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정명 '누가 왕의 학사를 죽였나'

clint 2023. 8. 12. 12:54

 

줄거리

집현전 학사들이 궁내 곳곳에서 의문의 죽음을 연쇄적으로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젊은 겸사복 강채윤이 사건을 맡게 되어 궁내의 실학자들과 시체 검안을 맡은 반인과 산술에 능한 무수리 등의 도움을 받아 많은 한계를 극복하며 수사를 펼친다. 그 젊은 말단 겸사복은 마방진과 오행의 이치를 따르는 살인, 의문의 활자, 죽은 학사들의 특별한 업무 등을 단서로 살인자를 쫓던 중에 그 연쇄살인의 실체가 거대한 시대적 대결구도 속에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학사들의 죽음의 이유를 알아낸 젊은 겸사복은 연쇄살인의 고리를 끊으려 애쓰다 자신이 죽을 고비도 넘기게 된다. 그런 후에 젊은 겸사복은 주상 세종의 개혁의지와 그 반대세력에 대한 지난 20년간의 소리 없는 전쟁에 관하여 듣게 되고, 숨 돌릴 틈 없이 연속된 며칠 간의 사건은 주상이 자주적인 새 글자를 창제한 것 때문이란 것을 알게 된다. 세종의 자주정신과 개혁의지가 고스란히 담긴 비밀 서책을 명으로 빼돌려 그가 주도하는 조선의 변화를 막으려 하고 주상의 목숨까지도 노린 세력의 실체를 젊은 겸사복은 뛰어난 논리와 추리와 목숨을 건 기지로 밝혀낸다. 또한 젊은 겸사복은 훈민정음이라 명해진 새 글자의 창제 원리와 그 속에 담긴 정신 그리고 그것을 지키려 목숨까지 걸었던 왕의 학사들에게 감동한다. 그리고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사랑하게 된 여인 소이와 함께 왕과 그의 학사들의 정신을 후세에 전하라는 마지막 어명을 받고 궁을 떠나게 된다.

 

 

연극누가 왕의 학사를 죽였나미인도’, ‘바람의 화원의 원작으로 유명한 작가 이정명의뿌리 깊은 나무를 극화한 작품이다한글창제를 소재로 한 미스터리연쇄살인극 이 작품의 연출을 맡은 박승걸은세종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다방면에 많은 관심과 아이디어가 있었던 사람이다. 또한 이 연극을 준비하면서 그가 체 게바라처럼 오늘날까지도 젊은이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진취적 정신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그는 진정한 자주국가와 민중이 행복한 나라를 위해 소리 없는 전쟁을 치뤘다. 연극누가 왕의 학사를 죽였나는 그의 길었던 전쟁의 일부를 압축하고 거기에 확대경을 들이대 가까이서 보여준다고 말했다. 누가 왕의 학사를 죽였나는 세종대왕의 시대를 왕이나 고위 대신 궁궐 수비병의 눈으로 바라본다. 궁전 안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스릴 속에서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의 치열한 혈투를 현대적인 음악과 안무를 통해 표현한다. 전통격자무늬의 그림자가 배우들의 안무와 어우러져 환상적인 신을 만들어낸다. 무대는 대도구를 활용해 역동적인 연출을 선보인다. 스피디한 장면전환으로 미스터리연쇄살인극의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소설과 또다른 분위기의 연극적인 작품으로 새로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누가 왕의 학사를 죽였나>는 세종 시대, 훈민정음 반포 전 7일간 경복궁에서 벌어지는 집현전 학사 연쇄살인사건을 다룬다. 위대한 연쇄살인의 이면에는 뛰어난 천재 집단이 목숨을 걸고 추진하는 비밀 프로젝트가 있고 그것을 방해하려는 세력의 거대한 음모가 숨어있다. 연쇄살인에 숨겨진 철학적 배경, 각기 다른 세계관을 두고 벌이는 학사들의 대립, 수수께끼를 간직한 궁궐의 수많은 전각들... 수학, 천문학, 언어학, 역사, 철학, 음악, 건축, 미술 등 방대한 지식들은 사건을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로 작용한다. 마방진, 지수귀문도, 강희안의 고사관수도에 숨겨진 단서는 짜릿한 지적 긴장감을 선사한다. 향원지, 열상진원, 집현전, 경회루, 아미산, 강녕전 등 경복궁의 여러 건축물에 숨겨진 철학적 수수께끼도 흥미롭다. 흠잡을 데 없이 치밀한 복선, 끊임없이 빠져들게 만드는 놀랍도록 다양한 지식들, 허탈할 정도로 예상을 배반하는 반전, 생생한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역사책에서 막 걸어 나온 듯 생생한 시대상, 현실감과 박진감이 넘치는 스토리 전개. 세종은 반대파의 공격을 두려워하면서도 시대의 요구를 저버리지 않는 인간적인 군왕으로 그려진다.

 

 

작가의 글 이정명

태평성대에 연쇄살인사건이라니?!” <누가 왕의 학사를 죽였나>의 줄거리를 처음 듣는 분이라면 그렇게 되물으며 펄쩍 뛸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가 배웠고 알고 있는 세종 시대는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가장 평화롭고 융성한 태평성대였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그 시대의 수많은 얼굴들 중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에 불과합니다. 어떤 시대든 역사는 보는 시각에 따라 수많은 얼굴을 지녔 지요. 우리는 지금까지 남아있는 기록과 유물, 그리고 막연한 짐작으로 그 시대의 모습을 바라볼 뿐입니다. 연극 <누가 왕의 학사를 죽였나>는 우리들이 미처 보지 못했던 세종 시대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입니다 어쩌면 그 모습은 낯설 수도 있고 당황스러울 수도 있으며 두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대를 아 파했고 더 나은 시대를 위해 싸웠던 오래 전 사람들의 열정에서 지금 우리의 좌표를 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위대한 세종시대를 말할 때 우리는 세종이란 한 인물의 위대함을 보기에 바쁘지요. 하지만 역사의 갈피 속에는 보석 같은 인물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역사책에 이름 석 자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갔지만 그들 또한 뜨거운 시대의식을 품고 살아갔습니다. “누가 왕의 학사를 죽였나는 바로 그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을 통해 위대한 세종의 시대를 왕이나 고위 대신, 혹은 집현전 학사들의 눈이 아니라 천한 궁궐 수비병의 눈의 통해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궁전 안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연쇄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스릴 속에서 그 시대의 질곡과 그 시대를 떠안은 사람들의 정념을 느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힘겨운 싸움 끝에 지켜내고 우리에게 남겨준 아름다운 유산들을 다시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세종이란 군주의 매력, 그리고 한글이란 위대한 발명품을 다시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더욱 기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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