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은 수사'는 안톤 체호프의 1894년작 단편소설로 실험주의 연극의 대가 카마 긴카스의 혁신적인 무대연출로 놀랄 만큼 강한 집중력과 에너지가 흐르는 연극으로 재탄생했다. 지난 2000년 '검은 수사'가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공연되었을 당시, 연극팬들은 회당 겨우 수십여매로 제한되어 있는 티켓을 구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만 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던 것은 다름아닌 긴카스의 과감한 무대연출 때문이었다. 전설 속에 존재하는 '검은 수사'와 그에 얽힌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펼쳐내기 위해 긴카스는 정상적인 무대와 과반수의 객석을 포기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그리하여 그가 선택한 새로운 공간은 극장의 2층. 그는 객석2층의 발코니에 플랫폼을 덧붙여 심플하면서도 상징적인 무대를 창조해 냈는데, 이는 서울 공연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총3개 층으로 이루어진 LG아트센터의 1층과 3층 좌석은 모두 비워지고 객석2층 발코니에 장시간에 걸쳐 특수무대를 설치한 후 같은 층에 위치한 단 200여석의 좌석만이 관객들에게 개방된다. 관객들은 공연장에 들어서서 어둠 속에 떠있는 인상적인 무대와 무대 저편의 어둠 속으로 아득하게 펼쳐진 미지의 공간과 마주하게 되며, 바로 이 공간에서 돌풍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검은 수사의 신비로운 환영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검은 수사]는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의 단편 중 가장 신비롭고 서정적인 작품의 하나이다. 체홉 작품이 지니고 있는 삶에 대한 진지하고 예리한 통찰이, 신비하고 환상적인 분위기와 조금은 음울한 색조의 낭만성과 어우러져 나타난 독특하고 아름다운 작품이다.
그러나, 한 여름 밤 어디선가 들려오는 희미한 바이올린 선율과도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이 작품이 담고 있는 내용은 그리 만만치가 않다. 삶과 죽음의 경계, 천재와 범인의 경계,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방황하고 저항하는 한 인간의 모습이 우리의 가슴과 머리를 동시에 흔들기 때문이다. [검은 수사]의 주인공 코브린은 유명한 학자로, 연구와 저술활동에 지쳐 자신의 후원인이자 원예가인 페소츠키의, 넓고 아름다운 영지로 쉬러 온다. 어느날 밤 코브린은 알 수 없는 행복감에 빠져 정원을 산책하다가 전설 속의 '검은 수사'를 만나게 된다. 이 신비한 검은 수사와 함께 세상의 진리와 철학적 문제들을 마음껏 논하는 코브린. 그는 검은 수사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선택받은 천재임을 느끼고 누리며 자신한다. 동시에 그는 그곳에 머무는 동안 페소츠키의 딸 타냐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국 그녀와 결혼한다. 이제 모든 것은 코브린에게 있어 완벽하고 아름답고 평화롭다. 코브린은 삶의 최고의 순간에서 최고의 행복감을 맛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신들이 갑자기 화를 낸다면...?
우리는 이 극에서 자신의 영혼마저 파괴될 정도로 치열한 모습으로 그 경계에 서 있던 한 인간이, 자신 뿐 아니라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까지도 파멸시켜나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나는 건강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오. 나는 미쳤을지도 모르오. 그러나 나는 행복했단 말이오. 세상의 어떤 천재가 우유나 마시면서 하루에 두 시간만 일한단 말이오. 나는 선택된 자였소. 그러나 당신들이 나를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소!"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사나이, 선택받은 천재 코브린은 그렇게 삶을, 인간을 증오하며 피폐해지고 파멸해 가는 것이다.

세상은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아이러니와 모순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세상에 온몸을 부딪혀 가며 살아내야 한다는 것. 삶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 모습 때문이라는 것. 체홉의 인물들이 우리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바로 이같은 자각을 함께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검은 수사]를 무대에 올린 모스크바의 연출가 카마 긴카스 역시 그러한 우리 중의 하나이다. 이 극에서 [검은 수사]의 소설 텍스트는 네 명의 배우들에 의해서 '읽혀진다'. 이러한 방식은 이들을 상당히 독특한 입장에 서게 만드는데, 즉 그들은 자신들이 맡은 인물의 역할을 사는 동시에 그 역할에 대하여 코멘트하는 해설자의 입장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방법은 브레히트 이후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긴카스의 극에 있어 이같은 방법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이것이 단순히 서사적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처해있는 경계'에 대한, 혹은 '자아의 분열'에 대한 은유로서 사용되기 때문이다. 비단 '검은 수사'의 환영을 목도하는 코브린 뿐 아니라 극의 모든 인물들은 '산문적인 삶'과 '저 너머 환상(초월적인 삶)'의 경계에 있는 인물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완전히 자신일 수도 없고 완전히 자신에 대한 극복일 수도 없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경계에 선 인물들'인 것이다. 긴카스는 극의 무대공간 활용에 있어서도 이 미묘한 '경계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도입한다. 그는 [검은 수사]를 위하여 정상적인 무대와 객석 공간을 모두 비워 버리고 이층 발코니의 협소한 공간에 가설 무대를 만든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 크지않은 무대의 주변에 삼면으로 앉게 된다. 극 중 인물인 페소츠키가 평생을 일구어 온 정원은 무성한 공작새 깃털로써 간단하게, 그러나 그 주인인 페소츠키가 그에 대한 병적인 집착을 보일 만큼 아름답고, 동시에 기괴한 이미지는 조금도 잃지 않은 채 훌륭하게 표현된다. 한편 배우들은 관객의 좌우 뒤쪽으로부터 등퇴장함으로써 이러한 무대공간을 더욱 확장한다.

