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니나 사두르 '이상한 여자'

clint 2016. 5. 12. 14:32

 

 

 

 

 

 

등장하는 인물은 주인공 리디아 페트로브나와 그녀가 길에서 만난 한 여자이다.
황량하고 광대한 10월의 러시아 국영감자농장에서 감자수확에 동원된 리디아가

길을 잃고 헤매다가 이상한 여자와 우연히 만나게 되고 그녀와 대화를 나누다가

헤어지는 것이 전부이다. 이처럼 극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줄거리로만 본다면 극은 매우 현실적이다. 주인공은 길을 잃을 수도 있고,

길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에서 리디아가 이상한 여자와 나누는 대화의 내용이나 그 대화를 둘러싼

정황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극을 현실로만 받아들이기에는 극의 분위기나

이상한 여자의 존재가 낯설고, 극을 환상으로만 받아들이기에는 리디아라는 인물은

매우 현실적인 토대 위에 서 있다. 극은 그만큼 현실과 환상의 어느 한 쪽으로 구분 짓기

어렵고, 이를테면 현실과 환상의 모호한 경계에 서있다고 할 수 있다.
극을 지켜보면서 관객은 수수께끼 같은 대화의 내용을 들으면서 혼란에 빠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극에서 리디아가 실제로 그러하듯 등장인물인 ‘이상한 여자’의 존재와

그 이상함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그녀는 과연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가?

리디아와 이상한 여자가 나눈 대화는 어떤 함의를 가지는가?

극은 과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이 극의 재미는 이처럼 끊임없이 생겨나는 다양한 의문들과

이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의 가능성에 있다.

 

 

 

