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박동화 '공사장'

clint 2023. 7. 18. 13:38

 

1973년 『월간문학』을 통해 발표된 <공사장>은 박동화 희곡 가운데 유일하게 희극성을 강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런데 등장인물을 제목으로 다루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공사장을 중심으로 한 인물의 비정상성을 공격하는 풍자가 강하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풍자적 희극성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조화를 이루지 못한 사치스런 응접실'은 곧 금력지향의 소시민적 삶의 부조화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이 속에서 공사장은 대내외적으로 시달림을 받는다. 전화를 통해 외부상황이 무대에 도입되면 공사장의 부정성은 여실하게 탄로나게 되고 그럼으로써 관객은 훼손된 인간의 비정상적인 삶의 파국이라는 작가의 의도를 만나게 된다. 3막으로 된 이 작품은 공사장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갖은 비리와 부정을 일삼다가 결국 몰락하고 만다는 이야기이다. 돈이야 말로 삶을 규율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고 세상은 돈의 철학으로 돌아간다고 여기며 배다른 자식을 12명이나 거느리는 황금만능주의자 공사장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이의원의 선거자금을 대주고 반대급부를 챙기는 이른바 정경유착의 방법으로 자신의 치부를 위해 회사원들에게 폭력을 서슴지 않는다. 권력과 결탁한 회사경영자의 부정적 행태를 지적한 이 작품은 이로 보면 훼손된 가치관을 지닌 한 인물의 풍자에 그 목적을 두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개의 조위금 사건, 아들의 친자확인 소송사건, 자동차회사 임금인상 사건, 감사반 내사의 건, 사이비 기사의 등장, 사원의 사표강요 사건 등 권력과 금력이 만들어낸 여러 폭력 상을 파노라마식으로 전개시킴으로써 산업사회의 왜곡된 모습과 물신주의에 대한 작가의 부정적 견해를 읽을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왜곡되고 비정상적인 사회가 구조적으로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도 이 작품의 중요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공사장에게 갖은 아부를 다하며 그에게 생리적 환심을 사려한 공비서가 공사장의 처와 협작해 공사장의 전재산을 모조리 가로채 새 회사를 설립한다는 결말부의 이야기는 곧 아부를 무기로 부와 출세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출세지상주의자들의 재등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공사장의 처 나은주는 젊은 여자로서 가정보다는 자신에게 돌아올 재산의 몫에 더 연연해하는 인물이긴 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가정을 파괴하고 남편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비정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물신화에 경도된 현대사회의 위기를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비정상적인 한 인물의 부정성에 초점을 맞추어 이를 폭로하거나 풍자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러한 인물이 대두될 수밖에 없는 현대산업사회의 구조적 취약성과 모순을 지적하고 있다.

 

 

 

우선 공사장과 공비서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오로지 부와 출세에 만 골몰한 나머지 주변의 상황을 철저히 무시하는 인물로 일단 웃음의 대상이 된다. 이들은 주변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 만을 위해 행동하기 때문에 상황의 불일치로 인해 웃음을 야기한다. 말하자면 인과적인 서사진행과는 단절된 불연속성이 생김으로써 촉발되는 희극성이라 말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공사장의 아들이라며 방문한 공석진을 사무감사원으로 오판한 나 머지 공사장 이하 공비서, 나금주 등이 쩔쩔매는 장면이다. 공석진은 아버지인 공사장으로부터 자신이 친자(親子)라는 사실을 인정받기 위해 방문하지만 공사장 일행은 암행 나온 사무감사원으로 착각한다. 이는 장면의 기능적 의미와 실제적 의미인 두 독립된 사건- 공사장과 공석진의 두 입장 - 간의 불일치에서 발생한 오해가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공비서와 나금주의 계략에 의한 공사장의 몰락이나 사이비기자에게 공사장이 사기 당한 사건 등은 보조 서스펜스로 작용하면서 의미 있는 웃음을 야기한다. 또한 2막 서두부분에서 공사장집의 식모인 서운이가 장황하게 전화를 받고 있자 공사장의 처 나금주가 서운이를 나무라나 자신 역시 장황하게 수다를 떠는 장면 등은 비록 극의 중심사건과는 직접적인 계기가 닿지 않지만 나금주의 성격형상화에 기능하면서 앞상황의 자동반복행위로 말미암아 웃음을 야기시킨다. 결국 이 작품은 기법상 이 같은 인물과 상황에 대한 희극적 형상과 묘사를 통해 작가는 대상에 대한 차가운 비판정신을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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