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정복근 '실비명'

clint 2023. 12. 26. 09:10

 

 

 

1980, 90년대에 가장 활발히 활동한 여성 극작가. 4.19세대의 관점에서 바라본 1980년대적 현실에 대한 몽타쥬적 제시라는 독특한 자기 영역을 가지고 있다. 1980년대를 중년의 시각, 중산층 여성 지식인의 시각으로 그림.<실비명>성고문 문제. 중산층의 기득권을 놓지 않으며 딸의 성고문 사실에 무력한 엄마 은옥의 이야기. "배운이들이 얼마나 파렴치하게 생존하는지" 서정적인 독백체의 대사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소리들, 이질적으로 중첩되는 장면들의 몽타주 효과.

이 작품속에 나오는 등장인물 모두는 의식속에서 괴로움을 당한다. 아귀같은 삶을 살아온 은옥의 의식속에 현이가 침투해 들어와 아픔을 주고 철저하게 현실적인 삶은 살아온 광식의 의식속에 정우가 침투해 들어와 갈등을 불러 일으킨다. 결국 이 모든 사람들의 괴로움은 각기 이세상에서 받은 모욕에 대한 몸부림으로 집약되고, 이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우리는 무엇이고, 우리의 세상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관객들이 능동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어느 날 노동운동을 하다 실종되어 버린 한 청년과 당국에 의해 무력하게 짓밟힌 한 운동권 여대생의 희생을 그린 작품이다. 은옥의 딸 현이와 순영의 아들 정우는 노동운동을 하는 연인 사이였는데 투옥된 운동권 여대생 현이가 성고문에 못이겨 주모자인 정우를 실토하여 정우는 간첩죄를 뒤집어쓰고 체포당해 실종되는 것이 사건의 발단이다. 실종된 아들의 행적을 밝혀내려는 정우 어머니의 집념이 중심축을 이룬다. 정우의 어머니 순영은 아들의 생사를 확인하려고 백방으로 수소문하는데 현이의 어머니 은옥은 딸이 출감하자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감추려고 가난한 고학생 출신인 광식과 강제로 결혼시키려 한다. 순영은 정우의 애인이었던 현이의 집에 찾아와 자식 잃은 어미의 심정을 토로하며 감추어진 사건의 진상을 알아내려고 한다. 그러나 딸의 결혼식을 눈앞에 둔 은옥은 순영을 피한다. 하지만 결국 정우의 실종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던 현이의 고백으로 정우에 얽힌 진상이 밝혀진다. 순영은 아들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슬픔에 젖어 생활하면서도 정우가 더 좋은 세상을 불러오려고 이 세상을 떠났을 거라고 슬픔을 달랜다.

상처입은 자식을 둔 두 어머니의 통한을 통해 우리 시대의 환부를 조명하는 작품이다. 노동운동에 가담했던 한 청년의 실종을 둘러싼, 세대와 계층을 달리하는 인물들의 갈등을 통해 이 시대의 정치·사회·경제의 구조적 모순을 폭로한다. 등장인물의 생각을 관객에게 고백하듯 진행되는데 연출은 야기될 수 있는 지리함을 조명과 음악을 적절히 배합하여 극복하려 한다. 무대장치는 현이의 집 거실 전면을 중심으로 6개로 나누어진 높낮이를 달리하는 단과 부분적으로 중간 차일이 드리워져있다. 짙은 회색이 전체 색조를 이루는데 현이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등장하는 장면에서만 차일이 붉게 변해 그녀의 심적 고통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중간막으로 차일을 이용하여 세대와 계층간의 단절감과 소외의 효과를 준다.'

 

 

 

 

작가는 사건이 진행되는 가운데 우리 시대의 환부를 들추어내고 고발하려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의 상처를 싸매주고 아픔을 위로하며 현실을 긍정적인 것으로 바꿔 보려고 노력한다. 1989년에 제13회 서울연극제에서 대상·연출상·연기상·신인상과 특수부문상을 수상했다.

 

 

 

작가의 글 - 정복근
갈수록 모든 일이 힘겹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는 일이며 무언가 써 보는 일이며 주년의 일들이 죄다 그렇게 느껴진다. 봄은 봄대로 넘기기가 힘들었고 여름도 마찬가지 였으며 닥치는 가을 겨울 역시 견디기 암담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내 경우만 그런가 하고 돌아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드는것이 주위의 누구 얼굴에시나 지치고 피곤한 빛이 이력함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서로 더 참을수 있는 일도 못 참아 뾰죽한 소리를 하게 되고 수습할 방법이 있어도 내버려 두어서 사태를 악화시키며 속수무책으로 각자 자신을 고립시켜 가는것 처럼 보인다. 개인적인 사정이야 다 다르겠지만 결국 어떤 공통적인 분위기 공통적인 암울한 느낌이 우리를 이렇게 다 같이 상실케 하고 지치게 하며 바닥없는 자폐증의 늪으로 돌아 가는게 아닐까 싶어 진다. 시대가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고들 하지만 그 시대인들 사랑의 손과 무관한것이 아닌데 이렇게 누사정 시들면서 걷기만 하는것도 떳떳치 못한 일인것 같다. 아이들이 태어나면 자라고 자라면 책에서 배운대로 주장하기 마련인데 어른들이 어른스럽고 점잖게 잘 태처하지 못해서 일들은 항상 어긋나고 말 못할 고통들을 그늘에 쌓아 놓기만 해서 이제 그 넘쳐나는 고통이 세상 어디에나 스며드는 것이겠지 곰곰 생각하게 된다. 이차피 세상엔 공것이 없으니까 모두 나이를 잘못 먹어온 값을 이제 암팡지게 치루어야 할 때가 되었나 보다. 나와 상관없는 곳에서 생긴 습기가 나 모르는 곳에서 안개로 모여, 오늘 교통체증의 원인이 되어 내 하루 계획에 지상을 주듯이 천하에 서로서로 상관없는 일이 없으려니 싶어서 이런 작품을 쓰되었던것 같다. 누구나 다 아는 특별한것 없는 이야기가 더 익숙해져서 그러저리 일상의 틈으로 묻혀 버리기 전에 잠깐이나마 집중해서 들어나나 보자고 어수룩한 대로 내놓았다. 참가해서 애쓰시는 여러분들의 노고를 감사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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