무대 공간의 확장과 공간의 '경계'에 대한 독특한 연출 개념은 검은 수사의 등퇴장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코브린의 환상과 신기루 속에서만 존재하는 인물 검은 수사는 어느 때는 아래 층 무대의 암흑 속에서 돌연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이층 발코니에서부터 그 아래의 칠흙같은 어둠 속으로 뛰어내려 사라지기도 하면서, 검은 수사라는 존재의 신비성을 강조한다. 즉, 이 극의 무대공간은 관객과 코브린 등이 존재하는 현실적이고 산문적인 층위의 이층 발코니라는 공간과, 어둠 속에 싸여 있는 미지의 바깥 공간 (실제적 의미로 말하면 아래 층에 있는 객석 공간과 비어 있어야 하는 무대)이라는 두 개의 다른 층위에 존재하는 공간으로 나뉘게 되는 것이다.

범인과 천재의 경계, 일상과 고귀함의 경계. 평범하고 건강하며 산문적인 삶의 경계를 뛰어 넘어 알 수 없는 미지, 저 어딘가에 당신이 찾는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이 비록 죽음의 미소라고 할지라도 당신은 그것을 향해 기꺼이 나아가겠는가. 특별하고 선택된 자가 되기 위하여, 비범함과 천재성을 갖기 위하여 당신은 기꺼이 일상적 삶을 포기할 수 있는가. 카마 긴카스는 경계를 넘는다는 것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이렇게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것이다. 삶은 우리에게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약속하는 듯 하다가는 다음 순간 이내 배신해 버리고 만다. 여기에 우리 삶의 냉정한 진실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그 삶과 운명에 맞서 포기없이 그것을 살아내고 이겨내려 하는 인간에 대한 작가의 따뜻하고 애틋한 시선을 또한 찾을 수 있다. 앞으로 뻗친, 코브린의 마지막 손짓에서, 지난 삶을 부르는 가냘프지만 힘있는 소리에서... '타냐!' 그래서 '인생은 아름답다!' 체홉에 의하면....

줄거리
모스크바에 살고있는 30대의 젊은 학자 코브린은 연구와 저술활동에 지쳐 휴식을 권고받는다. 마침 그에게 고향마을에 살고있는 타냐 페소츠키로부터 초청의 편지가 날아온다. 타냐의 아버지 이고르 페소츠키는 코브린의 후견인으로그를 매우 아끼고 있으며, 뛰어난 원예가로서 평생동안 일구어온 아름다운 정원을 삶의 목표로 여기고 있다. 코브린은아름다운 그들의 영지에서 여름을 보낸다.
어느 날 밤 코브린은 산책을 하다가 천 년 만에 나타난다는 전설 속의 '검은 수사'를 보게된다. 수사는 그에게 그 자신이 신에 의해 선택된 천재라는 확신을 심어주고, 그와 함께 불가사의하고 철학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논한다. 수사와의 이러한 만남으로 코브린은 희망과 확신에 넘치게 되고 그런 가운데 타냐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하게 된다. 결혼 후 모스크바로 돌아온 코브린은 수사와 더욱 자주 만나게 되고, 자신에게 끊임없는 영감과 지극한 행복감이흘러넘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타냐와 페소츠키는 자주 허공을 향해 중얼거리는 코브린의 행동에 불안해하고 결국 의사의 치료를 받도록 한다. 그는 담배와 술을 금하고 많은 양의 우유와 규칙적인 산책, 충분한 수면을 취하도록 권하여진다. 그러나 치료를 받음에 따라 그 앞에는 더 이상 수사가 나타나지 않게 된다. 자신이 단지 범인(凡人)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끼게 된 그는 결국 절망에 빠지고 점점 신경질적으로 변해간다. 그의 이러한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타냐와 페소츠키. 코브린은 급기야 이들에 대해 증오의 감정을 품게 된다.
세월이 흘러 코브린의 곁에는 이미 다른 여자가 있다. 목에서 피를 토하기 시작한 그는 치료차 남부지방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이제 체념 끝에 평온한 삶을 보내길 원하는 그에게 어느날 타냐의 편지가 날아온다. 편지에서타냐는 아버지가 죽은 사실과 그 원인은 전적으로 코브린에게 있으며 자신은 그를 말할 수 없을 만큼 증오하고 있다는것, 한 때는 그를 천재라고 생각했으나 결국은 아니었으며, 그저 미친 사람에 불과했다고 얘기한다. 그 날 밤 코브린은잠을 이루지 못하고 발코니로 나간다. 그 때 회오리 바람이 불면서 눈 앞에 다시 검은 수사가 나타난다.
"당신은왜 나를 믿지 않았는가? 그렇지 않았다면 모든 것은 달라졌을 텐데…"
코브린에게 손을 내미는 검은 수사, 그의 손을 잡는 코브린.
다음날 아침 그는 얼굴에 지고한 행복의 미소를 띄운 채 죽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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