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미리 '집으로 가는 길'

clint 2022. 1. 3. 15:30

 

2022 매일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한적한 고도로 휴게소에서 수장과 태주가 우연히 만난다.

수장은 약혼한 다정과 함께 아버지가 계신 고향 집으로 가는 길이었고,

태주는 엄마와 한해 살던 집을 무작정 떠나온 셈이었다.

수장은 교복 차림에 삼선 슬리퍼를 신은 태주가 휴계소 풍경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태주는 장화를 신은 채 멀뚱히 서 있는 수장을 뻔히 바라보다가 라이터를 빌려 달라고 한다. 긴 장마 끝에도 더위가 지치지 않는 어느 여름날, 집으로 가는 사람과 집을 떠나온 사람은 짧은 대화를 나눈다.

 

 

심사평: 김윤미(계명대 교수·극작가), 조보라미(영남대 교수)

올해 신춘문예 희곡 부문은 전년보다 약간 적은 103편이 응모되었다. 일상의 삶을 그린 작품이 다수였지만 장애, 탈북, 노인 문제, 청년실업 등 사회 문제를 다룬 작품도 적지 않았다. 그 외 냉동인간, 우주, 외계인의 인류 지배 등 SF적 소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점도 특징적이었다. 전체적으로 주제나 기법의 측면에서 안정적이고 패기가 엿보이는 작품이 여럿 있어 작품을 고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최종심에 오른 것은 '줄 위에서', '로봇 아이', '집으로 가는 길' 등 세 작품이었다. '줄 위에서'는 이른바 '라인스탠더', 돈을 받고 줄을 대신 서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신선한 소재, 자연스러운 대사, 매끄러운 극의 전개 등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결말로 갈수록 긴장이 느슨해져 주제가 잘 부각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로봇 아이'는 인간의 필요를 위해 고안된 A.I. 로봇의 이야기로, 로봇과 인간이 교감하는 이야기가 감동적이었다. 1-4장의 구성을 좀더 긴밀히 하고 미래사회를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이 부각된다면 더 좋은 작품이 되리라 본다.

'집으로 가는 길'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우연히 만난 소녀와 젊은 남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설정은 단순하지만 인물이 살아있고 희곡 언어 구사력이 예사롭지 않다. 주제 의식의 깊이나 인물 형상화에 있어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대를 상상하게 하는 필력으로 볼 때 앞으로의 가능성에 큰 기대를 걸며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바이다. 축하하며 건승을 기원한다.

 

 

당선소감 - 김미리

그냥 좋아한다는 사실은 점점 소용없어졌습니다. 모든 과정이 유쾌하고 즐겁진 않았습니다. 매일을 부지런히 기억한 것도 아닙니다. 무념무상으로 보낸 하루가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란 사람은 무슨 일을 해도 똑같았을 거 같습니다. 좋아하다 가도 싫어하고, 그러다 어느 정도 참을 만해지면 결국 싫어하는 마음을 잊어버리는, 그런 식의 반복이었을 겁니다.

아직은 이게 맞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마음이란 건 날마다 다릅니다. 이유 없이 보상받는 기분은, 내일이면 지나갈 오늘치의 기분일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어차피 무슨 일이든 똑같을 거라면, 조금 더 해보고 싶습니다.

힘든 시기 학교 다니는 동안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도와주시고, 쓴 것보다 더 깊이 읽고 이야기해주신 성기웅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소중했습니다. 박해성 교수님, 쓰고 싶은 생각 맘껏 쓸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시기 써낸 두서없는 글 덕분에 해소되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고선희 교수님, 교수님께서 해주신 말과 따뜻한 응원 덕분에 힘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광화 교수님. 어떤 마음이든 그 마음을 당연히 여기게 되면 항상 생각합니다. 함부로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천천히 해보겠습니다. 여전히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어서 좋아요. 늘 감사합니다. 밀린 말이 많습니다. 이 시간이 지나고 나야 떠오를 말들을 생각하며 앉아있는 하루를 연장하고 싶습니다.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런 마음입니다.

1993년 서울 출생. 서울예대 극작과 졸업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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