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알렉산드르 뒤마 작 '춘희'

clint 2016. 1. 26. 17:22

 

 

 

문고헌 연출 극단 춘추(제11회작품)
1981.10.8~10.12 세종문화회관 별관


줄거리
1848년 발표. 원 제목은 ‘동백꽃을 들고 있는 부인’이며 《춘희》는 여주인공 마르그리트 고티에의 별명이다. 그녀는 화려하게 몸을 치장하고

한 달의 25일간은 흰 동백꽃, 나머지 5일간은 빨간 동백꽃을 들고 극장이나 사교계에 나타나며 언제나 귀부인처럼 생활한다. 이는 그녀가 몸을 판 대가였다. 미모의 고급 창녀인 그녀에게 양가(良家)의 자제인 순진한 청년 아르망 뒤발이 나타난다. 그는 그녀에게 정열적인 사랑을 바쳤고, 그녀는 그로부터 처음으로 참된 사랑을 발견한다. 그리고 둘은 서로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하고 파리 교외의 아담한 보금자리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수입원(收入源)이 막히고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된 그녀에게 때마침 아르망의 아버지가 찾아와 아르망과의 관계를 끊을 것을 강요한다. 그녀는 자신을 희생시켜 아르망과 헤어지는 것만이 진실로 그를 사랑하는 것이며 그를 살리는 길이라 깨닫고 아르망과 관계를 끊겠다고 약속한다. 그녀가 다시 파리에서 그 전과 같은 생활을 하는 것을 본 아르망은 마음이 변한 그녀에게 행패를 부리고 여행길에 나선다. 한편 실의와 체념 속에서 폐병이 악화되어 그녀는 사경에 이른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르망의 아버지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아들에게 그간의 경위를 이야기한다. 진상을 안 아르망은 그녀에게 달려가나 그녀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파리의 고급 창녀이며 미모로 당시 이름을 떨쳤던 마리 뒤프레시를 모델로 소설화했다고 한다. 소설의 이야기는 아름답고 낭만적이지만 사회문제에 커다란 관심을 표한 작품이다. 소설의 호평에 힘입어 작자는 이것을 5막의 희곡으로 각색, 1852년 상연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후 그는 소설가로서보다도 오히려 극작가로서 빛나는 발자취를 남겼다. 이 작품을 피아베 작시(作詩), 베르디 작곡(作曲)에 의해 가극 《라트라비아타 》로 개작,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켰다(1853). 한국에서는 1937년 신극단 중앙무대 (中央舞臺)가 이를 처음 공연했다. 고급 창녀이자 사교계의 유명인 마리 뒤플레시가 폐병으로 죽었을 때 온 파리가 요란했다. 엄청난 빚을 갚기 위해 마리가 키우던 앵무새를 포함한 물건을 모두 경매에 붙였다. 경매장은 물론이고 장례식에도 (대부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몰렸고 그 속에 있던 찰스 디킨스는 ‘장 다르크의 장례식이라도 되는 듯이 엄숙하고 슬픈 분위기였다’고 했다. 전설은 곧 만들어졌다. 1년도 지나기 전에 아들 뒤마가 소설 ‘동백아가씨’로 발표한 것이다. 뒤마는 아르망 뒤발(Armand Duval)과 마거리트 고티에(Marguerite Gautier)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자기와 이 여자의 이야기를 꾸몄고 그 속에는 ‘서러운 신세’에 대한 작가 자신의 하소연도 많이 들어갔다. 창녀라는 신분이지만 예쁘고 착한여자가 한 젊은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러나 그 남자의 아버지가 찾아와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다며 헤어지라고 한다. 여자는 희생정신을 발휘하여 남자를 떠나고 홀로 병들어 죽는다.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 실컷 울만한 작품이 없던 사람들에게 이 ‘실화에 기초한 픽션’은 최고의 선물이었다. 아들 뒤마와 이 여자의 관계를 잘 알던 파리 사람들은 사회의 냉대를 받으며 사랑을 잃고 외롭게 병들어 죽는 여자의 슬픈 픽션을 실화로 알고 읽으면서 손수건을 여러 장 적셨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경매장에서 여자의 물건을 헐값으로 챙기는 동안 아들 뒤마는 여자의 인생을 상품으로 바꿔 ‘세일’에 들어간 것이다. (당시 근로자의 일당은 4프랑이 약간 넘었고, 소설 한 권은 3.50프랑, 연극 티켓도 보통 3.50프랑이었다.) 작품 속에서 여자의 시체를 다시 파내는 주인공처럼 아들 뒤마도 이 소설을 재빨리 연극으로 각색했다. 그러나 내용이 저속하다는 이유로 세 번이나 검열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았고 여자가 죽은 지 5년이 지난 1852년에야 무대에 올랐다. 연극 속에서 여주인공은 마지막 순간에 돌아온 애인의 품에 안겨 죽는다. “저는 사랑으로 살다가 사랑으로 죽어요...” 이런 애절한 대사를 하면서 여자가 죽어가는 장면은 당시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최고 인기장면이자 연극역사상 주인공이 죽는데 가장 오래 걸리는 장면이기도 했다. 그래서 어떤 비평가들은 ‘동백아가씨’가 아니라 ‘오래 죽는 아가씨’(Lady of the long goodbye)라고도 놀렸다.

