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광림 '우리들의 저승'

clint 2023. 8. 6. 08:42

 

무대는 저승의 대기실. 한 사람(1)이 무료하게 TV를 보고 있고, 잠시 후, 3번이 들어오는데, 이곳이 어딘지, 뭐하는 데인지 모른다. 물어봐도 1은 대답이 없다. 단지 휴식시간이라고 한다. 언제든 휴식이 끝나면 일하는데 여러 가지 잡일을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단다. 여긴 시간 개념이 없어서 자신도 2년인지 5년인지 정확히 모른다. 이곳에 몇 명이 더 온다. 2번은 그룹 회장, 4번은 정신과의사, 그리고 5번은 젊은 여자, 2번 김회장은 모든 사람이 아는 유명한 김회장이다. 1번도, 그를 아는 듯하다. 재미없는 TV는 채널도 1개 밖에 없어 무료하게 보다가, 발랄한 여자(5)가 주도해 천당, 지옥 게임 비슷하게 그들이 어디로 가게 될지 질문에 답하여 여자의 판정을 받는데, 1을 제외하고 모두 천당행이다. 모두 자신을 미화했기에그리고 2를 아는, 아니, 그의 밑에서 일했던 1을 통해 김회장의 전생이 폭로되는데  

 

 

우리 사회의 몇몇 계층을 대표할 있는 인물들이 저승에서 만나게 된다. 그들은 평범한 우리들처럼 생활에 대한 뚜렷한 의식없이 그럭저럭 적당히 죄도 지어가며 세상을 살던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같이 대화를 나눌 얘깃거리가 없다. 같이 부를 노래가 없으며 같이 즐길 춤도 없다. 그들은 모두 언제 올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모르는 저승의 심판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들의 결백함을 증명하려고 애를 쓰고 자신의 죄를 남에게 뒤집어 씌운다. 그러다가 서로 싸우고 상대방을 미친 사람으로 몰아붙이기도 한다. 결국 그들은 아무것도 아님이 드러난다.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삶의 결과가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 하는 것을 그들을 통해 있을 것이다한편 작품은 이러한 현실세계의 모습을 저승이라는 장소를 빌어 굴절시켜 표현함으로써 인간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코믹 터치로 다루었다.

 

 

작가의 글 - 김광림

"우리들의 저승"은 나의 작품이라기 보다 우리들 연우무대 단원들의 공동창작이라 얘기하는 편이 더 옳을 지도 모른다. 처음 단계에서 나는 이 작품의 줄거리가 된 어떤 얘기를 作品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그것을 구성이나 극적인 흐름이 배제된 상태의 원고를 作成하여 우리 단원들에게 돌려 읽어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여기서부터 작품을 만드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여러가지 의견들이 제시되었고 그 중에는 '재미가 없다' '유치하다' '뭔지 모르겠다' 등의 혹평도 쏟아져 나왔다. 그러면서도 우리들의 의견이 모여지게 된 것은 이 作品을 쓰게 된 동기, 더 좁혀서 얘기하자면 작가의 의도에 있었다. 그 의도에 있어서만은 모두 얘기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들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는 매일 저녁 모여 작품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나는 수차례에 걸쳐 작품을 뜯어고쳤다. 이것은 매우 길고 지리 하며 귀찮기도 한 과정이었다. 그러나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목표는 살아있는 얘기를 하자는 데 있었기 때 문이다. 살아있는 얘기만이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그것은 예술성과 시대성을 지닌 얘기다. 예술성은 재미다. 이 재미는 반푼어치짜리의 싸구려 재미가 아닌, 관객의 가슴을 적셔줄 수 있는 그런 재미, 그리고 시대성은 우리들의 얘기를 함으로서 만이 나타내 질 수 있다. 우리들이 란 관객들 그리고 배우들 우리들 모두이다. "우리들의 저승은 우리들의 사회다. 이것은 생활의 일상성을 그렸 다. 그래서 밤늦게 달리는 시내버스의 빈자리 같은 곳에 혹은 뒷골목 쓰레기통 옆 같은 곳에 널려져 있을지도 모르는 그런 얘기다. 또 저녁이면 온식구가 모여 텔레비전을 보는 우리들의 안방이나 다음날 아침에 허겁지겁 직장으로 달려가는 출근길 또는 우리들의 직장의 재미없는 일과. 그런 데서 얻어들을 수 있는 얘기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들의 얘기이다. 우리들의 친구, 부모, 여자동생. 애인 그리고 우리들 자신의 얘기, 우리들은 그렇게 시시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흘러가듯이, 꿈을 꾸듯이, 노곤한 오후에 의자에 앉아서 졸듯이 우리들은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힘껏 두주먹을 움켜 쥐 어도 아무것도 잡히지 않듯이, 이것이 죄가 되지 않는다고 누가 주장할 수 있는가? 훗날 우리 중에 누군가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난 착하게 살고 싶었소. 당신들 때문에 내 인생이 엉망이 됐잖아?"

 

1979년 공연 팜플릿의 작가 김광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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