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영무 '하늘 천 따지'

clint 2023. 8. 3. 06:23

 

「하늘 천 따지」는 인간의 세속적 욕망을 불교적 관점에서 조명하고 있는 작품이다. 연극은 주인공 사내가 절간에 맡겨진 부모의 유산을 찾아오기 위해 중 아닌 중 노릇을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천석꾼 집 삼대독자인 김무용은 부모의 지나친 사랑 탓에 안하무인, 독불장군으로 성장한 인물이다. 그는 군주적 기질만큼이나 숱한 여성 편력과 쾌락에 젖어 방탕한 생활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서 아들이 사람이 되기 전에는 재산을 주지 말라는 유언과 함께 비구니인 그의 이모에게 재산 관리를 위탁하게 되었던 것이다. 세상 욕망에 절어 있는 사내는 잿빛 장삼 속에 들끓는 정염을 억제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한다. 마침내 그는 지겨운 중 생활을 빨리 벗어나기 위해 그럴듯한 중이 될 궁리를 찾는다. 이러한 사내의 심중을 꿰뚫어 본 주지 무광 스님은 오히려 거지 행각의 길에 들어설 것을 명한다. 결국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된 사내는 좌절과 고통 속에서 새롭게 인생의 의미를 깨달아 간다. 그리고 고행을 통해 자신이 살아왔던 과거를 뉘우치고 참된 중으로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이 공연이 호감을 주는 이유는 소재를 다루는 작가의 안정된 시각 덕분이었다. 즉 도에 이르는 한 인간의 인생 역정을 불교극 형식에 담아 표출 했으되, 심오한 철학이나 관념적인 사유의 틀을 강요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종교적 소재를 다루었으되, 이를 특정적 구도자의 고뇌로서가 아니라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방황으로 보편화 시킨 것이다. 이는 연극 제목이 노렸던 의도와 맞아 떨어지는 것이기도 했다. 그 결과 관객들은 부담 없이 작품을 대하게 되었고, 인간애에 대한 따스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즉 한 인간의 인생 편력을 다루되 여러 가지 현실 문제를 한꺼번에 무대화 함으로서 작품 전체를 산만하게 만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개인적 생존의 고통으로부터 정치적 폭력성과 비인간 화의 실태, 사회적 인간관계의 단절, 사랑, 죽음 등 인생사 모두 다룸으로써 견성의 과정을 밀도 있게 그려내지 못하고 표면적으로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긴장감이 약화되고 주제 의식이 심도 있게 부각시키지 못한 것이다.

 

 

작가의 글 - 김영무

강영걸 씨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코미디언 이원승이 연극이 하고 싶다며 연출가로 자기를 초빙했는데, 공연 레퍼토리로 내가 쓴 그 모노드라마 가리왕의 땅을 추천했다는 말을 해 주었다. 이원승씨는 고 추송웅 씨가 빅히트를 친 바 있는 「빨간 피터의 고백」이란 작품을 강영걸 씨에게 연출 의뢰했는데, 연출가가 레퍼토리를 바꾸자고 한 모양이었다. 왜냐하면 빨간 피터의 고백」은 추송웅이란 배우가 워낙 잘해서 그를 능가할 수가 없을 테니, 차라리 새로운 작품으로 가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강영걸 씨는 마당놀이 스타일로 가고 싶어 하면서 공연 제명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고 했다. 내가 <하늘 천 따지>로 가자고 했다. 이윽고 여의도에서 연습이 시작되었는데 연습장에 처음 가본 나는 오정해 씨의 깜찍한 모습에 놀라기도 했다. 그날 나와 강영걸은 마포 최대포 집에 와서 소주를 좀 마시고 다시 연습장에 돌아가며 돼지고기구이를 좀 사 갖고 갔는데, 그날 이후 오정해 씨는 나만 만나면 그날 그 돼지고기가 맛있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드디어 그 작품은 1992 7월 한 달 동안 '바탕골 소극장에서 공연 되었는데, 이원승씨 주연에 고수(鼓手)역으로 오정해 씨가 출연 했고, 음악은 김해영 씨가 맡아 그야말로 성황리에 막을 내릴 수가 있었다. 이후 이원승 씨는 그 작품을 들고 전국을 순회 공연하다시피 했고, 미국을 비롯하여 해외공연도 숱하게 다니는 등 약 3년간 그 작품에만 매달리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러더니 대학로에 이태리 피자집을 차려 돈을 잘 벌고 있다는 소문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하늘 천 따지」라는 그 작품의 공연 중에 오정해 씨는「서편제」란 영화를 연출한 임권택 감독에게 픽업 되어 일약 영화배우로 출세하기도 했다.

이 작품의 구상에는 김용집 스님의 산문「인욕의 길」 중에서 그 일부를 참조했음을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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