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정우숙 '사물의 왕국'

clint 2023. 8. 5. 08:25

 

작가이자 배우인 하불립은 5년전 청순한 여배우 고진리를 살해하고 시체를 유기한 자들을 찾아 죄값을 묻고자 몇 년만에 극장으로 돌아온다. 그는 과거에 고진리를 임신시켰던 왕이억, 배역문제로 다툼이 많았던 서둘녀, 연적으로 느끼던 오피리, 변화에 적응하며 실리만 추구하던 마박수부부 등 고진리 살해에 연루되었을 단원들에 대한 심증을 확인하고자 작품을 쓴다. 한편 셰익스피어 전문 극단으로서 화려한 명성을 누렸던 극단은 전 대표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노골화된 권력과 이권다툼을 겪으며 몰락으로 치달아 극장을 처분해야만 하는 위기에 몰려 있다. 이들은 위기의 타개책으로 공연을 하기로 합의하고 연습에 들어가나 제각기 살 길을 모색하면서 끊임없이 서로를 배반한다. 하불립이 쓴 셰익스피어의 혼성모방작 '사물의 왕국'은 영혼과 정신이 죽어 사물화된 세상에 대한 냉소적인 고발이며 그런 세상을 만든 자들에 대한 강력한 비난이 주제다. 그러나 하불립을 사랑하는 오피리는 하불립의 생각이 틀리고 왜곡된 것임을 증명하고자 대본을 고치고, 하불립은 자신이 알고 있던 사실과는 다른 장면에 부딪쳐 다시 미치게 된다. 결국 고진리의 살해자는 밝혀지지 않은 채 공연은 무산되고 극장은 신세기 극단으로 넘어간다. 그 후 단원들은 제 살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고, 헐리는 극장에는 꿈과 이상을 품은 젊은 날의 영혼들 속삭임만 남는다.

 

 

이 작품의 주제의식은 햄릿을 위주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패러디함으로써 특히 햄릿의 의구심 즉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 유도, 긍정적 세계관에 대한 지향이라 본다. 이 작품의 매력이자 개성은 셰익스피어의 여러 비극들의 사상과 극적 장치들을 절묘하게 변형하여 이 시대의 세계관을 창조하고자 함이라 본다. 햄릿에서 착안한 작품은 철저하게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출발하여 셰익스피어의 작품으로 끝나는 셰익스피어극단의 이야기로 꾸몄다. 이러한 설정은 우리가 갖는 오류나 편견이 사유의 한계로 해서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는 운명론을 상징하는 것이다. 햄릿의 의심이 맞을 수도 또한 틀릴 수도 있다는 가지 생각을 '함께 인식한다' 것이 필요하다. 그럼으로 해서 세상에 대해 긍정적인 사고, '100% 아닌 것이 분명하지만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라는 믿음을 가져보고자 한다. 그러한 편견과 오류는 진실을 보고서도 인지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서로의 갈등과 다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사물의 왕국' 그러한 인간들의 결함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이다.

 

 

<사물의 왕국>은 물화된 세상에 던지는 하나의 고지식한 질문이자 문제제기이다. 인간이 세계를 해석하고 삶을 영위해 가는 과정에서 과연 그의 판단과 생각은 옳기만 한 것일까? 혹시 자신만의 생각 안에 고치처럼 처박혀 세계를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과연 보편타당한 진리는 존재할 수 있는가? 존재할 수 없다면 무엇 때문인가 존재한다면 어떻게 추구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은 <햄릿>에 대한 해석과 궤를 같이 한다. 햄릿은 유령의 말만 믿고 숙부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유령은 햄릿의 편인 호레이쇼나 근위병들의 눈에는 보이지만 거트루드의 눈엔 보이지 않는다. 작품내의 이러한 모순이 극작술 상의 실수로만 생각될 수 있는가. 어떤 의도 즉 자신이 믿는 것만 보고 믿고 싶은 햄릿의 심리적 욕망의 결과를 드러내는 것이라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은가. 이렇게 햄릿의 의구심을 기초로 <사물의 왕국>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재료로 하여 만들어졌다.

