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블라디미르 구바레프 '석관'

clint 2018. 5. 4. 09:31

 

 

 

핵으로 인한 인류 문명의 재앙에 대한 경고를 꾀한다.

구소련의 극작가 블라디미르 구바레프의 문제작 <석관>은 작품의 배경이 소련이라는 관료주의적인 사회주의 국가라는 점과 극에서 다루는 문제가 인류공동의 관심사인 핵문제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지만 실제로 그런 상황들은 표면적인 주제에 불과하고 정작 다루어지는 문제들은 위기상황에 처한 인간들의 다양한 심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열 개의 병실에 수용된 원폭피해자들과 연구소의 소장과 의사들 그리고 정부의 관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과 생각들은 이 연구소에서 소멸되어가는 삶을 살아가는 베스 멜트니(불사신)라는 인물을 통해 이끌어내어진다.

원자력의 사용에 아무런 결정권도 가지지 못한 이들이 결국 원폭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되지만 그 사건의 책임자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상황을 통해 발생한 문제에 대한 책임의 소재가 빈번하게 실종돼 버리곤 하는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원자력 발전소에 화재가 발생한다. 대량의 방사능이 누출되고, 피폭당한 발전소 직원, 소방대원, 주민들이 방사능대책연구소에 실려 온다. 연구소에는 이미 다량의 방사능 피폭을 받은 불사신이라는 사람이 혼자서 외로이 1년 이상을 살고 있다.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한사람이라도 더 살리려고, 그리고 미래에 있을 방사능오염 환자들을 위해 연구를 멈추지 않는다. 과연 연구원들은 그들의 생명을 어느 정도까지 연장할 수 있을까?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능 누출 사고가 화재가 아닌 폭발일 수 있다는 의혹이 재기 된다. 이를 조사하기 위한 조사관이 파견된다. 과연 조사관은 사고 책임자를 밝혀내서 처벌할 수 있을까? 전쟁터와 같은 공포, 고통 속에서도 사랑은 피어난다. 연수의와 소방대원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찾아온 사랑으로 설렌다. 환자들은 죽어가고, 원자로의 노심은 여전히 불타고 있다. ‘끌 수 없는 불앞에서 모두 무기력하다. 사고경위가 밝혀졌지만 책임자는 처벌할 수 없다. 대재앙이 시작된 것이다. ‘불사신은 이 사고가 묻히지 않도록 최후의 선택을 한다.

 

 

 

 

체르노빌 석관(sarcophagus)”

198646일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4호기의 폭발로 인해 유럽은 물론 세계 전역이 방사능 감염위험에 빠질 위기에 처한다. 이에 러시아 정부는 폭파된 원전 4호기에 임시방편으로 콘크리트를 쏟아 부었고 이렇게 만들어진 이것을 일명 체르노빌 석관이라 칭한다.

사고 후 소련 정부가 사고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방에서는 사고 규모와 사망자 수에 대한 소문과 진위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채로 퍼졌다. 1500km나 떨어진 스웨덴을 시작으로 풍향을 따라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어 당시 폴란드·독일·네덜란드 등에서는 우유의 판매·음용제한, 채소의 섭취금지조치 등이 취해졌다. 당시 모스크바의 모든 병원들이 피폭자들로 즐비했고 피폭자들과 함께 치료와 간호를 담당했던 의사나 간호사도 모두 감염대상이 되었다. 결국 사고 이틀 후인 428일 소련 정부는 관영 통신사인 타스를 통하여, 정확한 사고 발생 시각과 피해자의 수 등은 언급하지 않은 채 사고 발생 사실을 인정하였다. 사고 당시 31명이 죽고 피폭(被曝) 등의 원인으로 19914월까지 5년 동안에 7,000여명이 사망했고 700,000명 가량이 치료를 받았다.

 

 

 

 

 

체르노빌 원전폭발 당시 소련당국은 사고를 은폐하고 숨기는데 급급하여 후속조치와 대응을 제대로 취하지 못하고, 이에 엄청난 피폭자와 환자가 생겨나게 된 것은 물론 발전소를 중심으로 한 우크라이나의 광활한 지역이 폐허가 되어 막대한 인명피해와 경제적·사회적인 손실을 입고 만다.

석관에서 역시 사고를 당한 피폭자들과 군인, 발전소장 등의 대다수 사람들이 책임을 전가하고 회피하는데 급급하며, 언론에서는 사고를 축소시키려는 방송이 반복된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대응과 대처보다는 회피와 안도로 사고를 더욱 더 키우는 사태가 일어나는 것이다.

편리하고 안락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사고와 안전에 대해 무감각한 편이다. 우리나라 뿐 만 아니라 지진과 홍수의 피해가 빈번한 중국, 매년 토네이도의 피해가 극심한 미국, 대형 쓰나미로 후쿠시마원전이 파괴된 일본 등 세계적으로 자연재해와 재난들이 빈번하게 일어나 그 심각성을 증명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석관은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재난에 맞서는 정부의 대응과 방법이 좀 더 신속하고 유동적으로 이루어지고 시민들의 의식 또한 안전에 대해 좀 더 민감하게 반응 하였으면 하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사고후 모습

 

86년4월 체르노빌의 원자로 제4호기의 폭발이 빛은 대참화를 생생하게 그린 이 작품은 소련의「방사선 안전연구소」병동을배경으로 핵에 의한 비극의 진상을 사실적으로 파헤쳤다. 치사량이 넘는 방사선 오염환자를 수용、관찰하면서 미래를 위한 치료법을 연구하는 사망병동에 체르노빌 폭발직후 갑자기 많은 환자들이 밀어닥친다. 진료팀들이 이들 환자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체르노빌 사고의 진상이 하나 하나 파헤쳐지며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의 반응들은 비극성을 극명하게 그려낸다. 이 작품은 사실적인 연극이지만 체르노빌 사건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예리하게 분석、극적 효과를 높였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삶과 죽음、희생자와 치료자、용감한자와 비겁한 자의 세계가 인간적 차원에서 그려지면서 추상적인 원자핵의 개념이 우리에게 가까운 개념으로 다가오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