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낙동강 전투, 인천상륙작전, 장진호 격전과 흥남 철수, 거제도 포로수용소 등 전쟁상황과 그 속의 인간들, 그리고 피난민 이산가족들의 비극을 담고 있다. 평양 부농집 아들 김동민은 부친이 반혁명 세력으로 몰려 혼자 유랑 끝에 함경북도 청진에서 정경숙을 만나 그녀와 이복순의 보호를 받는다. 김동민은 정경숙과 함께 청진 의과대학에 입학하면서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앞날을 약속한다. 이강설은 혁명 1세대 집안에서 태어나 북한 고위직관료의 딸과 결혼해서 빠른 출세로 요직을 맡는다. 이강설은 병원에 입원 중 레지던트로 일하던 정경숙을 만나 그녀에 현혹된다. 이강설은 정경숙과 김동민 관계를 단절시키기 위해 김동민을 청진에서 발생한 반정부 삐라 사건 용의자로 체포한다. 김동민은 극심한 고문을 당하고 만신창이가 된다. 이강설은 김동민 석방조건으로 정경숙의 보안부대 입대를 약속받는다. 김동민은 군에 징집되어 정경숙과 이별한다. 이강실과 정경숙의 관계는 밀착되고, 이강설은 정경숙을 불온분자 색출 작전에 투입한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정경숙은 이강설의 복잡한 애정행각에 실망하고 혹독한 보안업무에 피로감과 환멸의 비애를 느낀다. 이 때문에 정경숙과 이강설의 관계는 차츰 냉각된다. 김동민은 북한군에 종군하던 중 총상을 입고 사선을 헤매다가 미 해병대 병사에 의해 구출된다. 그는 국군에 편입되어 미군 부대 위생병이 된다. 부상병 포로들이 속출하자 김동민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배속되어 포로 담당 의료진 요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정경숙의 어머니 이복순은 그녀의 딸이 남파 특수공작에 투 입될 때, 남한에서 이별한 아버지를 찾아보라고 당부한다. 이강설은 정경숙을 밀파해서 요인 납치 음모를 꾸몄지만 정경숙은 이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남한에 살아있는 아버지를 만나고 돌아온다. 정경숙 밀파공작에 실패한 이강설은 정경숙을 요직에서 추방하고 최전선에 배속한다. 정경숙은 이강설의 보복적 처사에 배신감을 느끼고 이강설의 비리를 상부에 고발한다. 이강설은 이 때문에 요직에서 밀려나고 변두리 하위직을 전전하다가 최전방 전선 독전부대에서 포로가 되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압송된다. 정경숙은 아버지가 불고지죄로 잡혀 옥중에서 병사한 사실을 알고 비탄에 잠긴다. 정경숙은 최전방에서 부상병 치료에 전념하던 중 미군포화에 부상을 당하고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이송된다. 이강설은 포로수용소에서 이철강로 이름을 바꿔 돗드 소장 납치 사건 등 난동 주모자가 되었다. 그는 정경숙 찾기에 혈안이 된다. 포로수용소 근처에 자리 잡은 흥남 식당은 흥남 철수 때 남으로 피난온 이복순이 운영하고 있다. 이복순은 딸 정경숙의 행방을 찾고 있다. 이 식당은 흥남에서 내려온 피난민들 만남의 장소가 된다. 이 식당에는 가족들과 헤어졌거나, 부모가 행방불명 된 전쟁고아들 중 나남이 김동민의 학습지도를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복순은 나남을 먹여주고, 키우면서 가족처럼 함께 지나고 있다. 김동민은 부하들의 반란으로 부상을 입은 이철강이 이강설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격렬한 설전을 벌인다. 그 때 비상소집 방송을 듣고 김동민이 급히 병원에 가보니 부상 포로들 속에 정경숙이 있음을 발견한다. 그녀도 동민을 알아본다. 둘은 잠깐 동안 몇 마디 말을 나누지만, 그녀는 곧 중환자실로 이송된다. 김동민은 이 소식을 이복순과 동료들에게 전한다. 모두 정경숙의 만남을 기뻐하고 환호하지만 그것도 한 순간이었다. 병원에서는 정경숙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단가에 실려 나온다. 김동민이 정경숙 사망 소식을 이복순에게 전하고 있을 때, 포로석방 뉴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작가의 글 - 이태주
나는 세계 2차대전 말기 함북 청진시 수원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조회 때 운동장 하늘 높이 기러기 떼가 줄지어 북녘 하늘로 치솟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광경에 취해 시를 쓰고 노래를 불렀다. 담임선생은 나보고 시인이 되라, 성악가 되라고 격려했다. 그러나 나는 시인도 성악가도 되지 못하고 먼 훗날 연극 주변에서 평론을 쓰고, 선생이 되고, 오늘 연출 무대 앞에 서있다. 해방은 큰 충격이었다. 무엇보다 딱한 것은 우리말을 모르는 일이었다. 시인 유정 선생이 국어선생이었다. 그는 시간 중에 반쯤 눈을 감으시고 자작 시를 낭독해주었다. 공장 한구석 임시 교사. 밖에서는 눈보라 날리고, 바람에 창문이 들썩거렸다. 시간 중에 '집 없는 아이’를 눈녹듯 부드럽게 낭독하는 선생은 한글의 명교사였다. 우리 가족은 공산당 치하에서 살다가 38선을 넘어 남으로 왔다. 그리고 6.25였다. 피난 가지 못한 나는 수복 때까지 지하실에서 살았다. 형님은 의용군에 끌려가고, 어머니는 매일 울고불고 하셨다. 극 중의 이복순 어머니 그대로다. 비극은 우리 집만이 아니었다. 옆집, 예쁘고 순결했던 그 여고생도 의용군에 끌러가 횡사했다. 그 집도 매일 초상집이 었다. 9·28 수복 직전, 포탄이 우리 집 지붕을 뚫고 마루위에 떨어졌는데, 온 가족이 그 지하실에 있었다. 다행히 어뢰만한 그 포탄은 불발탄이었다. 그 날 아버지는 총탄을 맞고 중상을 입었는데 남산까지 진격한 미군 야전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 았다. 다시 1.4 후퇴요. 격전이요, 패전의 위기요 인천상륙의 반격이요, 장진호 혹한 속 흥남철수요, 휴전이었다. 이 모든 것이 너무나 큰 민족의 수난이요, 백성들의 아픔이요, 나의 악몽이었다. 뇌리 속 돌돌 감겨 있는 기억의 두루마리를 풀어헤치는 일이 나에게 숙제처럼 남게 되었다. 이 일을 시작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어느 날 우연히 읽었던 영자 신문의 수필이었다. 그 글은 북에서 만나 사랑했던 연인을 전쟁 때문에 잃어버린 젊은이의 애틋한 사연이었다. 나는 희곡을 완성하고 미국에 있는 고교동창 김기철 교수에게 원고를 보냈다. 그는 나에게 한국계 미국인 의사 Donald K. Chung이 쓴 "The Three Day Promise'를 보내주었다. 나는 그 책을 읽고 여러 가지 궁리를 하게 되고 작품을 이리저리 손질했다. 흥남철수를 탈고한 후 나는 몇몇 지인들에게 원고를 보여주면서 수정 가하고 오랫동안 묻어 두었다. 이번 공연을 위해 다시 읽고 또 손질해서 소극장 공연을 위해 작품을 대폭 축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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