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후 독일 문학권이 배출한 세계적 명성의 극작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1953년 작. 사회주의 정책을 펴는 전제군주, 국영 젖소우유에 수입을 빼앗긴 당나귀우유상, 시인을 먹여 살리는 거지, 국가적 위기에도 교세 확장에 만족하는 신학자를 등장시켜, 권력, 부, 신앙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총 3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뒤렌마트는 법과 정의의 함수관계를 심도 있게 그려낸 작가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작품에서 현대사회의 실체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상호 모순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을 통해 인간의 문제를 예리하게 관찰해낸다. 섬뜩할 정도의 진지함과 상상을 뛰어넘는 심리적 반전을 마지막 순간에 준비하는 것도 그만의 특징이다.
<천사, 바빌론에 오다>는 브레히트의 대작 <사천의 선인>에 대한 패러디로 볼 수 있다. 브레히트의 해당 희곡이 선악을 따지는 것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쓸모없는지 드러냈다면, 그것을 패러디한 <천사, 바빌론에 오다>는 현대인이 자신의 존재 조건인 '보잘것없는 인간'을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 천사는 거지에게 신의 은총을 전하려 했지만 진짜 거지와의 동냥 대결에서 패한 ‘거지로 변장한’ 왕에게 은총을 전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진다. 오히려 거지는 가장 자유로운 존재로서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린다. 가장 보잘것없는 존재로 전락한 왕이 하늘의 은총을 거부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라는 국민들과 대립하면서 가장 보잘것없는 자에게 은총을 전하라는 신의 의지에 부합하는지를 둘러싸고 혼란이 일어난다. 뒤렌마트는 이처럼 전도된 상황을 통해 권력, 부, 신앙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프리드리히 뒤렌마트(F.Durrenmatt)는 베른 지방의 크놀 지방의 크놀핑겐에서 1921년 1월 5일 지방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베른과 츄리히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판서가, 도안가로 종종 일 했으나 1947년 완전히 문학으로 전향했다.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 '나의 희극<천사 바빌론에 오다>에 있어 극적인 장소를 탑의 도시를 택할 때 두가지 문제점을 해결햐야만 했다. 첫째로 이 희극의 두 장소를 무대상에 나타내는 점이었다. 즉 하늘과 바빌론이다. 하늘은 행위의 신비적인 출발점이 되고 바빌론은 그 행위와 연결되어지는 장소다. 그런데 하늘의 무한성을 나타내는데 있어 단순히 어두운 배경으로서 묘사할 수도 있겠으나 이
희극에선 하늘이 단지 무한성의 장소가 아니라 불가해한 것으로 다루었다. 나는 무대의 배경인 바빌론 위 하늘을 안드로메다 성좌의 거대한 그림으로 채워야 한다고 전제했다. 거다가 하늘 즉 그 불가해성과 신비성이 무대상에서 어떤 극적인 형태를 취할 것을 시도했다.
그로서 하늘이 땅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확실해지고 사건 진행과정에서 이런 방법으로 방문한다는 것을 잘 드러내게 된다.
이와 같이 하나의 세계가 구체화되며 그 세계에서 사건진행의 결과 바벨탑이 가능케 되는 것이다. 둘째로 이 작품이 진행되는 장소를 어떻게 무대를 통해 효과적으로 나타 낼 수 있는가를 고려해야 하는 점이다. 바빌론이 오늘날의 마천루를 가진 뉴욕과 같이 거대한 점이며 1막과 2막이 진행되는 유프라테스강변은 파리를 연상케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환상의 바빌론인 것이다. 그러므로 전형적인 바빌론의 시대상을 제세해야 하나 현대적인 풍자성을 나타내야 한다.' 뒤렌마트는 자기 작품을 상연함에 있어 극적인 장소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 주고 있다.
