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노경식 '찬란한 슬픔'

clint 2016. 10. 28. 16:50

 

 

<찬란한 슬픔>은 80년 광주민중항쟁을 다룬 연극이다. 5·18을 직접 묘사하는 대신 진압군의 신분으로 광주에 있었던 한 전역군인의 트라우마(심각한 정신적 상처)를 통해 인간의 몸과 영혼까지 파괴해버리는 국가폭력의 반인간성을 고발한다. 그렇다고 관객의 감성에 직접 호소하지는 않는다. “나는 아무런 잘못도, 책임도 없다”고 거듭 주장하던 정 하사의 진실이 드러나는 후반부의 반전이 충격적이다. 왜 아직도 5·18 타령이냐는 물음이 나올 법도 하다. 그 이유는 시인 김영랑이 일제 강점기에 쓴 `모란이 피기까지는’(1934년)의 마지막 구절에서 따온 제목이 넌지시 일러준다.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1980년 5월, 한 작은 도시 광주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꺼내어 보기로 한다. 참혹한 살상의 장면을 끄집어 내고 어떤 주장을 일깨워 보는 역사의 되새김질이 아니다. 그 거리의 이쪽에 있었던지, 혹은 저쪽에 서있던지 아무런 관계없이 그들은 지금 모두 거리로 쏟아져 나와 대형전광판을 보고 똑같은 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연호하고 있다.

5월 광주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그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금도 아물지 못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한 가족은 만난다. 더 이상 알고 싶어하지 않고, 알리려는 이도 없지만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일이 있은 지 10년, 많은 이들이 어렴풋이 기억하는 그 사건은 김원장의 가족에게는 잊을 수 없는 아픔이다. 아들을 잃은 아픔과 분노를 간직한 김원장에게 계엄군 출신인 정하사가 찾아온다. 그 사건이 있던 날 부상당한 시민군을 데리고 병원으로 찾아온 인연으로 김원장은 폐인처럼 변해버린 정하사를 받아들인다. 병원에서 기거하는 정하사의 행동은 날이 갈수록 의문투성이이다. 밤마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못질과 정신이상으로 보이는 불안과 초초... 정하사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그날의 상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찬란한 슬픔’은 1980년 5월 광주의 역사를 소재로 하고 있다. 군부세력이 총과 탱크로 광주를 휩쓸고 지나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비참하게 죽어간 광주 금남로. 10년이 흐른 뒤 아픔을 가슴에 담은 채 살아가던 남겨진 가족은 우연히 계엄군을 다시 만나게 된다. ‘찬란한 슬픔’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만남을 통해 서로의 입장을 들어봄으로써 화해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작가의 글 - 노경식. 
'찬란하고 신명나는 굿판을 위하여'

'---- 그리고 도청 앞 금남로에서 다시 만났다. 금남로에는 참으로 오랜만에 "그 때 그만큼의" 인파가 모여 있 었다. 낯익은 인파였다. 1980년 5월의 함성과 1987년 6월의 열기가 되살아난 듯했다. 가슴을 벅차게 했 다. 옛 그리움들이 되살아났다. 다시 대동세상을 이루었기 때문일까. 금남로 1~5가, 그리고 그 주변의 광주천과 중앙로까지 꽉 채운 군중들. 그들은 축포를 쏘아올리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20여 년 전 바로 이곳에서 숨져간 열사들의 동생과 아들과 딸들. 그들은 밤늦게까지 신명나는 굿판을 열었다.' 이 글은 엊그제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졌던, 소위 무적함대라 불리는 강호 스페인팀과의 8강전에서 우리 태극전사들이 이른바 "4强神話"를 창조하고 나서, 이를 자축하는 시민 학생들의 흥겨운 光州시내 거리 모습을 감동적으로 묘사한 이태호씨(미술평론가, 전남대 교수)의 觀戰記 한 토막을 어느 신문에서 옮긴 것이다. 잘 아시다시피, 그것은 스페인과의 연장전까지 가는 120분간의 혈투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승부차기의 마지막 선수 홍명 보의 멋진 슛이 골대 그물을 출렁이게 함으로써 마침내 얻어낸 값진 승리였다. 나 또한 TV를 통해, 바로 20여 년 전의 그 비극의 광장과 통곡의 거리 곳곳이 그처럼 환희와 축복과 열광의 도가니로 바뀌는 장엄한 모습을 지 켜보면서 콧날이 찡하는 감동을 아니 느낄 수가 없었다. 그 슬프고 절망적이었던 시절엔, 이처럼 아름답고 "찬 란한 광경과 신명나는 대동(공동체)굿판이 훗날을 기약하리라고, 뉘라서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었으랴! 21세기 우리 역사의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이다. 그래서 불의와 폭력은 반드시 광정돼야 하고, 시대와 역사는 음지 아닌 양지로 발전하는 것이며, 모든 선과 정의는 기필코 승리하는 것 아닌가. "대~한민국, 짝짝 짝짝짝!" "오~ 필승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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