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트로이아 여인들'

clint 2024. 5. 21. 10:27

 

1

헤카베가 통치자의 행복이 얼마나 무상한 것인지 탄식한다. 그녀는 파리스를 낳았을 때, 트로이아의 멸망을 예견했었다. 이어 그녀는 남편 프리아모스의 죽음을 비탄한다

헤카베는 합창단에게 애곡하기를 명한다. 헤카베와 합창단의 노래가 이어진다. 스스로 자기 몸을 때리는 노래가 이어지다가 헤카베의 명에 따라 프리아모스의 '행복'을 축하하는 노래로 바뀐다. 그는 희랍군의 승리를 직접 보지도 않았고, 지금은 엘리시움에 헥토르와 함께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2

합창단이 아가멤논의 전령인 탈티비오스에게서, 희랍군이 떠나지 못하고 지체되는 이유를 듣는다. 아킬레우스의 혼령이 나타나 트로이아 공주 폴릭세네를 자기 무덤에 바치라고 요구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어 아킬레우스의 아들인 피르로스와 아가멤논이 등장해서, 폴릭세네를 제물로 바칠 것인지를 놓고 논쟁한다. 아가멤논은 무고한 희생을 막으려 애쓰지만, 피르로스가 격렬하게 저항하자 결국 예언자 칼카스에게 자문한다. 칼카스는 처녀를 바치라 조언하고, 또한 헥토르의 아들도 죽어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어서 합창단은 죽은 뒤에도 혼령이 존재하는지 질문을 던지고, 죽으면 모든 것이 흩어지고 만다는 결론을 내린다 학자들이 극찬하는 <햄릿>의 독백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진 부분이다.

3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가 아들 아스티아니스를 데리고 등장하여, 이들에게 닥쳐올 위험을 걱정한다. 죽은 남편이 꿈에 나타나 아들을 숨기라고 명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 못지않은 영웅이 되어 민족을 이끌어갈 아이다. 안드로마케는 아들을 남편의 무덤 밑에 숨기기로 결정한다. 희랍군의 명을 받은 오디세우스(울릭세스)가 아스피아낙스를 데리러 온다. 그는 어린 아들을 어머니에게서 빼앗아 내는 것이 내키지 않지만, 희랍의 미래와 자기 아들의 장래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임무를 수행하겠노라 한다. 안드로마케는 처음엔 자기 아들의 행방을 모른다고 했다가 이 미 죽었노라고 말을 바꾸지만,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이 헥토르의 무덤을 파괴하기 시작하자, 어쩔 수 없이 무덤에서 아이를 나오게 한다. 마지막으로 아이를 시켜 오디세우스에게 탄원하게 하지만, 오디세우스를 설득하지는 못한다. 안드로마케는 이제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폭발시켜 분노와 슬픔을 토로 하지만 곧 아이와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눈다. 아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아버지에게 사랑을 전하라고 이른다. 남편 무덤에 닿았던 아이의 옷을 자기가 취하고 아이를 떠나 보낸다.

합창단이 희랍 땅으로 끌려가기 위해 마음을 준비할 것을 노래한다

4

헬레네가 피르로스와 결혼하자고 폴릭세네를 속여 이끌어 낸 임무를 띠고서 찾아온다. 안드로마케는 헬레네가 이 모든 재난의 원인이라고 공격한다. 헬레네는 자기는 납치되었을 뿐이라고 변명한다. 그녀는 결국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폴릭세네가 아킬레우스 무덤에 바쳐질 제품이 될 것임을 털어놓는다. 그러자 갑자기 네가 자발적으로 죽겠노라고 나선다. 여기서 어머니 헤카베는 땅바닥에 몸을 던지고 슬퍼하는데, 흔히 이 장면은 자발적 죽음이 강요된 삶보다 낫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해석된다. 이어 피르로스가 달려와 폴릭세네를 끌고 간다. 제가에는 자신을 먼저 죽이라고 요구하지만 그 요구는 실현되지 않는다. 그러자 헤카베는 희랍군에게 저주를 퍼붓는 데, 이는 제1막에서 보여준 그녀의 철학자적 모습과 달라서 문제가 된다.

이어서 '슬픔을 나누면 반으로 줄어든다'는 내용의 합창단의 노래가 뒤따른다. 합창단은 자신들이 끌려가면서 멀리 겨우 흔적을 보이는 트로이아를 뒤돌아볼 것을 예상한다.

5

전령이 달려와, 아스티아낙스와 폴릭세네의 죽음을 차례로 전한다. 여기는 두 젊은이의 용감한 죽음뿐만 아니라, 그것을 보는 대중의 반응도 그려져 있다. 시신은 무대 위로 돌아오지 않는데, 이로써 작품이 장례 애곡으로 끝나지 않고, 용기 있는 죽음을 찬양하는 것으로 끝나게 된다. 아스티아낙스는 희랍군이 자기를 높은 곳에서 밀치기 전에 스스로 뛰어내려 죽었으며, 폴릭세네는 칼날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여 죽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헤카베가 죽음이 다가오기를 기원하며 왜 그것은 젊은이들 에게만 찾아오는지 원망한다. 전령이 어서 떠나자고 재촉하는 것으로 극이 끝난다.