막마다 그는 무대에 대해 정확한 지시를 내린 것이다. 제일막은 궁형을 이룬 유프라테스강변위로는 무한한 하늘이 떠 있다. 제2막은 다리의 아치 밑에 거지 악키의 거처를 보여주며 3막은 이 제국의 냉혹하고 딱딱한 화려함의 의미를 주는 느부갓네살왕의 알현실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세 영역이 세 무대장면에서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 즉 멀고 불가해성의 하늘, 악키의 세계, 바빌론왕국. 우리는 이 세 장면분류를 통해 하늘과 은총의 문제, 바빌론왕가와 느부갓네살왕이 이룩하려는 완전한 국가, 악키의 세계인 다리밑과 악키의 교훈을 포착할 수 있다.

1.은총의 문제
하늘과 은총의 문제를 나타내기 위해 작가는 하늘이 무대상에 어떻게 묘사해야 됨을 상세히 작품속에 그리고 있다.
3막끝에 느부갓네살의 외침은 허공이 되어서는 안되며 바로 무대를 눌러 덮고 있는 무한하지만 가능성이 있는 무한성의 하늘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천사는 바로 이런 하늘에서 신의 은총을 지상의 가장 가난하고 불쌍한 인간에게 전해 주기 위해 내려오는 것이다. 천사는 자기 지도에 적혀 있는 유일한 거지 악키를 바로 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천사는 또 하나의 거지를 만나게 된다. 악키를 국가공무원으로 채용하려고 설득하러 나온 바빌론의 왕 느부갓네살이다. 천사는 당황한다. 누구에게 하늘의 은총인 예쁜 소녀를 줄 것인가? 이 두 거지가 내기를 하게 되는데 여기서 천사의 어려움은 형식적으로는 해결되는 것 같다. 왜냐하면 내기에서 지는 사람이 가장 불쌍한 인간이라고 천사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거지로 가장한 느부갓네살왕에게 소녀는 주어진다. 이제 천사는 하나의 오류를 범했고 소녀는 임자를 잘못 얻게 되는 것이다. 사건이 진행됨에 따라 소녀는 다시 악키에게 넘겨지고 결국 군중에 의해 소녀가 왕에 끌려와 아직도 자기가 사랑하는 거지를 찾게 되자 와은 소녀를 망나니에게 넘겨주니 다시 악키가 그녀를 얻게 된다. 그래서 악키는 소녀를 구해 함께 도망친다. 그러나 어째서 그 소녀는 악키를 사랑하지 않고 니느웨 거지를 사랑하는가? 그리고 악키가 과연 가장 비참한 인간일까? 악키만이 전 국가를 통해 자유를 누리는 유일한 사람이며 그는 돈과 재산이 충분하여 매일 강물에 던져 버리는 것이다. 그럼 도대체 누가 하늘의 은총인 이 소녀를 받아야 되는 것일까? 이 작품은 이 의문에 대해 아무런 해답도 주지 않는다. 하늘은 단지 불가해한 것, 완전히 이질적인 것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천사는 '소녀야, 너를 창조한 이의 손으로부터 생겨난 것을 우리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단다.' '하늘은 절대로 속이는 법이 없다. 단지 인간을 이해시키기에 어려움 뿐이니 때때로---'
신학자장(神學者長)은 '신은 우리 인간들에게 자기를 숨기신다.'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신학자장만은 위의 의문을 풀어 보려고 한다. '인간은 단지 자기들의 왕을 원하는 것이지 거지로서의 그가 축복 받은 것은 알지도 못한다.' 그는 또 느부갓네살에게 '당신은 하늘이 당신에게 속아서 어느날 당신을 거지라고 생각했다고 믿는데 그것은 우스운 일이오. 당신은 천사를 속일 수는 있었지만 천사를 보낸 하늘은 누구에게 천사가 자기의 은초을 주었는지 잘 알고 있는 것이오. 바로 당신 느부갓네살왕에게 준 것을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능할 뿐 아니라 전지 하기 때문입니다.'
