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전야제'

clint 2016. 5. 24. 17:17

 

 

 

 

 

 

무대의 배경은 프란츠라는 이름의 대학생이 사는 방이다. 프란츠는 그의 연인 미치 (등장인물 소개에선 '마리'라고 되어있었지만 대사와 지문 상에선 계속 '미치'로 불린다), 그리고 두 커플 친구들을 데리고 막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파티나 축제에 다녀온 듯 잔뜩 흥분한 상태이며 술 한 잔을 더 할 생각에 신이 나있다. 방 안에는 이상한 냄새가 감돌지만 모두는 거기에 오랫동안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그저 성냥으로 불을 켜려고 애쓰고, 술을 마시려고 안달하고, 어둠을 틈과 연인과 키스할 생각뿐이다. 마지막 성냥이 불발로 돌아가 어둠은 계속 된다. 프란츠는 여행에서 돌아오지 않는 노모를 걱정하고, 친구 율리우스는 사방으로 냉소를 터트리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애쓴다. 또 다른 친구 막스와 그의 연인 베르타는 남들이 초에 불을 붙이든 말든 상관하지 않은 채 어둠 속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사랑을 속삭이느라 정신이 없다. 어둠이 주는 묘한 해방감 속에서 여섯 친구는 점점 더 요란스러워지고, 흥분은 고조된다. 그러다가 모두는 곤히 자고 있는 하녀를 깨워 등잔을 찾아오게 만들자고 합의한다. 짓궂은 그들의 장난에 부엌 침대에서 자고 있던 하녀는 잠에서 깨어나고, 주인의 요구대로 등잔을 찾아 들어온다. 그러자 마침내 방안에 감돌던 냄새의 정체가 밝혀진다. 관객석 앞쪽에 등을 지고 놓여 있던 안락의자에 프란츠의 어머니가 죽은 채 앉아 있던 것이다.

 

 

 

 

전야제는 두 가지 면에서 관객의 사랑을 받을 만하다. (또는 두 가지 면에서 실망하게 만들 수도 있다.) 첫째로 어둠이다. 배우는 어두운 방이 배경인 컴컴한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한다. 관객도 어둠 속에서 희끗희끗하게 보이는 인물들의 움직임과 세트의 어슴푸레한 윤곽, 그리고 소리에 집중해서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관객은 무대가 제대로 보이지 않아 불편해 지고 심지어 불쾌할 수도 있겠지만, 청각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둘째로 시간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릴케가 희곡의 주석에서 밝힌 대로 무대 위의 시간과 관객의 시간은 일치한다. 공연시간도 20~25분 정도로 짧고, 전개도 빠르다. 관객의 집중도가 떨어지기 전에 실시간으로 기승전결을 꿰뚫는 셈이다. 물론 길이가 짧고 열심히 연기하는 배우들과 눈도 못 마주치는 연극인만큼 이 한 편만 무대에 올리는 건 무리일 수 있다. 그러므로 옴니버스 식 구성 중간에 집어넣으면 보는 이의 이목을 사로잡고 분위기를 환기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연극적 장치만 매력적인 건 아니다. '전야제'의 묘미는 무엇보다 분위기의 반전에 있다. 젊고 생기 넘치는 남녀 여섯 명의 축제가 순식간에 비극의 현장으로 바뀌는 순간은 이 희곡의 주제가 잘 드러난 장면이다. 여섯 친구들은 ''을 대변하고, 방 안에 감도는 냄새와 어머니의 시신은 '죽음'을 뜻한다. 또 무대의 '어둠'은 언제 생명의 촛불이 끝날지 모른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의 모호함과 불확실성을 의미한다. 전야제는 사랑하고 걱정하고 남을 놀리고 웃고 떠들며 살아가는 와중에도 죽음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올 수 있음을, 하지만 삶에 취한 나머지 우리가 그 눅진한 냄새를 맡지 못할 수도 있음을 지적한다. 촛불을 켜는데 실패하고, 시신이 부패하는 냄새를 맡지만 농담으로 웃어넘기는 여섯 친구의 모습이 곧 죽음을 외면하려는 인간의 본성을 나타낸다. 하지만 그들과 관객 모두는, 마침내 하녀가 들고 나온 등불 앞에서 죽음이 바로 곁에 있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릴케도 주석에서 신경을 썼듯이 돌아가신 프란츠의 어머니가 앉아있는 안락의자는 관객석 바로 앞쪽에 뒤돌려 놓여 있다. 릴케는 관객들로 하여금 그곳에 누군가 앉아 있음을 처음부터 아는 상태로 극을 보게 하려 했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 관객들은 한 걸음 뒤에 앉아 방 안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고 축제를 즐기는 여섯 젊은이들을 바라보게 된다. 아니면 반대로 관객 역시 그곳에 무언가 있다고 의심은 할지언정, 확신은 못하는 불안감 속에서 끝까지 가게 만들려 했을 수도 있다. 이럴 때 여섯 친구들이 마지막 장에서 겪는 충격은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질 것이며, 마음 한 편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 와 감정을 환기하게 될 것이다. 둘 다 주제를 표현하는 덴 문제가 없겠지만 후자 쪽이 더 매력적인 연출이 되리라 생각된다.

 

삶과 죽음의 대비는 이 작품에서 더욱 극단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세 쌍의 젊은 남녀들은 어머니의 죽음을 미처 인식하지 못한 채 축제 분위기에 들떠 있지만 이미 관객은 어두운 무대 한구석에 누군가의 시체가 있음을 감지하고 시종일관 긴장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도록 구성되어 있는 이 작품은 어느 순간 닥치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