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광진 '줄리어스 씨저'

clint 2023. 8. 14. 09:26

 

<줄리어스 씨저>는 카페 이름이다. 그전에는 조폭 같던 사장이 여기를 기반으로 나이트클럽으로 세를 확장하려다 심복의 칼을 맞고 죽었고 그 뒤를 이어 이 동네에서 조그만 카페를 하단 젊은 김 사장이 인수해서 새롭게 시작하는데, 전에 근무하던 직원들을 모두 본인이 원하면 모두 채용하기로 하고, 또 파격적으로 종업원 동업자제도를 운영해 수익을 공유한다고 공표한다. 지배인은 불만을 품고 떠나고 종업원들은 기대에 부풀어 열심히 일하는데몇 달이 지나도 수익이 진전이 없자, 사장을 비롯한 종업원모두 실의에 빠지는데웨이터로 일하던 춘심과 현태도 고민을 한다.그러나 현태가 경리를 보는 미라가 매출을 누락하고 돈을 빼내는 것을 보고 미라를 다그치게 되고, 미라는 현태를 꾀어 그 돈을 나누기로 한다. 춘삼도 손님으로 왔던 유한마담을 통해 딴 일자리를 알아보다가 저축한 돈을 모두 털리게 된다. 결국 카페 <줄리어스 씨저>는 경영난을 못이기고 매각하게 된다

 

 

작가의 글 이광진

무대는 매우 특수한 공간이다. 그것은 작은 세계이며 따라서 쉽게 무시하고 지나칠 만한 것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우리의 인생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으므로 쉽게 삶과 유리될 수도 있다. 게다가 사회에서 예술의 역할은 일반적으로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술이 없어도 별 불편 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이러한 예술과 삶의 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순간순간마다 부딪치는 문제가 바로 예술적인 문제와 직결된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히 "연극은 예술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오류일 것이다무대는 삶의 반영이다. 우리의 현실 속에서 결정해야 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무대에서도 존재하며 이러한 결정에 따라 "괜찮다" "못하다" "보다 낫다" 등의 말들이 매일의 삶을 이루듯이 무대 위의 삶을 이루어 가며 이러한 것들이 모여 예술을 형상화 시키기 때문이다한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결정해야 했던 수많은 문제점들이 작가인 나에게 큰 부담감을 안겨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단순한 결심이 아니라 예술로서의 형상을 갖춘 작품으로 완성될 수 있을까<줄리어스 씨저>는 원래 시나리오로 구성되었다. 전두환 정권이 그 아류인 노태우 정권으로 이름 바꾸기를 하고... TV에선 88올림픽을 개최한 선진 국민의 자긍심 운운할 때….

1996년 여름, <줄리어스 씨저>가 뮤지컬로 연극화 되어 무대에 올려진다. 그들이 법정에 서서 각각 사형과 무기징역을 구형 받고... TV에선 줄줄이 엮여 끌려 나오는 연대에서의 어린 학생들의 모습이 보여지고, 한 시민은 문민정부 시대에 무슨 난리라며 철없이 좌경화된 그들을 질타하고, 아무도 그들에게 동조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열변을 토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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