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첩산중, 달빛마저 구름에 가린 어느 밤.
깊은 구덩이를 파는 사내가 있다. 이름은 '풍운'
그리고 그 구덩이에 굴러떨어진 큰 봇짐을 맨 남자.
이름이 '사니'인 그가 나타난다.
풍운과 사니는 이야기 잔에 술을 따라 마시고
「햄릿」에 나오는 인물로 변해 그들의 이야기를 한다.
풍운은 복수를 원하는, 복수에 휘말린, 복수를 당한
인물들을 만나며 가슴에 묻어둔 자기 이야기도 털어놓는다.
이제 풍운은 선택해야 한다.
계속 땅을 팔지, 아니면 그 구덩이에서 나올지.
‘햄릿광대 난장’은 셰익스피어의 『햄릿』 속 작은 역할인
‘오필리아의 무덤을 파는 광대’에서 시작한다.
죽은 이를 위해 무덤을 파던 광대가 이야기 잔에 술을 마시며
(여기에 술을 따라 마시면 마치 마법처럼 환상처럼 햄릿 극속으로,
또는 과거 자신의 젊을 때로 간다)
수탉이 울기 전까지- 아버지와 아들, 햄릿의 이야기가 하나둘 흘러나온다.
거대한 비극의 주인공이 아닌, 소시민적 인물로
복수와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냄으로써
더 친근하게 햄릿이란 무대를 상상하게끔 만들었다.
작가의 말 - 김윤지
5년 전, 문화예술분야에 발을 들였을 때, 함께 일한 두 단체 모두 발달장애인과 관련된 곳이었습니다. 이전 직장에서 시니어비즈니스 컨설팅을 하면서 배리어프리나 유니버셜 디자인에 대해 이론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 개념을 깊이 생각해볼 기회는 없었습니다. 먼저 인연을 맺은 '공연예술창작소 호밀'과 2021년 발달장애 아동을 위한 소리컬 공연을 했고, 다음 알게 된 '칼론'과는 올해 장애· 비장애 경계 없는 통합 미술 및 글쓰기 교육을 하며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을 만났습니다. 장애와 관련된 워크숍과 강연을 듣고, 연극 영화도 보면서 2022년 공연한 '햄릿광대 난장'을 배리어프리 극본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공연예술은 일회성과 현장성이 특징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관객이 한정적이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공연장에 오기 힘든 분들께 장면을 상상하며 읽는 즐거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침략장애인을 위한 소리 설명자막이 있는 극본이자, 시각장애인을 위한 오디오 대본이자, 발달장애인을 위한 쉬운 글로 수정한 내용이면 좋겠다 싶었죠. 하지만 공부하다 보니, 모든 장애 유형에 맞는 배리어프리 극본을 만들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같은 장애라도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모두를 위한 단일한 기준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이번 책에서는 욕심을 좀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발달장애인 창작자가 그림 삽화를 통해 함께 예술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더 알리고, 시각 약자를 위해 글자 크기를 크게 하고, 연극, 세익스피어, 햄릿처럼 일반인에게도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을 쉬운 글로 정리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에 관심이 커지고, 접근성 공연도 늘어나고 있기에 앞으로 더 적합한 도서와 컨텐츠가 생길 것이라고 봅니다. 이 작품도 그러한 문화예술 생태계를 만드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외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인 오스틴 원작 스틸 매카이 각색 '오만과 편견' (6) | 2025.03.30 |
---|---|
도널드 마굴리스 '단편소설집' (3) | 2025.03.28 |
가네시타 다쓰오 '어른의 시간' (2) | 2025.03.26 |
닐 사이먼 ' 빌록시 블루스' (1) | 2025.03.26 |
마르그리트 뒤라스 '라 뮤지카' (2) | 2025.03.25 |