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몰리에르 作(작) / 홍란주 번안
몰리에르의 귀족수업을 번안한 작품이다
돈으로 양반을 산 ‘추대인’은 ‘진짜’ 양반으로 거듭나기를 꿈꾼다.
그는 양반들이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섭취하려 든다.
춤을 배우고, 노래를 배우고, 시를 배운다.
양반들의 문화라면 우스꽝스러운 옷 입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의 머릿속에는 ‘양반’ 말고 다른 단어는 없는 것 같다.
이러한 물 불 안 가리는 맹목성과 막무가내는 그를 ‘주제도 모르는 놈’
혹은 ‘제 분수도 모르는 놈’으로 수식하기에 이른다. 본디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원조 평민인 추대인. 그의 양반 수업은 어설프고 우스꽝스럽다.
앞뒤 안보고 양반을 흉내내는 그의 모습에 웃음이 터진다. 예를 들면,
‘우청’에게 격식을 갖춰 인사하기 위해 추대인은 새로운 인사법을 배운다.
그것은 세 걸음쯤 앞으로 나아가 두 손을 모으고 절을 한 뒤, 엎드리며 몸을
쭉 뻗는 식의 무척이나 가소로운(?) 동작이다. 양반으로 예를 갖추기 위해
요상한 동작으로 인사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그의 진지한 표정에 객석에선
다시 한번 웃음이 터진다. 결국 추대인은 양반이 아니라는 이유로 딸이 데리고
온 사윗감 ‘양산박’에게 퇴짜를 놓고, ‘양산박’ 무리는 딸 ‘단실’과 ‘양산박’의 혼인을
위해 추대인에게 ‘피엥민’이라는 가짜 지위를 내리는 헤프닝이 벌어지고야 만다

이런 우스꽝스런 추대인의 모습은 오늘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계급’으로 사람을 구별했던 과거와 ‘돈’으로 가치를 평가하는 오늘은 닮아있다.
추대인이 ‘양반’을 꿈꾸듯 요즘 사람들은 ‘부자’를 꿈꾼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
돈 없는 평민(?)들은 가짜 명품으로 부자를 흉내내기에 이른다. 그나마 부자가 되기
위해 배우고 익히기를 게을리 하지 않은 추대인에 비해, 요즘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외양을 부풀리기에만 정신이 팔려있다. 추대인을 보고 웃었지만 추대인보다도 더 웃긴,
요즘의 우리들이다. 추대인이 계급 사회의 희생양이라면, 가짜 명품족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희생양이다. 앞서 얘기했던 포스터 속 하얀 탈은 이런 모든 욕망을 상징한다.
욕망이 범람하는 시대, 가지지 못한 자는 가지기 위해 발버둥친다.
그래서 이 작품은 풍자적이다. 연극 속 추대인의 그 발버둥이에 한바탕 웃었지만,
어쩐지 유쾌하지 않았던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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