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베르나르 베르베르 '인간'

clint 2016. 5. 22. 12:34

 

 

 

『인간』은 프랑스에서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베르베르가 처음 시도한 <희곡 스타일의 소설>이다. 어딘가의 감옥에 갇힌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경이와 서스펜스에 가득 찬 2인극으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나 관습들을 유머러스하게 성찰하고 있다. 여러 소설들에서 보여주었던 기상천외한 외래적 시선을 통한<다르게 생각하기>의 발상이, 이 작품에서 새로운 형식을 통해 색다르게 변주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연극 무대에 올라 처음 막을 올린 뒤로 연일 객석이 가득 차는 대성공을 거두고 있으며 이 작품은, 베르베르 특유의 유머를 곁들인 친근한 어조로 우리를 환상과 사색의 공간으로 이끈다.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어딘가에 있는 감옥에 갇혀 있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해야하는 어려움을 넘어서서 인류의 미래가 걸린 중대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과연 인류는 살아남을 자격이 있는가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엿보기 심리를 가지고 있다. 특히, 현대인들은 자신의 모습은 숨긴 채 남의 사생활을 엿보고 싶어한다. 연예인 사생활을 궁금해하거나 미니홈피나 트위터 등을 통해 친구는 물론 불특정 다수의 사생활에 관심을 갖는 것 또한 엿보기 심리의 일종이다. 소설가 배르나르 베르베르의 유일한 희곡 [인간](연출 김동연)은 현대인들의 엿보기 심리를 툭툭 건드린다. 첫 장면부터 보이지 않는 유리 벽을 치는 연기를 함으로써 관객은 무대와 철저히 분리되고, 안심하고 그들을 엿볼 수 있다. 유리 벽 속에 갇힌 두 남녀의 행동들은 마치 ‘생방송 트루먼쇼’를 보는 기분을 들게 했고, 두 남녀를 엿보면서 사실 종속 보존이라는 거대한 의무보다는 ‘그래서 결국 둘이 자는 거야?’란 궁금증을 자극했다.

작품은 어둠 속에서 눈을 뜨자 영문도 모른 채 유리 벽 속에 갇힌 두 남녀를 등장시키며 시작한다. 과학자 라울과 호랑이조련사 사만타는 대화와 언쟁, 접촉 등을 통해 정보를 하나씩 얻어가던 중, 몇 가지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게 된다.
핵전쟁으로 지구는 멸망했고, 자신들은 외계인에 의해 애완동물로 사육 당하고 있으며, 즉 자신들이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간이라는 점이다. 라울과 사만타는 인류의 보존을 위해 재판까지 하게 된다. 인간의 파괴 속성을 들어 유죄를 주장하는 라울과 몇몇을 제외하고는 인간은 이타적 존재라며 무죄를 주장하는 사만타가 첨예하게 대립한다.
이야기는 독특하지만 사실 놀라울 정도는 아니다. SF영화나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 한번은 봄직한 설정이다. 게다 작품에는 두 명의 배우만 등장하고, 무대세트는 4개의 기둥과 쳇바퀴, 사다리뿐이다. 그럼에도 [인간]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2인극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호흡과 원작이 끝까지 잃지 않고 가져가는 유쾌함 때문이다.
[인간]은 재판의 결과보다는 논리를 끌고 가는 과정에서의 재미를 선사한다. 인간의 유죄와 무죄를 주장하는 근거들도 꽤나 설득적이다. 모의재판에서 판사, 검사, 증인, 배심원 등 1인 4역을 소화하는 전병욱의 연기는 ‘원조 멀티맨’답게 극을 코믹으로 이끌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기발한 상상력이 무대 위에서도 그 힘을 발휘했으며, 특별하게 꾸미지 않고, 배우들이 자유롭게 뛰어 놀 수 있는 장을 만들어놓은 연출력도 돋보였다.
[인간]은 엿보기 심리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남자와 여자 중 누가 먼저 변심을 하는지를 두고 원시적인 상태에서의 실험을 보여줬던 ‘논쟁’을 떠오르게 한다. 관음증을 기저에 둔 엿보기 심리가 인류의 생존에 관한 철학적 사유도 유쾌하게 만든 셈이다.
[인간]을 관람한 뒤 극장 밖을 나서면, 그때부터 작품이 던지는 진정한 질문에 고민하게 된다. ‘과연 인간은 살아 남을 자격이 있는가?’

