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의 글
희곡의 배경에 대해 : 나는 어떤 체코 극단이 저자의 이름을 바꿔 공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며 1971년경 이 작품을 썼다. 1975년 프랑스로 이주한 후에야 비로소 나의 소중하고 잊지 못할 친구 에발드 쇼름이 이 희곡에 자신의 이름을 빌려주었고, 그의 작품으로서 <야곱과 그의 주인>은 체코의 우스치(Ústí) 극장에서 공연되었다. 나는 이 희곡을 손수 프랑스어로 번역하여 나의 <변주(變奏)에 대한 서문>이라는 머리말과 프랑스와 리카르의 <변주의 예술에 관한 변주>라는 후기를 곁들여 1981년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그 후 이 프랑스어 판은 영어, 스웨덴어, 이태리어, 스페인어 번역판의 원전이 되었다. 나는 원작에 충실한 파리 공연과 훌륭한 자그레브 공연과 거의 천재적인 제네바 공연과 엉망진창의 브뤼셀 공연을 직접 관람했다. 그 당시 나는 나의 <디드로의 변주>가 얼마나 몰이해될 수 있는가를 깨달았다. 집필광(執筆狂) 기질이 있는 연출가들은 말할 것이다: “쿤데라가 디드로의 소설에 대한 변주곡을 써냈다면 우리도 그의 변주곡에 대한 자유로운 변주곡을 쓰는 거야.” 브뤼셀의 연출가가 내 희곡에다 어떤 바보짓을 가했는지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 당시 나는 그 공연을 즉각 중단시켰다. 유명한 소설을 희곡으로 각색하는 일은 그 자체 매우 예민한 작업으로서, 원전의 어떤 부분이 그대로 유지되고 또한 어떤 부분이 그에 첨가되어야 할까에 있어 엄격한 균형(18세기와 20세기, 낙관주의적 계몽주의와 우리가 사는 20세기의 회의주의 사이의 균형)을 요구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 희곡의 공연은 절대적인 정확성, 성실성, 단순성을 가지고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공연의 결과는 무의미한 수다가 될 뿐이다.
나는 브뤼셀 공연 이후 나의 희곡 <야곱과 그의 주인>을 무엇보다 ‘읽는 희곡’으로 간주하게 됐으며, 아마추어 또는 가난한 극단일 경우에 한하여 공연을 허가하고 있다(예를 들어 이 연극은 10군데의 미국 대학 극단에 의해 공연되었다). 부족한 재정은 연출가로 하여금 가장 소박한 길을 택하게 하는 보장책이 되기 때문이다. 야심만만한 바보의 손에 쥐어진 많은 돈보다 더 예술을 망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느림> 등의 소설과 영화 <프라하의 봄>으로 국내에 잘 알려진 밀란 쿤데라의 몇 개 되지 않는 희곡 작품 중의 하나가 <야곱과 그의 주인>이다. 국내에선 '03년 젊은 연극 극단 '여백'이 국내에 처음 공연했다. 하인 야곱과 그의 주인과의 대화를 통해 사랑과 우정, 거짓과 진실을 과거와 현재, 시간과 공간 그리고 주인과 하인, 신과 인간, 작가와 등장인물, 관객과 배우 등의 '해체'와 '공존'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밀란 쿤데라 작품의 정신세계를 좀더 쉽고 재미있게 표현한 작품이다.
특히 <야곱과 그의 주인>은 그동안 관객을 단순한 관찰자로서 설정하는 극 전통을 부정하고 관객과 직접 의사소통을 하는 새로운 관계를 설정함으로 공연 창조자와 관객과의 거리를 좁힘과 동시에 함께 생각하고 즐기고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체코 프라하출신의 밀란 쿤데라는 1968년 모든 공직에서 해직되면서 1975년 공산체제를 거부하고 자유를 찾아 프랑스로 망명하게 되면서 고국 '제 2의 고향' 사이에서 영원한 이방인이 된 작가이다. 1971년 어떤 체코 극단이 저자의 이름을 바꿔 공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하에 쓴 희곡 <야곱과 그의 주인>은 1975년 밀란 쿤데라의 친구 에발드 쇼름의 이름을 빌어 체코의 우스치 극장에서 첫 공연을 갖는다.
