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최기우 '누룩꽃 피는 날'

clint 2022. 1. 3. 21:16

 

 

 

연극 무대의 배경은 전주의 막걸리집인 은행나무집이며막걸리집 주인인 이옥자와 젊은 날 가족을 버리고 간 아버지 이영호가 막걸리집에 찾아와, 얽힌 그들의 과거사를 풀어낸다. 막걸리집에 먼저 자리하고 있는 막걸리주당들을 비롯해 중년의 담당공무원과 민속학과 교수, 젊은 문화기획자, 소리꾼 등이 한 무리이며, 여시인, 경연대회 참가자, 의원 등이 합류한다. 또 패기 넘치는 미래의 상징인 대학생들이 등장한다. 막걸리 한사발과 추억을 안주 삼아 풀어진다. 어릴 적 심부름 길에 슬쩍 마시던 도둑막걸리, 정부의 막걸리 규제와 장려, 대학생들의 목청 높은 논쟁과 웃음소리, 부산한 주인장의 손놀림과 한정식 못지않은 푸짐한 상차림, 막걸리 마시기 대회 등. 아버지의 딸을 위하는 마음을 전하고 결국 이옥자도 아버지의 진심을 헤아리고 누룩꽃 피는 순간, 화해와 사랑을 확인한다.

 

 

 

 

작가의 글 - 최기우

막걸릿집에서는 누구나 수다쟁이가 된다. 목청이 커지고, 손짓· 발짓도 다양해진다. 막걸릿집 안주는 사람 씹는 맛이라고 했던가? 들리는 소리는 대개 씹고 씹히는 이야기다. 이상하게도 막걸리를 나누는 자리는 그래야 더 흥겹다. 그러다 보면 괜스레 분했던 마음 이 누그러질 때도 있다. 옆 사람도 금세 친구가 될 만큼 실실 웃음이 난다. 시시껄렁하지 않고, 푸짐하고 유쾌한 뒷말 세상! 누룩꽃 피는 날은 전주시립극단의 창단 25주년 기념공연이자 제88회 정기공연 작품으로, 극단이 전주의 자산을 소재로 한 연작을 무대에 올리기로 마음먹고 시작한 한()스타일 세계화의 첫 시도였다. 막걸리를 소재로 한 글을 여러 편 썼지만, 누룩 꽃 피는 날은 만만치 않았다. 막걸리와 막걸릿집, 술자리에서 나누는 갖가지 이야기와 끊임없는 사건들. 값도 다르고 안주가 나오는 방식도 다르고 분위기도 다른 전주의 막걸릿집들처럼 쓰고 싶은 이야기와 꼭 써야만 하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은가? 취향에 맞는 막걸리 골목을 찾아 '일당들의 방식대로 취하고 싶어 하는 '주당'들처럼, 연출과 기획자, 배우들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철철 넘쳤으리라. 관객들은 또 어쩌리. 최종 대본 확정까지는 험난했다. 첫 대본은 <전주막걸리박물관> 건립위원회가, 두 번째 대본은 <전주막걸리 빚기 대회>를 소재로 했다. 위원들과 대회 참가자들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이름들을 꺼내놓는다. 6, 70년대 신석정 시인과 문학청년들, 극작가 박동화와 연극인들, 하반영, 권경중 화백과 미술인들, 80년대 동문 거리를 휘젓던 박봉우 시인, '정유대학원'이라고 불렀던 <정음집> <세종집> <경원집>· <한성집>· <덕집>· <후문집>· <신후문집>· <원조 후문집> 등 전주에서 주객들의 발길을 붙잡았던 수많은 선술집과 학사주점, 막걸릿집보다 더 부산했던 백반집과 닭내장탕집들... 그들의 구수한 이야기를 흥에 겨워 따라가다 보면 더 아련한 기억들이 꺼내졌다. 두레와 새참의 정겨운 풍경, 양조장과 정미소, 심부름 길에 슬쩍 마시는 막걸리, 판소리 명창들과 쑥대머리 한 대목, 정부의 막걸리 규제와 과보호, 주방에 선채로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켜고 불쾌하게 돌아가던 어느 영감님, 치기넘치는 대학생들의 목청 높은 논쟁과 웃음소리, 탁자를 두드리며 불러 젖히는 민중가요, 움푹움푹 찌그러진 노란 양은 주전자, 왁자지껄한 술꾼들, 재빠른 주인장의 손놀림과 한정식 못지않은 푸짐한 상차림, 삼천동. 평화동의 막걸리골목 막쿠르트, 막걸리 마시기 대회. 막걸릿 집 안주를 몰래 담아가는 자취생은 시대 불문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 작품을 통해 더 푸짐한 추억과 기대와 상상으로 막걸리 한 상을 차려낸 관객 아무개들의 작품이다.

온 고을의 건강한 술 전주고을 막걸리라. 사발사발 넘치는 술 차고차고 넘치는 정. 알싸하고 쌉쌀하고 달큰하고 시원허고 허기졌던 배 불쑥불쑥 테이블을 툭툭 치면 너도나도 기분 좋아 우쭐우쭐 우쭐쭐 세상 다 내 것이라 누룩꽃 환하게 피겠네."

각박한 세상, 누룩꽃 피는 날은 철철 넘치게 따라주는 막걸리 한 사발에 호기를 부려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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