왕은 이에 찬동하고 질서를 다시 찾게 되나 하늘의 은총인 소녀는 인간적인 생각에는 맞지 않고 이런 논쟁을 무서운 꿈으로만 생각한다. 이리하여 하늘의 은총은 왕에게서 처음에 버림받았던 것처럼 모든 인간에게서 거절당하게 된다. 인간은 인간의 질서를 파괴하는 이 어처구니 없는 소동을 원치 않는다. '일개 국가 즉 하나의 확고한 권위는 땅은 땅대로 하늘은 하늘대로 서로 유별해서 땅은 정치가들에게 의해 이루어지는 실제성을 나타내야 되며 하늘은 고상한 이론이 있어---' 결국 왕은 하늘의 은총을 받지 못한다. 그는 하나의 거대한 탑을 세우려 한다.
'구름을 꿰뚫고 나가 나의 원수의 심장에까지 치솟게 하리라.'

2. 완전한 국가
왕들은 서로 진정한 의미의 사회주의 국자를 이끌어 가려 한다. 왕은 굴욕을 당할 때는 언제나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완전을 위해 애쓰는 것이지 권력을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다.' 이런 국가에는 잉여인간이 있어서는 안된다. 투철한 조직 속에서 누구나 자기의 위치와 역할을 가져야 한다. 관료주의는 성장하여 조항의 수는 엄청나게 많아질 뿐이다. 폐하를 규정하는 법률조항 하나로부터 50만의 법률 조항이 나왔는데---!
순경은 말한다. '공무원으로서 나는 단지 복종만 하면 되는 것이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 악키가 이에 답하기를 '완전한 국가이면 일수록 멍청한 관리가 더 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국가에 있어서는 누가 통치를 하던, 어떤 경질이 있더라도 계속 유지되고 만다. 왕의 존재는 순전히 형식적인 것으로 국한된다. '왕은 전왕의 어깨위에 발을 올려 놓아야 됩니다.' 이런 익살은 물론 왕이 완전히 명목상에 지나지 않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머리를 바꿔 달수 있는 폐하의 동상에 돌을 던지고 있습니다.'
역사가나 지리학자들은 언제나 그들의 지식이나 경험을 정치적 상황에 적응시키려고 노력을 하게 된다.
시인들(예술가)은 이런 국가에서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시인들은 처형하라. 그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감정을 파급시키고 또한 의미없는 허구적인 이야기나 문장을 퍼트리는 놈들이다.' 느부갓네살왕은 이 작품의 끝에 이렇게 말한다. '나는 완전을 위해 애썼다. 나는 질서를 다시 이룩했고 가난을 극복했고 이성을 찾고자 했다. 그런데 하늘은 나를 경시하고 그래서 나는 그의 은총을 받지 못한 것이다.'

3. 악키의 교훈
악키의 거처는 유프라테스강 다리 밑이다. 여러가지 물건으로 뒤죽박죽이다. 석관, 흑인우상, 붉은 옥좌, 바빌론 자전거 등으로 뒤덮힌 잡동사니의 먼지산이다. 이곳에서 악키는 시인들과 강도, 소매치기, 문둥병자들과 기거한다. 악키는 아무 것도 가진게 없으나 또 매일 강물에 값진 보물을 집어 던진다. 그렇게 하므로써 악키는 세상을 부(富)에서 구하려는 것이다. 거지질의 의미를 그는 니느웨의 거지에게 설명해 준다. '우리 백성들의 인도자이며 숨은 선생이다. 인간들의 동정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어떤 법률에도 복종하지 않는 것이다. 철저한 배고픔을 나타내기 위해 늑대처럼 개걸스럽게 먹는 것이며 시간의 파멸과 함께 모든 것이 거지에게로 모여 든다는 것을 확실히 증명하기 위해 우리가 사는 다리밑을 멸망한 제국의 살림살이로 가득 채우는 것이다. 악키는 자기가 원하는데로 무슨 직업이던 마음데로 구걸할 수 있는 거지다. 그는 자유로운 예술가의 자리를 지키지 위해 공무원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는 여러번 죽음의 길을 빠져 나온다. 그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가지고 약자의 무기에 대해 읊는다. '세상을 알기 위해 약자는 세상을 인식해야 하오. 죽음으로 향하는 위험한 길을 방황하지 않기 위하여. 권력있는 자들은 힘이 있소. 이런 진실을 무시함은 권력있는 자들을 쫓아 노력함은 쓸데 없는 일이오.' 계속해서 그는 영웅적인 행동은 무의미한 것이라고 읊는다. 이는<로물루스 대제>의 로물루스와 비슷한 얘기다. 작가는 영웅적인 행동, 영웅을 그리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 개인이 영웅이라해도 현집단사회의 부정을 무너뜨릴 수 없기 때문이다. 악키는 로물루스와 같이 또는 미시시피의 결혼에 나오는 위베로에 백작처럼 이상주의도 이념도 없는 단지 어떻게 인간이 살아 나갈 것인가 가르칠 뿐이다. '인간은 모래와 같은 것 모래만이---. 어리석은 자의 자리에 머무르시오. 그리고 최후 심판의 날에 몰래 요세로 들어가---.' 악키는 자기자신을 가장 비천한 망나니로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시인들을 그리고 쿠루비를 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바벨탑의 암담한 조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결코 쓰러지지 않는 불굴에 대한 찬송으로 끝을 맺는 것이다.
