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홉 작품은 번역이 까다롭기에 각각 번역이 다른 세작품을 올린다. 각각 약간의 차이가 있으므로 비교해서 보면 체홉의 묘미를 더욱 느낄수 있을 듯함
배경은 러시아의 한 시골마을이고 연극은 그 시골마을의 꼬스챠가 그가 사랑하는 - 발랄하고 너무나 사랑스러운 - 니나를 주연으로 연극을 올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꼬스챠는 당시의 러시아 연극과 소설계의 식상해가는 모습에 반대하며 새로운 양식의 연극을 올리는 데 꼬스챠의 어머니-유명여배우-는 그런 아들의 연극을 가식이라 비웃고 상처를 받은 꼬스챠는 연극 중간에 막을 내려버린다. 그리고 니나조차도 어머니의 연인인 '천재소설가' 뜨레고린에게 존경. 내지는 연모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되어 상처가 더 깊어진다. 혼자 있는 니나에게 꼬스챠는 죽은 갈매기를 던져놓고 자신이 그렇게 될 것이라고 얘기하고 니나는 그런 꼬스챠의 키스를 차갑게 거부한다. 달라졌다면서.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호숫가에서 니나와 뜨레고린이 다정하게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꼬스챠는 자살을 시도한다. 꼬스챠의 자살시도는 성공하지 못하고 시골에 휴양차 와 있던 어머니도 그런 꼬스챠의 이상한 모습에 뜨레고린을 데리고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떠나는 날 꼬스챠는 어머니에게 뜨레고린과 헤어지라고 하지만 결국 어머니와 사이만 더 안 좋아지게 되고 어머니는 니나와 사랑에 빠져 더 머물자는 뜨레고린을 뜨거운 말로써 붙잡는다. 둘은 함께 떠나지만 마지막 순간 니나가 뜨레고린을 찾아오고 여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 하며 모스크바에서 만나기로 밀약을 맺는다.
2년 후. 꼬스챠는 니나에 대한 사랑을 간직한 채 유명한 작가로 성공을 거둔다. 니나는 모스크바에서 잠시 뜨레고린과 동거를 하긴 했지만 결국 뜨레고린이 옛애인-꼬스챠의 어머니-에게로 돌아가는 바람에 사랑을 잃고, 뜨레고린과의 사이에서 낳았던 애기도 죽고, 지방 순회공연용 3류 여배우로 전락해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꼬스챠의 집에 어머니와 뜨레고린등, 모두들 모여 있는데 니나가 몰래 찾아온다. 아무도 모르게 니나를 집안으로 들인 꼬스챠는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지만 니나는 이미 너무나 많이 변했고 지쳐있다. 집안에서 들리는 뜨레고린의 목소리에 니나는 당황하고 자신은 아직도 뜨레고린을 사랑한다고 울며 고백하고 떠난다. 니나가 떠난 후 꼬스챠는 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겨냥하고 자살한다.
잡지 《러시아 사상》 1896년 12월호에 발표되었다. 여배우 아르카디나의 아들 트레프레프는 애인 니나를 주역으로 하여 ‘새로운 형식’의 연극 창조를 꿈꾸는 문학청년이다. 하지만 니나는 아르카디나와 연애 관계에 있는 통속작가 트리고린을 사랑하여 그를 뒤쫓아 모스크바를 떠나는데, 결국은 버림받고 순회극단에 들어간다. 그러나 이러한 고뇌와 시련을 통해 니나는 배우로서의 숭고한 사명감을 깨닫고, 굳세게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한편, 현실과 사회에 등을 돌리고 자기만의 세계에 틀어박힌 트레프레프는, 예술과 생활에서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절망 끝에 자살한다는 내용이다. 1896년의 첫 공연은 실패하였으나, 1898년 모스크바 예술극단의 공연으로 갈채를 받았다.
<갈매기>에서는 작가의 중기를 채색하는 출구 없는 절망과 어두운 우울이, 지망했다가 좌절되는 니나와 작가 지망의 청년 트레플레프를 통하여 이야기가 전개된다. 니나는 체홉의 누이동생 친구로 한때 그를 사랑했지만 이루지 못하고 처자 있는 작가 포타펜코에게 몸을 맡겼다가 버림받은 리자 미지노프를 모델로 그려진 것인데 그녀의 비련은 작자의 중기 대표작<지루한 이야기>속의 카차의 비련과 많이 닮아있다. 그런데 이미 언급했듯이 카챠가 절망에 빠져 이제 이런 식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고 외치면서도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은지를 노교수로부터 아무런 지시도 받지 못한 데 반해<갈매기>의 니나는 절망하고 좌절하면서도 앞으로 자기가 어떻게 하면 되는가를 이미 알고 있다. 즉 종막에서 그녀가 말하듯이, 그녀는 자기 일에 있어 소중한 것이 지난날에 꿈꾸던 화려한 명성이나 영광이 아니고 인내력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니나의 이 새로운 신념은<갈매기>속에서 짧은 대사 몇 마디로 이야기 될 뿐이지만 체홉 특유의 우울하고 어두운 희곡의 분위기 속에서 빛나고 있다. 그리하여 이 니나의 개안은 젊은 나이에 20만 년 후의 우주를 생각함으로써 풍만한 색채를 갖는 긴 인생이 무의미하게 여겨지는 청년 트레플레프의 절망과 날카롭게 대립되고 있다. 트레플레프는 종막에 이르러 니나가 인내의 필요성을 깨달았을때도 긴 인생의 과정을 견디고 참아야 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 자살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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