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잔잔한 음악이 흐르다가 사를사를 울리는 나래이션이 무대에 깔린다. "무슈는 아름다워요, 무슈는 친절해요, 무슈는 우리에게 먹을 것을 줬어요, 무슈는,,,"
난데없이 전형적인 팜므파탈의 웃음소리가 날카롭게 공기를 가른다. 아-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
그렇게 두 여자가 등장한다. 둘은 신분이 다르다. 마담과 하녀의 관계인 것. 하녀는 검은 스타킹에 망사흰양말, 투박한 검은 구두를 신고, 짧은 검은원피스, 그 위에 흰 에이프릴 앞치마, 머리는 하나로 질끈 묶고, 머리에 머리수건인지 장식용 에이프릴인지를 얹고 있다. 마담이라는 여자는 몸 전체를 베일로 감싸고 있다. 분간되는 것은 하늘하늘거리는 몸짓과 손짓, 조금은 요사스러운 하이톤의 목소리 뿐. 마담은 거만하게 하녀를 깔보고 닦달한다. 하녀는 연신 굽신굽신거리며 마담에게 이것저것 갖다주느라 바쁘다. 그런 행동이 한동안 지속되다 돌연 하녀는 울분의 혼잣말을 한다. 마담에 대한 분노. 그것은 마담의 약혼자 '무슈'에 대한 질투일까, 하녀라는 계급에 대한 울분일까. 하녀는 이내 마담의 뒤에서 그녀의 목을 조른다. 아-하하하하, 하는 팜므파탈적인 웃음 소리와 함께 페이드아웃.
등장인물은 자매지간인 두 하녀와 무슈,라는 마담의 약혼자이다. 아까의 그 오프닝은 실제의 마담과 하녀가 아니라, 자매인 두 하녀가 서로 역할극을 한 것임이 드러난다. 하녀들은 자신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긴 하나, 주인인 마담에 대해 부정적이다. 마담의 약혼자인 '무슈'라는 남자를 사랑한다고 그녀들끼리는 공공연히 말한다. 질투의 감정, 무시되고 지배당하는 것에 대한 울분의 감정. 그러한 감정과 스트레스를 두 하녀-자매는 역할극을 통해 드러낸다. 그것은 싸이코드라마같은 기제이다. 스트레스, 정신적외상 등을 치료하기 위해서 직접 그 상황의 역할을 맡아 연극을 하는 방식 말이다. 그러나 그 두 자매가 역할극을 하는 모습은 스트레스 해소라기보단, 일종의 대리만족, 혹은 시연, 리허설처럼 보인다.
마담에 대한 증오 때문인지, 아니면 실제로 마담은 존경받지 못할 만한 인물인지는 몰라도, 마담은 현재 감옥에 가 있다. 그건 두 자매 중 동생이 쓴 밀고편지 때문이다. "마담은 도둑질을 했어요." 두 자매는 그 음모를 꾸미고 결국 승리한 셈인데도 안심하지 못한다. 안절부절, 안절부절. 치열하게 말싸움을 하고 역할을 바꾸고 표정을 바꾸는 그녀들. 둘만이 있을 때도 그들은 둘이 아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위치와 상황을 되씹고 되살리며 치열한 순간을 살고 있다. 그렇게 그녀들이 치고박고 하고 있는 동안, 갑자기 어떤 느끼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백구두에 아이보리 정장을 하고 기름진 머리를 하고 있다. 과장된 손짓과 유연한 웨이브. 능청스러운 그의 몸짓과 말에 두 여자는 조응한다. 그의 외투를 벗기고 그의 말을 받아넘긴다. 그는 바로 '무슈'였던 것. 그의 호감을 사기 위해서인지 그녀들은 심지어 자신의 옷섶을 튿어 가슴을 보이려 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무슈는 자기 말만 하고 자기 생각만 하는 모습이다. "나의 비둘기가 감옥에 들어갔어. 나는 끝까지 그녀와 함께 할거야." 비둘기는 바로 그의 약혼녀, 하녀들이 지칭하는 마담. 그를 바라보며 하녀들은 또다시 음모를 꾸미고 있다. "그가 좋아하는 차에 수면제 10알을 넣는거야."
