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기국서 '리어의 역(役, 逆)'

clint 2016. 10. 28. 16:19

 

 

 

 

 

무대는 극장 지하의 1실로 설정이 되고, 정면 중앙에 지하 방으로 내려오는 통로와 계단이 있다. 방 양쪽에 백색의 주름진 문양의 기둥이 서있고, 객석에서 바라보는 통로 왼쪽에 장서가 꽂힌 책장이 있다. 그 옆으로 낮은 장과 그 위에 놓인 축음기가 보이고, 그 옆에는 클래식 레코드판이 잔뜩 꽂힌 낮은 장이 있다. 왼쪽 벽 중앙에는 붉은 휘장을 늘어뜨린 통로가 있다. 무대 오른쪽 정면에는 냉장고와 낮은 장식장이 나란히 놓이고 장식물이 올려져있다. 무대 중앙에는 긴 안락의자와 고풍스런 나무의자가 나란히 놓여있다. 오른쪽 벽 객석 가까운 자리에는 등받이 없는 의자가 놓여있다. 장면전환은 조면의 암전으로 이루어지고, 낮은 박수소리와 대사 읊는 소리로 위층 공연장에서의 극의 진행상황이 전해진다.

 

 

 

 

 

<리어의 역()>은 평생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역을 해온 명배우가 자신의 전용극장을 건립하고, 그 리어왕 역을 계속한다. 노년에 이르자 기억력 저하와 치매증세가 나타나, 리어왕 역을 다른 배우에게 연기하도록 하고, 자신은 극장 지하의 1실에서 기거를 하며, 과거 리어왕을 열연하던 때의 명대사를 읊어보기도 하고, 치매환자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혼자 지껄이기를 계속한다. 이러한 치매 증세가 차츰 심하게 나타나니, 명배우는 극장 지하에서 떠나지를 못하고, 유폐된 것 같은 생활을 하게 된다. 과거 연극 리어왕에서 광대로 출연했던 배우가 자주 들러 이 명배우의 동태를 살피고, 그의 화려했던 과거를 떠올리도록 만든다. 리어는 광대 역의 배우를 통해 가끔 과거를 떠올리기도 한다. 그러면서 위층 극장에서 공연되는 리어왕의 도입부터 대단원까지를 음향을 통해 감지하며 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 명배우에게는 3인의 여식이 있는 것으로 설정된다. 세 자매 모두 결혼을 했고, 막내는 이 극장에서 리어왕의 막내 딸 코디리어 역으로 출연을 하는 여배우다. 장면이 바뀌면 큰딸과 둘째 딸이 아버지인 명배우를 찾아온다. 찾아 온 목적은 노년의 부친이 더 이상 치매증세가 심해져 기억력을 완전히 상실하기 전에, 재산 분배를 해달라고 찾아온 것이다. 큰 딸은 중년여인다운 체구와 미모로 나이든 남성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둘째딸은 젊음이 살짝 지나간 것 같은 모습이지만 여전히 미모와 매력을 발산하기에 젊은 남성의 시선을 일신에 집중시킨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으려는 자매들의 암투는 극 속에 주요장면으로 부각되고 이 연극에서도 관객의 흥미를 끌어들인다. 공연이 끝나게 되고 커튼콜만 남게 되었을 때, 지하에서 두 자매의 거친 다툼소리가 크게 들리니, 놀란 막내가 함께 출연한 남편과 지하로 내려온다. 막내의 등장에 일시 바른 정신이 되돌아온 명배우는 세 여식에게 골고루 재산을 분할해주기로 약속을 한다. 그리고 자신은 요양원으로 들어가겠노라 하며 선언을 하듯 외친 후 다시 기억상실상태로 돌아간 듯 중얼거리며 왼쪽 벽 붉은 휘장을 친 통로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노년에 이른 모든 아버지와 부친의 재산분배와 관련된 모든 자식들의 분쟁을 극 속에 적나라하게 그려낸 걸작연극이라 평하겠다.

 

 

 

 

 

연극 <리어의 역>에서는 셰익스피어의 비극에 등장하는 대사와 노배우의 현실이 중첩되는데 이는 연극적 장치가 아닌 노배우의 혼돈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사건이다. 마치 치매에 걸린 듯 보이는 이 모습은 이제는 예술에 미칠 수도, 예술과 함께 미쳐있을 수도, 미친 세상을 외면할 수도 없는 성숙한 어른의 절규와 같은 것이다.

 

 

 

 

 

기국서 작, 연출은 "사람들 마음 깊숙이 자리 잡은 무의식과 욕망,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는 언제나 연극의, 연극배우의 강렬한 표현욕구에 해당한다." "그것을 마땅히, 제대로 창조해내는 배우를 보게 된다면, 연출자로써는 무한한 긍지와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겠죠.”라고 연출 의도를 전했다.

 

 

 

 

기국서(1952~)는 배우 겸 연출가로 극단 76단의 대표다. 1970년대 <수업> <장남의 권리> <마지막 테이프> <관객모독> <순장>, 1980년대 <作家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 <기국서의 햄릿> <햄릿2>, <햄릿과 오레스테스> <햄릿 4> <햄릿 5> <> <임금 알> <바람 앞에 등을 들고> <일어나라 알버트> <방관 시리즈>, 1990년대 <지피 족> <미아리 텍사스> <맥베드> <목포의 눈물> <페밀리 바게트> <미친 리어> <作亂> 2000년대 : <길 떠나는 가족> 관객모독, <길 떠나는 가족> <나 하늘로 돌아가리> <로베르토 쥬코> <> <햄릿 삼양동 국화 옆에서> <관객모독> 20편을 연출했다. 수상경력으로는 서울 평론가 그룹 특별상 <기국서의 햄릿>, 서울 평론가 그룹 연출상 <관객모독>, 영희 연극상, 한국 예술가 협회 <오늘의 예술가상>, 2회 대한민국 셰익스피어 어워즈 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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