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강재림 '눈의 여인'

clint 2017. 5. 21. 09:30

 

 

 

작가인 안지운은 오랫동안 짝사랑해왔던 친구이자 배우 정유란을 초대해서 자신이 새롭게 완성한 작품 <눈의 여인>을 선물하며 프로포즈 하려 한다. 하지만 정유란은 또 다른 친구인 황유식과 결혼할 계획임을 밝히고 안지운은 절망한다. 하지만 그는 절망을 딛고 <눈의 여인>의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소개한다.

한 시골마을에 한 쌍의 남녀가 사랑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 앞에 도시에서 온 듯 신비로운 한 여인이 나타나 남자를 유혹하고 데려간다. 여자는 남자를 찾기 위해 도시로 떠난다. 여자는 가수가 되어 자신을 알리면 남자가 찾아올 것이라고 믿고 기획사를 찾아간다. 그 기획사의 획기적인 상품으로 발전한 여자는 열심히 노래를 하지만 남자가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잊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여자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환청을 듣고 자신이 무얼 해야 하는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소리에 이끌려 눈의 여인을 찾아가게 된다. 여인이 살고 있는 집은 도시의 한복판에 지어진 커다란 성이었고 그 여인의 옆에는 남자가 앉아 있었으나 여자를 알아보지 못했다. 여자는 눈의 여인에게 남자를 돌려달라며 애원하는데...   

이 이야기를 소개하던 중 이야기를 듣던 정유란과 황유식은 각자의 입장에서 흥미를 느끼고 욕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이야기를 변형시켜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은 작품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변질되어 가는데....

 

 

 

 

 

무대는 배경 막에서 1.5m 간격으로 아치형의 문이 세워져 벽과 연결이 되고, 그 사이는 통로나, 등퇴장 로, 또는 무대로 사용된다. 아치형의 문은 양쪽으로 개폐가 가능하고 평소에는 열려있다. 아치형 정면 배경 막에 영상을 투사해 동영상을 객석에서 관람할 수도 있고, 실크망사로 가려진 안쪽에 좌정한 <눈의 여인>의 모습이 보일 때에는 그 신비하고 우아한 자태에 관객은 넋이 나가기도 한다. 무대중앙에는 테이블과 의자용도의 조형물이 놓여 있고, 테이블이 필요한 장면마다, 배우들이 운반을 해 들여다 놓고, 또 내어가기도 한다. 밝은 회색의 벽면은 무대를 산뜻하고 깨끗한 건물의 내부로 연상시키고, 대단원에서 배경 막에 투영된 흑백의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형 창이 달린 건물 위로 퍼붓듯 내리는 함박눈의 영상은 관객의 뇌리에 각인되는 명장면이었다.

 

 

 

 

 

연극은 도입에 흑색착의(黑色着衣)의 한 여가수가 등장해 속삭이듯 노래하며 그 체취를 객석까지 흩날리고 퇴장하면, 곧바로 젊은 작가의 거처로 장면전환이 이루어진다. 미남이자 매력적인 젊은 작가와 그를 찾아온 흑색착의의 미녀 여가수와의 대화를 통해, 두 사람은 오랜 지기이며, 여가수는 이혼녀이고, 작가는 새 작품의 주인공으로 여가수를 초청한 사연이 소개된다. 여가수를 뒤따라 등장한 남성은 영화감독이자, 작가와는 절친한 친구이고, 여가수와는 결혼을 약속한 사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좋아하는 여가수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쓴 작가와 결혼을 앞둔 영화감독과의 라이발 의식이 부각되면서, 작가의 작품 설명에 2인은 자신들의 의견을 덧붙이기도 한다.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에서 주제를 택했다는 작가는, 작품설명과 함께 작가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면, 전원(田園)을 달리는 소년의 영상이 배경 막에 투영되고, 소년이 무대로 등장하면, 뒤따라 예쁜 소녀가 들어와 극중극 장면을 연기한다. 두 소년소녀가 사라지면, 작가를 찾는 또 한명의 여인이 등장 한다. 그 여인은 극중극에 등장한 예쁜 소녀의 모습 그대로이다. 향후 연극은 네 사람의 미묘한 사랑다툼이 마치 연극의 내용인 듯 전개된다. 4인은 덧붙여 나름대로의 극의 방향을 제시하게 되고, 작품은 작가의 의도인, 사랑하는 남성을 위해서만 노래를 부르던 여인이, 사라진 남성을 찾기 위해, 가수가 되어 방방곡곡을 헤맨다는 내용과는 다른 내용으로, 본궤도를 이탈하게 되니, 작가는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그리고 동화 <눈의 여왕>에서 마술에 걸린 소년처럼, 상상 속의 <눈의 여인>을 떠 올린다. 무대에는 긴 백발을 늘어뜨린 백색착의의 <눈의 여인>이 옥좌에 앉아 흐르듯 등장하기도 한다. 향후 연주음에 맞춰 여가수는 노래를 부르고, 역시 연주음과 함께 꿈처럼 환상처럼 1인의 무희가 등장해, 발군의 기량으로 독무를 펼친다. 그러나 각자의 의견충돌은 혼란만을 야기 시키고, 감독의 권고대로 소녀모습의 가수지망생이 학원에서 받는 수업장면과, 유들유들한 학원장의 치근거리는 모습이 관객의 폭소를 자아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작금의 가수지망생이나, 배우지망생이 공연기획자나 감독, 기타 관계자들로부터 끊임없이 성욕의 노리개 감으로 강요받는 현 세태를, 관객에 게 고발하듯 보여주기도 한다.

 

대단원에서 4인의 의견은 마치 작금의 남북과 동서의 대립상태처럼 화합을 이루지 못하고 파탄(破綻)을 초래해, 작가는 자신의 머리에 권총을 발사하는 상상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실제로 예쁜 소녀모습의 가수지망생이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내용으로 마무리가 되니, 작가는 자신의 원고를 조각조각 찢어버린다. 찢어진 원고를 하늘높이 던지는 모습과, 배경 막에 투사된 고풍어린 건물영상위로 퍼붓듯 내리는 함박눈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관객의 뇌리에 명장면으로 깊이 각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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