두 하녀는 승리를 거두었는가. 마담을 감옥에 넣는데는 성공했으나 그들은 끊임없이 불안해했다. 결국 무슈의 입에서도 그들이 원하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결국 마담이 감옥에서 가석방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것도 마담을 감옥에 집어넣은 그 두 하녀들 자신의 입을 통해서 말이다. 끊임없이 불안해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승리를 놓친 꼴이다. "비둘기"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끊임없이 되뇌이던 무슈,는 결국 비둘기-마담-를 찾아 떠나버린다. 게다가 가지지 못하면 차라리 없애버리는게 낫다고 음독을 노리던 그 음모도, 결국 무슈가 차가 식었다고 마시지 않아 수포로 돌아가버린다. 두 하녀는 절망하여 심하게 서로에게 잘못을 묻고 서로에게 '역할'을 씌운다. 페르소나persona. 그녀들은 다른 표정과 다른 말투를 한다. 동생은 무슈가 되고, 언니는 하녀이다. 무슈가 된 동생은 나지막히 싸늘히 식은 차를 가져오게 한다. 흡사 소크라테스가 독잔을 가지고 오라는 것 같다. 비장한 표정의 동생과 언니. 그 순간은 단지 울분을 풀기 위한 역할극 수준이 아니다. 자신들의 생사와 삶이 걸렸던 시나리오는 실패했다. 실제 상으로 실패했던 그 시나리오를 가상에서나마 성공으로 끝맺으려 하는 것이다.
결국 언니는 동생을 죽인다. 차를 마시게 함으로써? 그건 아니다. 결국엔 처음 오프닝에서 마담 역을 하고 있던 동생의 목을 졸랐던 것처럼, 이번엔 무슈 역을 하고 있는 동생의 목을 조른다. 핏빛 고무장갑과 핏빛 빌로드 옷을 걸치고 광기에 찬 웃음을 짓는 언니.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la를 붙여서 되뇌이며 페이드아웃된다.
장면이 바뀌고, 이번엔 다시 역할이 바뀐다. 두 하녀,가 아니라. 한 하인이다. 무슈였던 남자가 무대 한 가운데서 걸레질을 하고 있다. 뒷편 양쪽에서 하녀였던 두 여자가 그를 보고 외친다. "얼른 열심히 닦어!" 결국은 꿈이었던가. 꿈. 이렇게 극의 구조는 '결국엔 꿈이었더라'라는 것이었다. 계급의 역전. 성별의 역전. 역할의 역전. 모든 것이 뒤바뀐 속에서, 그 남자의 웃음이라던지 여자들의 표정이라던지 그것들은 모두 일그러져 있었고 치열했다. 실제 삶은 루즈하고 그 루즈함때문인지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러나 꿈 속에서는 그 순간순간이 치열하고 과장스럽게 보이기까지 한다. 그것은 단지 무의식에서는 삶의 의욕이 더 강하게 드러난다는 것을 보여주는걸까, 아니면 욕망덩어리로 뒤범벅되어있는 꿈의 모습을 보여주며 일종의 교훈을 주기 위한 걸까.

극 제목에 있는 ‘바퀴벌레’에 주목해본다. 극 중에서는 하녀들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할 때 대사로 한번 잠깐 등장할 뿐이다. 바퀴벌레라. 그것은 우리 삶과 아주 밀접한 존재이면서도 끔찍스럽게 여겨지는 존재이다. 삶과 아주 밀접한, 그러나 좋은 것도 아니고 떼어낼 수는 없는. 어떻게 보면 인간의 생활 공간이 살아있다는 그 증거가 바로 바퀴벌레가 그곳에 서식하는지의 여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좀더 연결해서 생각하면. 인간이 질투를 하고 욕망을 가진다는 것 그 자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그 욕망은 승화되어 누구나 봐도 좋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아름답지 못한, 지긋지긋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그렇게 삶과 밀접하게 닿아있는 욕망, 그 자체가 바퀴벌레 같은 것 아닐까. 이건 잠깐의 확장적인 해석이고, 사실은 바퀴벌레란 그 하녀 둘을 지칭하는 것 같다. 솔직히 하녀들이 통통한 다리에 윤기나는 검은 스타킹을 신은 그 모습을 보면서. 바퀴벌레의 질감을 언뜻 느끼기도 했다.

이 연극은 한 집안의 하녀였던 빠뺑 자매가 자신들의 여주인과 딸을 잔인하게 살해한 후 경찰에게 체포됐던 실제사건 프랑스 ‘빠뺑 자매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1947년 집필한 100여쪽의 희곡이다. 부조리극의 대명사로 평가되는 교과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등장인물인 하녀 쏠랑주와 끌레르는 자신들이 섬기는 여주인을 증오한 나머지 마담을 흉내내고, 또 그녀의 애인을 연민하며 그들의 처지를 탐하는 연극 놀이에 빠진다. 애인을 밀고하는 편지를 쓰거나 그녀를 독살하려는 식이다. 결국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마담역할을 한 끌레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외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가스통 살바토레 '스탈린' (1) | 2016.01.26 |
|---|---|
| 알렉산드르 뒤마 작 '춘희' (1) | 2016.01.26 |
| 로알드 달 '빅스비부인과 대령의 외투' (1) | 2016.01.24 |
| 몰리에르 번안 '양반놀음' (1) | 2016.01.24 |
| 미우치 스즈에 '여해적 비앙카' (1) | 2016.0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