 

 

 

 

역자의 말

 

인간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처음으로 발표한 희곡이다. 단편집 나무의 서문에서 아직 초고 상태에 있다고 말한 작품이 이렇게 완성되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굳이 희곡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소설로도 얼마든지 읽힐 수 있는 독특한 형식의 글이다. 실제로 프랑스의 독자들 가운데는 이 책을 소설로 읽은 사람이 많은 듯하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독자 서평들이 그 점을 말해 주고 있다. 속표지에 분명히 희곡이라고 나와 있는데도 이 소설은……> 하는 식으로 서평을 쓴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작가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더니, 그런 혼동을 아주 당연하고 바람직한 현상으로 여기고 있었다. 작가는 희곡의 통상적인 형식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소설로 읽힐 수 있는 길을 스스로 열어 놓은 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애초부터 무대에 올릴 것을 염두에 두고 쓰인 희곡이 분명하다. 사실 프랑스에서는 이미 연극으로 만들어져 많은 관객의 뜨거운 호응을 받고 있다. 200499, 파리의 코메디 바스티유극장에서 처음 막을 올린 뒤로 연일 객석이 가득 차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프랑스 언론의 연극 평도 좋은 편이다. 주제가 흥미롭고 대본이 훌륭하며 배우들의 연기가 좋다. [……〕 베르베르의 책을 읽을 때처럼 전혀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베르베르는 계층과 연령에 상관없이 모두가 즐길 수 있도록 글을 쓰는 재주가 있다. [……〕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연극이다. 베르베르는 반드시 쉽다고 볼 수 없는 것들을 쉽게 이야기할 줄 안다. 프랑스의 한 신문은 베르베르에게 아이디어 공장>이라는 별명을 붙인 바 있다. 아이디어가 풍부한 만큼 그것들을 발전시켜 예술 작품으로 만드는 방법도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섬광처럼 번득이기는 하나 길게 끌고 갈수 없는 아이디어로는 콩트나 단편 소설 같은 짧은 이야기를 짓는다. 과학적 토대가 탄탄하고 여러 가지 부수적인 아이디어와 유기적으로 결합될 수 있는 것으로는 장편 소설을 만든다. 어떤 착상이 떠오르기는 했으나

아직 꿈처럼 터무니없고 어렴풋할 때는 그림을 그린다. 아이디어가 선명한 어떤 이미지로 떠오를 때는 단편 영화를 만들고, 기상천외한 이야기에 이미지를 입히고 싶을 때는 만화의 시나리오를 씁니다. 베르베르는 자기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을 다양하게 지니고 있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그에게 늘 새로운 발상이 끊이지 않는 데는 우선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왕성해지는 호기심과 탐구열을 이유로 들 수 있다. 과학자 친구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자주 만나서 대회를 나누는 것도 그의 중요한 자산이다. 그는 아무리 황당무계한 생각이라도 기꺼이 경청해 주는 부모 밑에서 자란 덕에 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다. 자신의 정신을 속박하지 않는 이런 품성도 창의력의 든든한 바탕이 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의 상상 체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외래적 시선이라고 부르는 독특한 관점이다. 그의 문학은 인간에 관한 탐구로 귀결되지만. 인간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종종 인간 세상을 벗어난 곳에서 온다. 그가 인간 세상 밖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다. 첫 소설 개미에서 보여 준 것과 같은 무한소의 관점이 있는가 하면. 두 번째 소설 타나토노트등에서 제시하는 것과 같은

무한대의 관점도 있다. 이런 외래적 시선은 그가 줄기차게 강조해 온 다르게 생각하기의 중요한 바탕이고 베르베르 식 유머의 주된 원천이다.

 

 

 

희곡 인간역시 베르베르 특유의 그런 발상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여기에서는 외래적 시선 중에서도 특히 외계 생물의 시선을 차용하고 있다. 외계 생물의 존재를 상정하고 그들의 관점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일은 이 우주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자리를 성찰하는 데 아주 유용하다. 베르베르는 이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변주를 시도하고 있다. 이 희곡이 모두 그런 시도의 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