 

 

 

이 작품은 트로이아 함락 이후, 헥토르의 아들 아스티아낙스와 트로이아 공주 폴릭세네가 희생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세네카의 비극 10권 중 두 편은 사람 이름이 아니라 도시 이름을 제목으로 사용했다. 그중 하나가 <트로이아 여인들>이다. 세네카의 비극을 전해주는 두 사본 전통 중 한쪽(A 사본은 이 작품을 <트로아스>(Troas)로 전한다. E사본에서는 에우리피데스의 작품과 일치시켜 <트로이아 여인들>(Troades)로 되어 있다. 도시 이름을 딴 다른 작품은 <테바이스> (A사본 전통) 인데, E 사본 전통에서는 이 작품의 제목이 <이니케 여인들>로 되어 있다. 우리말 번역에서는 둘 다 E사본 전승을 따라 제목을 정했다. 특히 <테바이스>, 단테에게 큰 영향을 끼친 스타티우스의 동명 서사시가 있어서,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좀 아껴두어야 할 제목이다. 같은 제목의 비극이 두편 있는 것도 다소 혼란이 생기겠지만, 비극끼리 같은 제목으로 묶는 게 나을 듯해서다. 원래 에우리피데스의 <포이니케 여인들>에서, 작품 제목이 그렇게 정해진 것은 합창단이 포이니케 출신의 여종들로 구성되어 있어서였다. 그런데 세네카의 <포이니케 여인들>에는 아예 합창단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제목의 근거라고는 에우리피데스의 작품과 같은 주제를 다루었다는 것밖에 없다. <트로이아 여인들>의 경우에도, 이 제목을 사용하는 E사본 전통에 속한 다른 문서 (Excerpta Thuanea) <트로아스>라는 이름이 적힌 것으로 보아, <트로아스>가 원래의 제목이라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에우리피데스와의 비교를 위해 우리말 제목은 그냥 <트로이아 여인들>로 정했다. 이 번역의 라틴어 원문 편집자 비어라인(O, Zwierlein)도 그쪽을 택했다. 도시 이름이 들어간 제목 <트로아스>(트로이아에 대한 노래) 라는 제목을 선호하는 학자들은, 작품 속에서 이 도시는 완전히 소멸한 상태가 아니라 여전히 불타면서 연기를 뿜으며, 도시 자체가 일종의 등장인물로서 타이틀을 수행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사건이 도시 바깥에서 일어나서, 도시가 그저 배경이 아니라 독립적 개체로 보이기 쉽다는 것이다. 작품 속 사건 진행도 아직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고 도시의 운명이 여전히 흔들리다가 폴릭세네와 아스티아낙스가 죽음으로써 비로소 전쟁이 끝나게 된다. 작품 제목을 어떻게 정할지를 떠나 꽤 주목할 만한 지적이다. 한 작품 안에 폴릭세네와 아스키아낙스를 함께 등장시킨 것은 희랍 모델엔 없던 것이다. 폴릭세네는 에우리피데스의 <헤카베> 전반부에서 다뤄지고, 아스티아낙스는 에우리피데스 <트로이아 여인들>의 앞부분 3분의 1 정도의 중심 주제다. 후자에 대해서는 세네카가, 자기보다 먼저 활동했던 로마 시인 아키우스의 <아스티아낙스>를 많이 참고한 듯하다. 적어도 이 소년이 아버지 무덤에 숨는다는 발상은 그 작품에서 빌려온 것으로 보인다. 폴릭세네와 아스티아낙스가 함께 나란히 등장한 작품으로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13권이 있다.

세네카는 이 둘의 수난을 함께 묶은 것도 또 <트로이아 여인들>에서 거듭 되풀이되는 주제 죽은 자가 산자보다 행복하다'는 언급도 오비디우스에게서 빌려온 것으로 보인다. '죽음에 대한 열망 죽음에 대한 공포 - 공포의 극복'은 이 작품에서 반복 되는 테마 중 하나이며 에우리피데스의 작품과는 크게 대조되는 대목이다. 이 작품에서 삶의 무상함과 죽음의 상징으로 꼽히는 것이 트로이아 성벽과 헥토르의 무덤인데, 이 둘은 무대 배경에 배치되어 늘 관객의 시야에 들어오게 되어 있다.

 

 

 

이 작품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세네카의 비극 중 최고로 꼽힌다. 어떤 학자는 이것이 에우리피데스의 <헤카베>보다 더 낫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특히 제3막은 사상 최초의 '취조 장면'으로 꼽힌다. 이 작품에서 두 젊은이가 죽음의 공포를 이긴 것도 많은 경탄을 받았다. 이들이 스토아학파의 현자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사후 상태에 대한 전통적인 두 견해 중, 어느 쪽이 맞는지에 대해 세네카 는 두 가능성을 모두 열어 두었다. , 죽음이 꿈 없는 잠인지, 아니면 죽은 뒤에 선한 자는 낙원으로 가는 것인지에 관한 문제다. 첫 합창에서는 사후 세계 엘리시온이 언급된다. 둘째 합창에서는 죽음 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노래한다. 그 다음 두 합창에서는 전쟁의 공포를 떨쳐낸 듯,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고 살자는 태도가 보인다. 이는 세네카의 합창이 일반 대중의 생각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Lucius Annaeus Sene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