 

 

파리에 와서 이 연극을 보고 감동한 베르디는 급히 서둘러서 그 다음해(1853년)에 오페라로 만들었다. 여주인공 이름이 비올레타 발레리로 바뀐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 버려진 여인)는 베니스의 초연에서 실패했다. 베르디는 그 이유를 출연자들의 잘못으로 돌렸고, 과연 1년 뒤의 공연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가득한 아름다운 음악덕분에 지금도 모든 오페라 중 최고로 꼽힌다. 연극 여주인공이 19세기 여배우들의 선망대상이었듯이 이 오페라의 여주인공 역도 소프라노들에게는 최고의 역이 됐다. 전설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는 비스콘티가 연출한 1955년의 ‘라 트라비아타’에서 새로운 전설을 만들었다. 끝내주는 솜씨의 노래도 좋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남자 품에 안겨 눈을 뜬 채로 서서 죽었다. 밀라노의 이 공연을 본 관객들은 ‘그날 밤 꿈에서도 그 눈을 보았다’고 했다. 1948년 우리나라 최초로 공연된 오페라도 이 작품인데 ‘춘희’(椿姬)라는 제목이었고 김자경이 여주인공이었다.
이후 이 작품은 끝없이 영화와 TV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연극에서 이 역을 가장 잘했다는 프랑스 여배우 사라 베른하르트(Sarah Bernhardt, 1844-1923)는 1912년 영화에서 (당시 나이가 68세였는데도!) 주역을 맡았다. 1920년에는 루돌프 발렌티노와 알라 나지모바가 주역을 맡았고 1936년에는 그레타 가르보가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다. 클로즈업된 얼굴을 오래 보여주다가 어두워지는 마지막 샷이 아주 인상적이다. 1964년 우리나라에서 엄앵랑, 신성일, 김승호 주연으로 만든 김기 감독의 영화 ‘동백아가씨’도 비슷한 줄거리의 각색작품이다. 당시 엄청 히트한 이 영화를 나는 할머니와 함께 파고다 극장에서 봤는데 한참 졸다가 주위 여자들의 훌쩍거리며 우는 소리에 잠을 깬 기억이 있다. 이미자가 부른 노래는 이 영화의 주제가다.

 

 

지금도 이 작품은 인기소재다. 1981년에는 약간 각색된 프랑스 영화에서 이자벨 위뻬르가 주역을 맡았다. 아들 뒤마가 자기 연극을 연습하다가 플레시스의 인생을 회고한다는 줄거리다. 1980년대 중반에는 영국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에서 과장이 심한 페미니즘 연극으로 만들었지만 히트했다. 줄리아 로버츠와 리차드 기어의 영화 ‘귀여운 여인’(Pretty Woman)은 무대를 현대의 LA로 바꾸면서 끝도 해피엔딩으로 고쳤다. 백만장자 비즈니스맨이 창녀를 만났는데 고급차에 대해 잘 알고 운전도 잘하며 또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보고 울었기 때문에 그 여자를 택한다는 얘기로 보인다. 호주출신의 바즈 루어만(Baz Luhrmann) 감독은 니콜 키드만을 데리고 파리의 빨간 풍차 클럽으로 갔다. 뮤지컬 영화 ‘물랭루즈’(Moulin Rouge)의 여주인공 역시 ‘동백아가씨’ 출신이다.

 


이제는 이 작품을 원본 그대로 하기 힘든 모양이다. 20세기 초반까지도 이 작품은 잘 먹혔다. 그래서 여주인공이 보바리 부인이나 안나 카레니나처럼 죽음으로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승화되는 것을 관객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저 높은 땅 위에 사는 인간을 사랑하다가 물거품이 되는 인어공주처럼! 그러나 이제 죽기 직전의 주인공이 할 말 길게 다하고 죽는 장면은 어림도 없다. 폐병환자가 예쁘게 기침하는 것도 통하지 않고 폐병의 원인이 사치와 쾌락 때문이 아니란 것도 안다. 게다가 신앙심도 전 같지 않고, 사랑이니 정절이니 순수한 마음이니 해도 잘 안 통한다. 그러니까 이 여자가 도대체 뭘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지 알 수 없고, 반항도 없이 그렇게 죽는 게 한심해 보인다.

 

 

알렉산드르 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