극에서 이상한 여자의 존재는 우선 리디아가 추위에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보는 환각이나 환영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녀는 리디아가 만난 죽음의 신으로 러시아의 혹독한 자연과 추위가 인간의 모습으로 화신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극은 주인공이 죽음의 시련을 겪는 과정과 그 시련을 극복하고 현실로 돌아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극에서 리디아가 겪는 시련은 악마적인 혹한이 인간의 모습으로 형상화된 이상한 여자와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표현된다. 따라서 극은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주인공이 겪는 환상을 그린다. 또는 극의 대사가 언급하듯 이 모두가 하나의 꿈일 수도 있겠다. 여자가 죽음의 신이라는 해석의 근거로 니나 사두르가 그 계보를 잇고 있다고 평가되는 러시아 환상소설 작가 고골의 소설<외투>에 대한 다음의 해설을 인용해보자. “이 작품에서 혹한이라는 자연 현상은 소설이 시작될 때 지배적이던 단조롭고 정태적이며 평화로운 일상을 깨뜨리는 플롯 장치로 역할하면서 초자연적인 힘으로 나타난다. 자연이야말로 악마적인 힘이다. 혹한은 주인공에게 최대의 강적이며 궁극적으로 그를 불행하게 만드는 직접적인 요인으로 등장한다. [...]도시의 악마적인 추위는 현실인 동시에 환상이다. 사실 고골의 자연관은 민담을 기초로 하고 있다. 러시아 민담에서 겨울의 혹한, 매서운 바람, 눈보라와 폭풍은 악마의 영혼으로 나타난다.”(『뻬쩨르부르그 이야기』, 세계문학전집 68, 고골-코, 외투, 광인일기, 초상화, 네프스끼 거리, 조주관 역, 민음사, p.301)
아울러 극중 리디아의 대사 “난 네가 누군지 알아. 넌 뭔가 자연적인 현상이지. [...] 넌 진짜 사람이 아니야.” 또는 이상한 여자의 대사 “난 - 세계의 악이야. 난 인간들을 먹고, 그리고 즐거워하지”에 유의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상한 여자의 이름인 우비엔코가 ‘살인, 죽은 자’를 뜻한다는 것도 그 근거가 된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글에서도 같은 맥락의 논지를 읽을 수 있다. “이들 그늘 속의 극작가들(니나 사두르, 코리아다)은 독자적으로 작업하는데, 이들은 모두 원초적인 힘의 정당한 회귀와 자연의 과격함에 대해서 언급한다. 인간들이 자연을 망각했을 때 자연은 그들에게 복수를 가한다는 것이다.”(“현대 러시아 연극의 상황”, 비르지니 뿌아트라쏭, 『동구에 대한 시선』, 1999년 9월-10월, 17호)
그렇다면 니나 사두르는 러시아 민담의 형상을 그대로 답습하기 위해서 이 극을 썼을까? 부분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이상하게도 이 극에 등장하는, ‘죽음’을 표상하는 ‘이상한 여자’는 리디아를 죽음으로 데려가지 않으며 오히려 그녀는 리디아를 죽음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그곳에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극의 흐름을 지켜보다보면 죽음을 극복하는 것은 리디아의 의지라기보다는 ‘이상한 여자’의 선의인 것처럼 여겨질 정도이다. 인간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자연(상징의 숲)을 노래한 보들레르가 연상된다. 이런 아이러니를 합리화하는 것은 오히려 ‘이상한 여자’이며, 그녀는 리디아가 마지막 남은 유일한 사람이어서 자신의 존재를 위해서라도 살려두겠다는 이유를 든다.
여자 : 난 너 없이는 안 돼. 다른 이들은 다 죽었어. 네가 죽으면, 나도 죽어. 난 - 세계의 악이야. 난 인간들을 먹고, 그리고 즐거워하지, 그러나 다 먹으면 나도 죽지. 그래, 이게 나야. 넌 마지막으로 남은 거야. 난 너를 아낄 거야. 조금씩 먹을 거야. 사는 거야! 괜찮아! 여긴 광활하고! 밝고!
여기에서 여자가 언급하는 죽음은 육체적 죽음이 아닌 비존재의 차원이다. 살아있는 너희 인간들의 존재가 없다면 죽음인 나의 존재도 의미가 없다는 뜻으로 죽음은 인간을 죽게 하지만 사실상 인간이 없이는 죽음도 의미가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죽음을 의인화하는 초자연적 존재인 이상한 여자는 스스로를 세계의 악이라고 자처하지만 정작 리디아를 삶으로 되돌려 보낸다. 이상한 여자를 혹한이 인간화된 악마의 형상이라고만 한정짓는다면 그저 예전의 민담의 반복에 그칠 것이다. 극에 나오는 이상한 여자는 스스로를 ‘죽은 자’ 또는 ‘세계의 악’이라고 지칭한다. 그러나 그 악은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인 의미에서의 악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필요악이다. 죽음은 필멸의 존재인 인간에게는 하나의 운명이나 필연에 가깝다.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여기에서 ‘이상한 여자’의 존재에 대해 기존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해석을 시도해보자. ‘이상한 여자’가 죽음에 관련된 인물이라는 것은 위와 동일하다. 리디아가 추위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만난, ‘죽음’을 표상하는 ‘이상한 여자’는 바로 자기 자신, 그러나 현재의 리디아가 아닌 미래의 리디아이자 이미 죽은 리디아라는 것이다. 대사에서 이러한 해석을 단적으로 지시해주는 부분은 없으나 이와 관련된 내용들을 찾아보기로 하자. 극에 나오는 첫 번째 지문에서 관객이 알 수 있는 것은 리디아가 길을 잃고 있다는 사실이다. 극에서 리디아는 계속 길을 찾아서 헤맨다. 리디아는 우연히 만난 이상한 여자에게 길을 묻는데 여자는 “네가 길이야”라고 대답한다. 길은 흔히 인생에 비유되며 인생은 곧 시간의 흐름이다. 여자는 다시 길을 찾는 리디아에게 “길은 가버렸다.”, “길은 지쳤다.”라는 대답을 계속해서 들려준다. 길이 가버렸다는 것은 더 이상의 길은 없다는 뜻이며, 인생의 길의 끝은 곧 죽음을 지칭한다. 길이 지쳤다는 것은 곧 삶의 종식을 뜻한다.
또한 리디아가 처음 만난 ‘이상한 여자’는 이미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고, 그녀가 겪는 신체적 고통을 미리 짐작한다. 이는 ‘이상한 여자’가 리디아의 분신이라는 근거일 수 있다. 해당 대사의 지문(안다는 듯이)와 그녀가 “우리 리디아”라고 말하는 사실에 유의하자. 위에서 인용한 “난 너 없이는 안 돼. 다른 이들은 다 죽었어. 네가 죽으면, 나도 죽어.”라는 대사는 여자가 리디아의 분신이라는 해석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어지는 대사에서 여자가 스스로를 세계의 악이며 인간들을 먹는다는 데서 여자는 단지 리디아의 죽은 분신일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들의 죽은 분신, 또는 죽음의 신이나 사자라는 결론으로 수렴될 수 있다.익숙하지만 낯선 시공간 속에서 리디아는 죽음의 신이자 자신의 사후의 분신인 이상한 여자와 마주치는 경험을 한다.
그렇다면 작품의 보편성은 과연 무엇이며 극은 어떤 점에서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인가? 만약 현재의 우리 자신이 미래의, 사후의 자신을 만난다면? 과연 미래의 자신은 현재의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 것인가? 그저 자신이 처한 시간과 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삶을 이어가라는 말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삶이 무한히 지속되리라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분명히 인생은 유한하다. 인간조건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관객은 극을 통해서 현재 자신의 삶을 돌이켜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극은 어쩌면 대사의 한 부분이 지칭하듯 그저 하나의 꿈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극이 현실인가 환상인가를 따지고 인물을 분석하며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것은 그저 사물을 그렇게 파악하고 싶어 하는 우리의 욕망의 결과일 뿐이다. 극은 이렇듯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플롯을 해체하고 무의미를 추구하며, 우리의 의식을 옥죄는 다양한 신화의 실체”를 파기한다. 공연의 면에서 극에 등장하는 두 인물들은 다양한 동선과 다소 급격한 감정의 변화를 겪는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광활하고 한계가 없는 공간의 느낌과 낯선 시간들이 어떻게 무대화될지 공연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