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수미 '귀여운 장난'

clint 2024. 6. 17. 05:43

 

 

인적 드문 곳에 모녀가 산다.

화려함에 화려함을 덧칠한 어머니의 장밋빛은 일상에서 빗겨서 있다.

건조하고 메마른 딸의 회색은 도시의 색과 닮았다.

그래서인가 그녀에게 자연 속에 자리한 그 집은 떠나고 싶은 공간이다.

딸은 사람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그들에게 방문자가 있다. 딸의 남자...

그 남자를 기다리며 식사를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그들의 삶이 드러난다.

끊임없이 먹어대는 비만의 남자는 욕구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욕구에 주체이다. 끝없이 충족을 위해 그는 먹고 또 먹는다.

삶 그 한가운데서 발부둥치지만 그는 여전히 배고프다.

기다리고, 고독하고, 죽은 자의 땅위에서 내일을 준비하는

우리의 외로운 향연이 시작된다. 침묵을 견디며...       

 

 

 

 

 

모녀는 벌써 다섯 번째 딸의 결혼 상대자를 집에 초대하고

그를 기다리는 동안 끊임없이 대화한다.

그녀들의 대화는 마치 연극의 대사처럼 술술 흘러나온다.

몇 번을 기다리는 동안 저절로 짜여진 그녀들의 대사일 것이다.

남편과 아버지가 떠난 모녀는 쉽사리 남자를 믿지 못하지만

기다림 또한 멈추지 못한다.

다섯 번째 남자 역시 엄마의 기대에 못 미친다.

초대된 남자들은 어김없이 모두 실종되었듯

다섯 번째 남자 역시 실종될 것이다.

 

 

 

 

 

차단된 자신의 세계속에 갇혀 지내는 사람들.

어느 순간부터인지 우리는 나를 가둬두고 살아가고 있다.
더 이상 타인과 융화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타인과 융화되는 것이 개성의 말살처럼 느껴지기 때문이기도하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식인까지 하게 된다면,

그리고 사람을 장난삼아 죽이기도 한다면 그것은 커다란 범죄가 된다.
그러나 이 극에선 이러한 살인과 식인이 결코 범죄화 되지 않는다.

이것은 단지 귀여운 장난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는 귀여운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이기주의적 범죄를 많이 범하고 있는가.
거기에 대한 해답은 과연 있는 것일까.

 

 

 

 

작가의 글 - 김수미

"인간이 소통을 거부하고 단절의 삶을 선택하는 건 타인이 일방적인 방식으로 강요하는 소통 방식의 폭력을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사람들 사이에 속하고자 탐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일상의 단조로움과 무료함을 타파하기 위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생산하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즐기며, 자신을 온전히 인정하는 세상의 이해를 기다린다. 그들의 기다림은 예술의 태도와 닮았다. 이 작품을 처음 썼던 시절은 소통을 갈망하는 예술적 행위의 허무를 담았는지 모른다. 절박함이 장난으로 치부해야 견딜 수 있음을 담으려 했다. 상반된 의미를 지닌 사회적 메시지가 이 작품 속 인물들에게 묘하게 투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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