그 후 이 희곡은 쿤데라가 손수 프랑스어로 번역하여 영어, 스웨덴어, 이태리어, 스페인어로 번역되고 파리, 제네바 등에서 공연되었다
사실 상 작품의 줄거리는 원작 디드로의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디드로의 작품은 프랑스 혁명 이전의 시대성을 풍자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겼다면 쿤데라가 풍자하고자 하는 것은 작품 줄거리 자체에는 담겨있지 않다. 그는 작품 자체인 대본에서도 밝힌 바 있듯이, 18세기라는 시대적 배경은 작품에 어떠한 영향을 주지 않는 형식적 요소에 불가함을 알 수 있다. 쿤데라가 원작인 소설과는 달리 ‘희곡’이라는 장르로 승화시킨 것은 그의 철학과 작품에 싣고자 하는 의도를 보다 확실히 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것이라 볼 수 있으며, 동시에 소설을 희곡화한 가장 분명한 명분이 될 수 있다.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먼저 접해 본 독자라면, 디드로의 원작줄거리에 그가 영감을 받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원작이 18세기에 쓰여 졌음에도 불구하고 퇴폐적이고, 선정적이며 근대의 막장 드라마라 여길 만큼 남녀상열지사가 만연한 이야기다. 야곱이 유스티나와 그의 친구 젊은 오트라파와 얽힌 삼각관계는 그의 주인이 아가타, 그의 형식적으로만 우애 깊은 친구인 기사 생 우엥과의 삼각관계와 거의 흡사하다. 번잡한 이들의 관계를 좀 더 들여다보면, 그들의 로맨스는 야곱이 주인보다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의 차이는 단지 자신의 친구를 ‘배신했는가.’ 혹은 당했는가.’에 있다. 작품 후반에 이르러서야, 그들의 비극은 절정에 이르고 그들은 다시 아무 일 없던 것처럼(마지막 극에서 그들의 나이는 가늠할 수도 없다.) 함께 떠난다. 이러한 점에서 이 작품이 디드로의 작품보다는 현대적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각각 유들유들하고 어수룩한 인물로 희화화된 야곱과 주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랑이야기를 펼쳐낸다. 현실과 극을 넘나드는가 하면 독특한 방식의 극중극을 선보이는 등 참신한 무대가 돋보인다. 미국, 유럽 등에서는 이미 1980년대부터 꾸준히 공연된 작품이다.
과거와 현재, 극과 현실, 극중 인물과 작가, 인간과 신 등 다양한 경계를 넘나들며 끊임없이 ‘해체’와 ‘공존’을 반복하는 독특한 이야기 전개가 강한 인상을 남기는 연극이다. 하늘까지 뻗어 올라갈 것 같은 계단과 하늘에 붕 떠 있는 나뭇가지 하나, 그리고 한가운데 드리워진 스크린이 전부인 공간에서 연극은 허구인 줄 알지만 너무나 극적이고 기막힌 이야기를 종알거리며 들려준다.
극은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야곱과 주인이, 역시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공간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으로 문을 연다. 이들은 하인과 주인이라기보다 오랜 친구 같은 느낌으로 잡담을 주고받는데, 관객이 어수선함을 떨치고 극에 몰두할 때쯤 각자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이때부터 무대는 세 공간으로 나뉜다. 하나는 야곱의 과거를 보여주는 공간, 다른 하나는 야곱과 주인이 이야기를 나누는 현실 공간,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주인의 과거 공간이다. 무대 장치를 전혀 변화시키지 않고 오로지 배우들의 연기만으로 관객의 머릿속에 두 개의 과거와 하나의 현실 공간을 공존시켜 놓는 기법이 재미있다. 각 공간들은 철저히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소통되는데, 예컨대 과거로 돌아가 연기하는 야곱을 현실의 주인이 불러내 이야기를 중단시키고 과거 속의 인물과 현실의 인물이 이야기도 주고받는다.

내용상으로 보면 이 작품은 치정극이다. 엉덩이가 큰 여자를 좋아하는 주인은 친구 생 우엥 기사에게서 이상형 여인 아가타를 소개받아 당장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알고 보니 생 우엥과 아가타는 서로 연인 사이. 주인은 ‘친구’ ‘우정’이라는 이름 아래 이들에게 철저히 이용당한다. 반면 유들유들한 성격의 야곱은 절친한 친구 오트라파를 속이고 그의 애인 유스티나를 취한다. 극이 흘러감에 따라 주인과 야곱은 피해자냐, 가해자냐 만 다를 뿐 자신들의 이야기가 어딘지 모르게 서로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극 중간 중간에 “저 위에(하늘, 신) 그렇게 써 있어. 모든 일은 저 위에 쓰인 대로야”라든가 “난 우리가 어떻게 쓰여 있는지 궁금해. (작가가) 우리에 대해 잘 써주었을까?”라는 대사로 극중 인물에 현실적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작품의 주제를 생각하기에 앞서 연극무대의 제약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발상이 돋보이는 작품. 대문호의 희곡답다

엉덩이가 큰 여자를 좋아하는 주인과 친구의 연인을 자신의 여자로 만든 과거가 있는 야곱은 여행길에서 우연히 주인의 친구였던 생 우엥 기사를 만나게되고 친구의 소개로 한 여인을 취하게 된 주인은 그것이 친구의 함정인지도 모르고 즐거워한다. 한편 함정에 빠지게 된 주인의 죄를 뒤집어 쓴 야곱은 친구 오트라파의 도움으로 사형을 면하게되고 과거의 여인이 자신과 닮은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을 목격한다.
다시 만나게 된 주인과 야곱은 자신들의 삶이 우연히 닮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어딘지 모를 여행의 종착지를 향해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이 작품은 주인과 하인 야곱의 대화를 통해 사랑과 우정, 거짓과 진실, 과거와 현재, 시간과 공간 그리고 주인과 하인, 작가와 등장인물, 관객과 배우 등 관계에 대한 해체와 공존을 다룬다. 지적 탐구의 과정들이 배신 또는 육체탐닉으로 가볍게 포장된 ‘야곱과 그의 주인’은 기존의 밀란 쿤데라의 작품과 달리 그만의 정신세계를 좀더 쉽고 재미있게 표현한 작품으로 한 여인을 둘러싼 주인과 하인과의 에피소드를 통해 인간내면의 본질에 대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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