이제 이 작품의 풍자성과 아이러니 그리고 언어와 문체에 대해 생각해 보면 작가는 이 작품에서 시성과 아울러 운율을 매우 중요시 하고 있다.
특히 천사의 송가와 악키의 운문체의 이야기는 더욱 심하다. 이점에 대해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바빌론에 온 천사가 막이 지남에 따라 점점 지상의 아름다움에 감동되어 그의 언어는 결국 송가로까지 변하게 된다. 거지 악키는 그의 생애를 운문체로 얘기한다. 아랍식의 산문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아랍식의 인물로, 말장난이나 말다툼, 동화적인 수법에서 오는 재미를 표현하는데 이에 적용시키려고 시도했다. 악키의 산문은 언어의 가능성이외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해서 악키란 인물은 응축되서 나타날 수 있다. 웃음과 열정사이의 변화는 아리스토판네스와 섹스피어에 속하는 형식이다.'
뒤덴마트에 있어 그 주된 형식은 아이러니다. 아이러니란 가면을 벗기면 나타나는 말의 뜻을 의미한다. 똑같이 말했는데 두가지 면으로 나타나는 것. 예를 들면 거지로 변장한 왕이 병졸들에게 자기가 왕이라고 말했을 때 병졸들은 그를 때려 눕히나 거지인 악키가 똑같은 말을 했을 때는 그들은 복종하게 된다. 또 다른 예를 들면 느부갓네살왕이 망나니에게 '믿을 수 있는 자는 이 제국에서 자비한 사람뿐이다.' 라고 말하나 실제로 그 망나니가면속에는 거지인 악키가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천사, 국무장관, 장군, 은행장등) 일개인의, 개성을 지닌 일반적인 인간이 아니라 하나의 유형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천사와 왕, 부유한 자와 거지가 무대에서 서로 만나는 것은 일종의 중세신비극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이런 것, 즉 관객의 호기심을 충족시킴이 작가의 수법이 아닌 것이다. 단지 유형을 등장시켜 가면 속의 인간을, 사건을, 이야기를 은밀히 찌르고 싶은 것이지 않을까. 그로테스크의 출현을 3막에서 제일 강하게 나타난다. 우스꽝스런 병신이 알현실을 이리저리 희죽거리며 뛰어다니고 술취한 시인들이 양고기 다리를 뜯으며 무대를 비틀거린다. 느부갓네살왕은 일막에서는 한 인간으로 나타나나 (약간 젊고 약간 나약하게) 3막에서는 님로트와 항상 붙어 있는 몽이 둘있는 인간이 되어 버린다. 국무장관이 국민봉기를 알렸을 때 그들은 똑같은 목소리로 동시에 말을 한다. 이것은 어떤 집권자도 이런 상황에서는 같은 입장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악키와 쿠루비만이 어떤 유형의 인물이 아닌 개성을 지닌 개인으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쿠루비는 절대적인 것을 원하기 때문에 권력의 제약을 알기 때문에 그것을 간파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쿠루비는 희생되는 자며 악키는 구제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 작가의말//F 뒤렌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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