필치로써 신중하게 또 솔직하게 그려진 인간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런던 타임스/姜鏞訖의 人間은 古典的인 東洋画가 보여주는 原初的인 活力과 清明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