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노신 '과객'

clint 2016. 5. 31. 16:56

 

 

 

 

 

노신의 작품 중 1925년 3월에 지어진 것으로 노인과 소녀 과객을 대화가 주된 내용을 이루는 戱劇 작품이다.
이 <과객>은 作者의 태도가 적극적인 것으로서 끊임없는 전진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作者가 느낀 피로와 고독 및 앞으로의 길에 대한 예측할 수 없는 불안과 정서를 심각하게 반영하고 있다.
이 과객은 약 30~40세 정도로서 수척하고 고달파 보이는 얼굴이기는 하나 꿋꿋한 표정이다. 깊숙이 가라앉은 눈, 검은 수염, 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해진 윗도리와 바지를 입고 있다. 맨발에 다 떨어진 신을 신고 있다. 옆구리에는 자루를 차고 자기 키 만큼 긴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있다.
그는 어느 날 황혼녘에 극히 황량한 지방에 온다. 이 곳 서쪽 끝은 무덤으로, 여기가 바로 과객이 가야할 방향이다. 이곳에는 약 70세의 노인과 어린 소녀만이 살고 있다. 이 노인도 원래는 이 길을 지나온 사람이나 지금은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여자 아이의 눈에는 나이가 어린 탓인지 앞에 있는 무덤은 보지 못하고 수많은 들백합과 들장미만 보일 뿐이다. 과객은 너무 지친 상태로 이곳에 도착하여 노인에게 물을 달라고 한다. 노인은 그에게 휴식을 취하거나 돌아가라고 권한다. 그는 여러 번 망설이다가 앞으로 전진 할 것을 결정한다. 앞에는 묘지 밖에 없고, 무덤 뒤에는 어떤 길이 있는지 걸음을 끝낼 수나 있을지 알지 못한다. 과객은 노인에게 물을 청하고, 그 물을 마시고 기력이 회복됨을 느낀다.
이 과객은 머리를 돌리지 않고 계속적인 전진을 결심한다. 그는 비록 다리를 다치고 피로가 겹쳐 휴식하기를 바라지만 그는 휴식을 취할 수 없다. 그것은 앞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있기 때문인데, 허나 그 소리는 분명하지 않다. 그는 오직 몽롱하고 불투명하고 공허함을 간직한 채 앞을 향해 길을 걷는 것이다. 그는 발이 다 헤져 상처투성이가 되고, 피를 너무 많이 흘려버린 현실에 절망 하지만, 곧 마음을 다잡고 서쪽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는 과객이 용감하게 전진 할 것을 노래하는 것으로서 舊社會로 돌아가는 것을 반대하는 反復辟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노인의 권유와 발바닥이 다 헤져 상처투성이가 된 아픔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야하는 서쪽으로 걸어가는 과객의 모습에서 구 중국을 타파하고 새로운 세계를 이루려는 선각자, 초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반면 내면에서는 여기서 쉬면서 안주하고픈 마음과 앞으로 나아가야하는 의무감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약한 한 인간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가 황무지로 발걸음을 떼자마자 그의 등 뒤로 차가운 밤기운이 뒤덮이는 모습은 과객의 어깨를 짓누르는 현실이 얼마나 무겁고 무서운 것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다. 하지만 그 이전<광인일기>의 광인이 결국에는 이 ‘밤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사람을 잡아먹는 사회로 편입되었던 것과는 달리<과객>에서의 과객은 힘들고 쉬고 싶지만 그럼에도 앞으로 걸어가는 모습에서 노신이 그 이전과는 달리 희망을 향한 태도가 조금 더 적극적이고 의지적으로 변한 것을 알 수 있다.
너무 걸어서 터져버린 발 그리고 거기서 흐르는 피... 하지만 원망을 한다거나 타인의 피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를 통해서 나그네는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 길을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물과 피는 ‘희생’과 ‘현실’의 관계를 형상화한 것으로 여겨진다. 현실을 흡수하여 희생을 하지만, 그 희생에 현실이 너무 많이 섞이게 되면 희석될 수밖에 없어짐을 보여준다.

 

 

 

그가 지나온 길은 어디에나 시비 거리, 지주들과 아부, 추방과 감금, 거짓 눈물이 넘쳐 나는 곳이다. 과객은 그러한 것들이 가득 차 있는 사회에 환멸을 느끼고 그곳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서쪽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다. 즉, 과객으로 하여금 길을 찾아 떠나게 만든 결정적인 변수는 그 이전 노신이 환등기 사건 등으로 겪었던, ‘인간의 마비된 영혼과 정신’이라 할 수 있다. 노신은 자신이 느꼈던 인간의 병들어 버린 영혼에 대한 좌절감이 없는 미래 사회에 대한 희망을 향해 과객을 걸어가도록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노신이 현실을 바라보는 비관적인 태도와, 그 절망적 현실을 넘어 그가 진정 이루려 했던 궁극적인 목표와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소녀의 호의를 고마워하면서도 끝내 거부하는 과객의 태도는 소녀가 과객의 등장에 기뻐하면서도 과객을 두려워하는 모순적인 태도와 함께 생각해 볼만한 문제다. 이 당시 좌익세력에 대한 탄압이 워낙 심해서 도움을 준 사람마저 큰 고통을 당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라는 등의 여러 가지 해석이 있으나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소녀의 호의가 과객이 서쪽으로 걸어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천 조각이 그에게 있어 매우 좋은 것임은 틀림없지만, 그에게는 맞지 않다. 하지만 묘지 아무데나 버려 둘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들백합, 들장미 위에 걸쳐 두어야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천 조각을 본문에서 말한 것처럼 과객이 힘들게 걸어 가는 모습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구경하는 자들의 거짓 눈물이라고 생각했으나, 들백합 들장미 위에 걸쳐 둔다는 구절은 오히려 희망을 떠올리게 했다. 어쩌면 미래 세대가 보내는 응원이라는 것이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이 보내는 박수에 불과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노인이 무거우면 그때 버리라고 한 말은 그것이 미래 세대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으로 다가와 현실과 더불어 그의 어깨를 짓눌러 더 이상 걸어가는 것에 대해 의지를 잃어버릴까 두려워 그러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노인이 무덤이라고 표현한 곳을 들백합과 들장미가 가득 핀 곳으로 인식하는 소녀를 통해서 새로운 세대의 희망적인 모습을 감지할 수 있다. 하지만 소녀가 과객의 등장을 반가워하면서도 그를 두려워하는 모습에서 노신이 희망에 대해 가지는 태도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노인은 구세대를 대변하는 인물로서 과객이 가리키는 서쪽에 대해 생명이 없는 묘지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희망의 부재를 느낄 수 있다. 자기도 한때 과객과 같은 길을 걸었으나, 가기를 포기하고 과객을 향해 끊임없이 쉬어가기를 권하는 그의 모습에서 예전에는 낡은 구 중국 사회를 타파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도록 노력했지만, 지금은 현실에 안주하며 이제는 과객처럼 새로운 선각자들을 비난하는 구 중국 사회의 지식인 모습 역시 떠올려 볼 수가 있을 것이다. 나그네가 가고자 하는 ‘서쪽’에 대해서 노인은 묘지라고 하고, 소녀는 들백합과 들장미가 피는 곳이라고 한다. 거기에 대해서 나그네는 그 두 가지를 모두 인정하고 있다. 결국 나그네가 가고자 하는 곳은 들백합과 들장미가 핀 묘지인 것이다. 이는 희망과 절망이 교묘하게 결합되어 있는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