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위 직전에 있는 스탈린과 극장장이며 리어왕 배우인 자거 두 사람의 대결로 구성된 작품으로 2시간 정도의 대작이다. 물리적인 힘으로 대결할 수 없는 권력과 연극적 담론의 대결이라는 구조로 볼 수 있다. 즉 배우가 연극이라는 매체를 통해 권력에 대항하며 벌이는 싸움은 새로운 연극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칠레 계 유럽인인 작가는 1985년 이 작품을 완성하고 우여곡절 끝에 2년 후인 '87년에 발표한다. (서베를린 실러극장에서 헤르베르트 자쎄의 연출로 초연됨)

칠레에서 태어났지만 일찍이 유럽으로 진출,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했고 60년대 말에는 과격시위로 감옥에 투옥되기도 한 좌파 지식인이다. 그가 스탈린을 분석하는 방향에도 이런 작가의식이 나타난다고 하겠다.
독재자와 광대의 대결구도는 음과 양, 권력과 진리의 상반된 논리로 이뤄지지만 이는 동전의 양면 같이 공존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표현한다. 단지 스탈린이란 인물은 발표 당시의 소련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 정책으로 다소 희화되거나 일그러지는 현상을 나타낸다. (이후 공연들이 더욱 그렇게 공연된다) 이 작품은 스탈린 재위인 1952~53년의 시기에 특히 스탈린의 죽기 직전을 배경으로 설정하여 있으나 현재의 관점에서 관객들이 보기에는 그의 허상과 사후 권위 추락 등을 알고 있기에 다소 김빠지고 극적인 효과가 반감되나 그 당시로 몰입되면 절대적인 권력인 스탈린에 대항하는 연극배우의 목숨을 건 투쟁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에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이 두 등장인물의 중요한 소재로 나온다. 리어왕과 광대, 그리고 여러 등장인물들에 대한 스탈린과 배우의 생각과 해석,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된다. 특히 스탈린은 극중 리어왕과 동일시하여 그 작품 속에 자신의 과거, 현재와 미래를 그려 보이기도 하고 레닌을 글로스터로 보고 자신은 그의 서자인 에드몬드로 암시하여 에드몬드의 혁명적인 사상을 과장하기도 한다. 스탈린은 리어왕을 정치 극으로 규정하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을 권력의 법칙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이 작품에 나오는 극적인 사건도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서 나오기에 작품의 믿음이 커지며 유태계인 자거에 비추어 자주 나오는 유태인 집단 이주나 대 박해 등의 사건도 모두 당시 스탈린이 사회적 불만을 해소시키기 위한 유태인을 표적으로 삼은 실제 사건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스탈린은 보기에 다소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아주 지적이고 자상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간혹 터져 나오는 차갑고 잔인한 모습이 노골적인 폭력보다 더욱 섬뜩하게 느껴진다. 그는 자신의 과거 음모로 가득 찬 권력을 향한 모반과 집권 후 숙청 등을 합리화 할 뿐만 아니라 향후의 계획까지 증명하려 한다. 그리고 권력 말미에 불안한 입지와 불투명한 미래로 잠 못 이루는 밤에 배우인 자거를 불러 리어와 광대로 밤새워 대화하며 연기하고 토론하는데 결국 자신의 정당성에 동의 해줄 것을 강요한다. 그런 여러 얘기들이 리어왕과 광대로, 혹은 다른 등장인물로 그 대사를 현재의 자신의 입장에서 대변하는 것으로 어떤 때엔 연기로, 또 자신의 입장 표명으로 관객들도 잘 들어야 이 작품의 극적인 묘미가 살아난다.
자거는 자신의 아들이 체포되어 그를 살려야 함에도 자신의 의지를 여러 극중 대사로 표현한다. 결국 그의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과 함께 리어왕이 막내딸 코딜리어 죽음 앞에서 하는 마지막 대사를 연기할 때 뭉클한 감동을 준다. 그리고 리어왕과 같이 막은 내린다.

극작가로서, 연출가로서 한국 연극계의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이윤택이 최근 서양 고전 드라마의 얼개에 한국적인 정치상황과 역사를 퍼담은 실험을 끈질기게 진행하고 있다. '우리 시대의 리어왕'이 칠레 태생의 극작가 가스통 살바토레가 쓴 이 작품「스탈린」의 구조를 빌려 한국 현대정치의 독재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윤택의 연극세계가 대단히 관념적이기 때문에 그의 연극적 논술을 위해서는 아마도 서양의 이성중심 적인 극 구조가 적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그의 연극에서 서양의 구조와 한국의 이야기가 화학적인 만남을 이룩한 업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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