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시대의 리어王'은 이탈리아 작가 가스통 살바토레가 쓴 정치극 『스탈린』을 극작가 이윤택이 우리 시대의 감각에 맞게 재구성한 작품이다. 전직 대통령인 독재자가 답답한 연금 상태에 견디다 못해 리어왕을 공연 중인 연극배우를 불러들여 스스로 리어왕을 연기해 본다는 기발한 착상으로 전개되는 풍자극이다. 이윤택씨는 『「우리시대의 리어王」은 70,80년대 유행했던 마당극의 형식을 가미했다. 따라서 한국적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하는 정씨를 염두에 두고 이 작품을 썼다』고 밝혔다. 배우를 불러들인 전직 대통령은 문민시대의 지리멸렬한 현실을 질타하며 다시 한 번 강력한 군사정부를 꿈꾼다. 연극배우는 실종된 아들의 행방을 집요하게 캐물으며 그와 맞선다. 지리멸렬한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군사독재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을 거부하는 연극배우, 오늘의 혼돈과 무질서를 헐뜯으며 보수 대연합을 꿈꾸는 전직 대통령과의 대결이 불꽃 튀는 폭소로 전개되는 정치코미디다. 주변상황으로 전직 대통령이 누구인지 암시한다.

리어왕의 의상을 입은 연극배우가 독재자의 방에 끌려 들어온다. 한때 세상을 주름잡던 독재자의 옆에 선 연극배우는 순간 긴장한다. 하지만 독재자는 리어왕역의 연극배우가 반갑기만 하다. 독재자는 연극의 대사를 읊으며 연극배우와 연극의 한 장면을 연기하기도 한다. 연극배우는 박식하고 연극에 대한 주관적인 사고를 가진 그의 모습에 인간적인 흥미를 느낀다. 그는 리어왕의 모습을 통해 현실의 자신을 느끼는 듯하다. 독재자는 자신도 연극의 리어왕과 같이 감동적인 최후를 맞기를 원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는 동지들에게 배반당하고 국민에게 비난을 받는 비참한 처지에 놓여 있다. 그는 연극 배우에게 자신은 왜 리어왕과 같이 많은 이들에게 동정과 연민을 받을 수 없는지를 궁금해 한다. 그는 단지 소시민의 삶으로 돌아가 그들과 함께 소박하게 살고 싶다고 토로한다. 연극배우는 그의 안일한 낙관론을 비난한다. 독재자는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을 비난만하는 배우에게 화를 낸다. 그는 리어를 통해 자신을 내보이고자 연극 배우의 의상을 입고 스스로 리어가 되어 연극을 시작한다. 독재자가 봉사 안경을 쓰고 지팡이를 들고 나와 왕위에서 밀려난 리어의 비참한 모습을 나타낸다. 그것은 마치 한때 권력의 싸움에 밀려 절에서 은거하던 그의 모습을 느끼게 한다. 그는 다시 재기를 꿈꾸며 자신의 뒤를 이어 권력을 물려받은 후 자신을 배신한 이들에게 독설을 퍼 붇는다. 광대로 분한 연극배우는 그의 뻔뻔함에 비아냥거린다. 이때 간병인이 들어오고 광대는 그녀에게 리어의 딸 리건 역을 시킨다. 리어는 자신의 자리를 물려받은 후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은 딸을 비난하고 리건은 언니를 옹호하며 리어를 설득한다. 연기에 심취한 독재자는 다툼 끝에 간병인에게 덤벼들고 결국 그녀를 죽인다. 밖에 있던 경호원이 들어와 죽은 간병인을 보고 광대를 범인으로 의심한다. 독재자가 자신의 범행을 고백하나 경호원은 믿지 않고 사건을 캐묻는다. 독재자는 경호원의 입에 돈을 물려주며 그들에게 시체를 묻으라고 명령한다. 광대는 이 모습을 보고 80년 5월의 일을 회상한다. 그의 총, 칼 아래 죽어간 일들이 그런 식으로 해결되었음을 눈치 챈 그는 허탈하기만 하다. 광대는 독재자에게 그때의 일을 캐물으나 그는 그저 피할 수 없는 과정이었다며 자신을 합리화시킨다. 광대는 그의 모습에 분노하며 허무함 속에 고통스러워한다. 광대는 자살 장면을 연기하며 진짜 권총을 머리에 들이대나 불발로 실패한다. 자살로서 인생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마치고 싶다는 광대의 말에 독재자는 자신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긴다.
" [독재자] 음, 난 괜찮아. (무어라 말을 하려 입을 쫑긋거린다. 광대 귀에 바짝 댄다.) 내--- 연기--- 좋--- 았---어 "
리어왕을 바탕으로 극은 짜여진 이 작품은 현대 우리사회의 비판이 많이 담겨져 있다.

작가의 글
가스통 살바토레의 대본<스탈린>을 읽은 것은 94년 11월경이다. 실험극장 명배우 시리즈 세 번째 작품으로 선정되어 보도가 나갔는데, 내가 연출자로 거론 되어 있었다. 나는 이 작품을 읽기도 전에 타의에 의해 인연을 맺은 셈이다. 그 후 대본을 넘겨받았는데, 엄청난 작품이었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언어의 힘, 상당한 분량의 대사가 쉴새 없이 쏟아지면서 모두 몸의 언어로 구체화되어 스스로 에너지와 리듬을 자가발전시킬수 있는 말이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난 실험극장 예술감독 김아라씨에게 정중하게 연출을 고사했다. 작품 전반을 감싸고 있는 슬라브 민족과 유태인 사이의 민족적 대립 국면, 복잡한 구소련 사회의 정치적 가십거리를 우리가 사전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하기엔 벅차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그럴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다. 해외극에 대한 나의 생각은 상당히 좁고 단호하다. 지금 이곳 동시대의 현실적 체감이 오지 않는 번역극은 하지 않겠다. 외국 사람 흉내내는 모방 단계의 연극은 하지 않겠다. 이게 나의 입장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스탈린>은 구시대의 스토리이며 어디까지나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그러나, 살바토레란 작가의 생명력있는 극 구성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나는 이 대본을 우리 시대의 정치극으로 재구성할 의사는 있었다. 마침, 번역자인 유재철 형이 귀국하여 우리극연구소 연구원으로 같이 일하게 되면서 다시 작품 이야기가 나왔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써보자. 우리의 못다한 이야기로...이렇게 하여 대본은 다시 쓰여졌다. 재구성 대본을 쓰는데 결정적 단서가 된 부분은 역시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마지막 대사에서 발견되었다. “불행한 시대에 무거운 짐은 우리가 짊어지고 갑시다. 이제 느낀 것을 있는 그대로 말하기로 합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글을 쓰게 해준 장본인은 지난 시절 우리 정치현실이고, 지금 위기를 맞고 있는 연극적 현실이다. 우리의 정치 현실과 연극 현실이 나를 글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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