셰익스피어 전문극단에서 햄릿 역을 주로 맡던 하불립은 몇 년 전에 사라진 고진리의 살해범을 찾고자 한다. 극단 내의 다른 이들을 의심하는 불립은 햄릿처럼 미친 척하며 연극을 통해 그들의 속마음을 밝혀내고자 하며 극단원들을 살인범으로 몰고 간다. 하불립의 옛 연인이었던 오피리는 하불립의 편협되고 편집적인 태도에 분노를 느껴 진실을 밝히고자 새로운 연극을 꾸민다. 결국하불립은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경악하여 광기에 휩싸이게 되고 다른 단원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이런 단순한 줄거리를 엮는 방법으로 선택된 한 가지는 거울효과이다. 먼저 이 극은 <햄릿>의 구성을 의도적으로 차용해 하불립 - 햄릿의 '의심'에 대해 의심하며 지켜볼 수 있게 했다. 극중현실이 셰익스피어 극단이고 극단원들은 셰익스피어 작품의 등장인물들과 교묘하게 겹쳐 있다. 하불립 햄릿은 극중현실에서 진실을 밝힐 목적으로 연극을 꾸미는데, 여러 작품의 장면들을 변형한 극중극은 극중 현실을 비추고 있다. 극중극 안의 작은 연극은 전체 주제에 대한 주석 역할을 한다. 또 인물들은 '극중현실의 배우(왕이억)- 배우가 자주 연기한 극중인물 (리어) -극중극 안의 변형된 극중인물(조롱된 리어)'로 삼중으로 겹쳐 있으면서 각각이 서로를 반 향한다. 화자의 경우도 연극에서는 드물게 이중화자를 취하여 하불립의 비극적 세계관의 대극으로서 오피리의 현실적 세계관을 마주보게 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하불립이 진실을 대면하는 순간, 관객 역시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작가의 글 정우숙

작년 초여름 채승훈 선생님과 새 작업에 대한 얘기를 시작한 이후 얼추 1년이 다 되어간다. 여름을 대충 그냥 보내고, <사물의 왕국>이라는 제목과 그 제목만으로도 짐작될 만한 기본 작의, 그리고 셰익스피어 비극들의 종합적 패러디라는 내 의도를 처음 비친 것이 작년 9 11일이었다. 이 날짜를 기억하는 건, 그 얘기를 꺼내고 귀가한 직후 TV를 켜자 9.11테러에 대한 속보가 이어지면서 거짓말처럼 무너져 내리는 건물들의 모습을 수없이 지켜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작품과 테러 사이에는 아무 관계가 없지만, 엉뚱하고 주관적인 내 연상작용 안에선 사물의 왕국과 9.11테러가 비합리적으로 뒤섞여 있다. 지금의 난 이 작품의 작가로서 긴 말을 하기가 조심스럽다. 가을, 겨울에 걸쳐 여러 번 희곡을 쓰며 수정했으나, 막상 무대에 오르는 공연본의 세밀한 부분들에는 본인의 힘이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연습이 시작되면서 연출, 배우들과 드라마터지의 노력이 더해져, 전체 틀은 유지되면서도 대사의 상당 부분이 새로 만들어졌다. 그 작업까지 함께 하는 것이 진정한 작가의 몫이겠으나, 삶의 다른 영역들에 가로막혀 그 시간을 함께 할 수 없었으니 이 작업에 함께 한 모든 분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어쩌면 그 과정에 내가 참여하지 못했던 것이 이 작품을 더 생동감 있고 재미있게 만들어 주었으리라 짐작하며, 때로는 스스로 부재하거나 용해되는 형태로 대상에의 애정을 실천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내 게으름에 대한 변명처럼 생각해 본다. 요즘 주변의 멀고 가까운 이들이 크고 작은 병에 고생한다는 소식들이 자꾸 들려와, 그저 가고 싶은 극장에 찾아가 객석을 지키고 앉아 있을 만큼의 건강을 누리는 것 만도 행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생각은 더 늙은 후에 하게 될 줄 알았는데, 이 일조차 할 수 없는 내 또래 지인들도 있으니 하는 수 없다. 관객으로 살 수 있는 것만도 감사해하며, 내가 좋아 하는 배우들이 한꺼번에 출연하는 연극을 기대하는 관객의 마음으로 이번 공연의 성공을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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