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라스를 공유하는 한 쌍둥이 주택에 아버지와 딸(브라종과 알리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라아외와 율리스)이 각각 살고 있는 조용한 동네다. 오래 전부터 친구인 비슷한 연배의 두 중년과 그들의 자녀는 같이 식사를 하고 일상을 얘기하고 술도 같이 하며 며칠 전 죽은 개를 애도하며 지내고, 가끔 말다툼도 하고 도둑을 맞기도 하지만 서로 위로하며 같이 지내고 특히 자녀들이 서로 좋아해서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 같은 느낌이나 좀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브라종은 아내가 교통사고로 죽은 것으로 말하나 남편의 과실로 발생한 것으로 그 후 그는 운전대를 잡지 않을 정도로 트라우마가 있고 라아외는 부인과 이혼했다고 하지만 그의 깐깐한 성격에 불화로 이어진 것이다. 자녀들인 알리스는 한 부동산 회사의 사장비서로 일하나 월급과 일에 불만이어서 사장에게 경쟁회사로 가겠다고 했다가 잘리고 종합매장 판매원인 율리스는 한 돈 많은 여성 고객의 고급품 취미로 솔솔 실적이 오르나 결국 그 여자는 장물 조직의 보스로 돈을 물 쓰듯 한 것으로 밝혀진다. 특히 브라종의 감춰진 개인 금고에 있는 금괴를 이들에게 공개한 이후에 그날 브라종의 집에 도둑이 들어 세간들을 포함해 그 금고가 털린 것을 이 두 가족은 내면적으로 서로 불신이 커져간다. 결국 도둑들이 잡혔고 그 배후에 율리스와 거래를 한 여성고객이 있다는 것이 밝혀져 더욱 틀어지게 된다. 결국 율리스와 알리스는 각각 일을 그만두고 레스토랑을 차리느니 하다가 포장마차(이동식 간이식당)을 하게 된다. 그리고 브라종과 라아외는 같이 동업으로 중고 가구를 보수나 리모델링하는 일을 하는데.... 한 오래된 가구에서 비밀서랍을 발견하여 열어본 결과 금괴가 나온다....

이웃이란 친구도 되고 가족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좋을 땐 한 없이 좋으면서도 은근한 비교, 경쟁심, 자녀 관계, 불신 등이 상존하고 특히 서로의 불만이 터지면 걷잡을 수 없이 터지는데 그건 그들의 오랜 관계로 모든 것을 서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수다를 떠는 중년 두 사람의 대화를 그냥 흘려들어선 안 된다. 다 이 작품의 스토리와 연결되듯 디테일마저도 세심하게 처리한 작가의 장인 정신이 엿보인다. 결국 피상적으로는 안정적이지만 불안정한 인간들의 삶을 일상 극에 녹여낸 작품이다.
아직 한국에서는 공연되지 않은 이 작품으로 작가는 1986년 현존 최고의 상인 입센 상을 수상한다.

미셸 비나베르
프랑스 일상극의 선구자이며 대표 작가이다. 현재 빠리 제3대학 연극연구원에서 극작법을 강의하는 교수이자 극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첫 희곡 『한국 사람들』로 프랑스 공연비평가 상을 받은 바 있다. 그는 1927년 파리, 유태계의 고미술상을 하는 아버지와 변호사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했다. 먼저 소설로 글쓰기를 시작하였지만, 1956년에 공연된 『한국인들(Les coreens)』로 일약 극작가의 명성을 얻었다. 다국적 거대 기업인 질레트(Gillette)의 고위 관리이기도 했으며, 초기 작품은 전반적으로 부조리극과 브레히트의 서사극적인 경향을 보였다. 1959년에 쓴 작품 『이피게니아 호텔(Iphigenie Hotel)』 이후로는 기업 활동에 전력하기 위해 10년 동안 극작 활동을 멈추기도 했다. 그러나 1969년부터 다시 쓰기 시작한 『구직(la Demande d'emploi)』, 『일과 나날(les Travaux et les Jours)』, 『등을 땅바닥에(A la renverse)』 등에서는 치열한 인간관계에 초점을 맞춘 작품을 보여주며, 일상극의 경향을 나타내게 되었다. 1986년 『이웃들(les Voisins)』로 극작가로서 최고의 명예라고 할 수 있는 입센(Ibsen)상을 받았다. 희곡 작품으로는 『한국사람들』『문지기들』『구두장수의 축제』『호텔 이피제니』 『가장자리』 『구직』『이단자』『명백한 일』『니나』『그것은 별개의 것』『노동과 나날』『이웃들』등이 있으며, 소설 작품으로는 『라톰므』『기피자』와 『연극론』『비나베르 전집』등이 있다.

비나베르의 글을 이해하는 방식 가운데 하나는 그의 글을 회화와 비교하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비교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심지어 글쓰기 보다는 단순히 형태, 색조, 리듬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 미술이나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거라고 회고하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사람들, 생각, 상황 그 자체를 다루기보다는 사람들과 생각들 그리고 상황들 사이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브라크가 자신의 그림에서는 오브제들이 그것을 분리시키는 공간보다는 덜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비교는 정확하면서도 매우 유용하다. 왜냐하면 다면적인 관점을 지닌 연극의 두드러진 기호가 바로 스타일의 불연속성과 모순이기 때문이다(비나베르의 희곡들은 이것이 완벽하게 성공한 사례다). 피카소, 브라크, 조이스, 엘리엇 그리고 모든 화가들, 모더니스트계열의 시인과 소설가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비나베르의 파편화된 비전은 성명서면서 동시에 형식적인 수법이다. 여기서 두 가지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통일되고 일관된 세계관에 도달하는 데서의 불가능성과 의미의 복수성(단일성이 아닌)이 그것이다. 이러한 다면적 관점의 연극이 아주 늦게, 아주 실험적으로 무대에 올려졌다고 해서 놀라운 일은 아니다. 연극 체험은 즉각적이어서, 쉽게 중단될 수도, 그림이나 시 혹은 소설처럼 거리를 유지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비나베르는 파편화된 비전의 문제에 대한 즉각적인 경험과 자의식적인 숙고를 혼합할 수 있는 수단을 찾고 싶어 했다. 그는 전통적인 줄거리의 선조적인 형태는 어떤 방식으로든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자리에 새로운 무언가를 위치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그 어떤 것이 그에게는 인간관계라는 재료, 언어의 구조였다

'외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앙리 부로쉐 '새벽의 죽음' (1) | 2016.05.31 |
|---|---|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배제된 현재' (1) | 2016.05.30 |
| 박근형 재창작 '오델로 피는 나지만 죽지 않는다' (1) | 2016.05.28 |
| 빅토르 위고 작, 국민성 재구성 '쟈베르 & 쟈베르' (1) | 2016.05.28 |
| 사무엘 베케트 '말과 음악' (1) | 2016.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